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4-10-22 13:5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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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정부는 출범 뒤 민생정책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서민 대출상품인 '디딤돌 대출'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가 반발이 거세자 이를 잠정유예한 일을 꼽을 수 있다.
▲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에서 열린 2024년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얼굴을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디딤돌대출은 연소득 6천만 원 이하 무주택 서민이 5억 원 이하의 집을 살 때 저금리로 최대 2억5천만 원까지 빌려주는 대표적 서민대출 정책금융 상품이다.
정부가 디딤돌 대출 제한에 나서려 했던 것은 가계부채 총량을 줄이기 위한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1일 발표한 ‘가계대출 동향(잠정)’에 따르면 9월 금융권 가계대출은 5조2천억 원 증가해 전달(9조7천억원) 보다 증가폭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하지만 디딤돌 대출을 비롯해 서민 대상의 정책대출은 8월 3조9천억 원 늘어난데 이어 9월에도 3조8천억 원이 증가했다.
하지만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일반 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출 가운데 하나인 디딤돌 대출을 막는다면 ‘내집 마련’을 계획하는 신혼부부 같은 경우에 디딤돌 대출보다 금리가 더 높은 보금자리론 등을 알아봐야 한다.
갑자기 부담이 늘어나니 반발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정책대상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세밀히 살펴보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정부가 애초 시행하기로 했던 정책방향이 손바닥 뒤집 듯 바뀐다면 정책을 향한 ‘사회적 신뢰’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애초 박상우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은 지난 9월 브리핑에서 각종 저금리 정책 대출과 관련해 “대출 대상을 줄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럼에도 한달 만에 이런 방침을 뒤집려다가 비판에 휩싸여야 했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정부의 디딤돌 대출 제한 정책의 완전한 철회를 요구하면서 “국토부는 정책 대출을 줄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야한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정부가 ‘오락가락’했던 민생정책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2단계 시행을 애초 7월1일에서 9월1일로 두 달 늦췄는데 이를 시행 예정일을 엿새 앞둔 6월27일에야 발표했다. 이 때문에 부동산 시장에서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7월과 8월 가계대출 폭증 사태가 일어났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DSR 정책혼선을 지적하는 야당 의원들의 질타에 “개입 방식 등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혼선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수긍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의정갈등 장기화로 갈수록 심각해지는 의료인력 이탈 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의대 5년제’ 방안도 의료계는 물론 정치권에서 뭇매를 맞았다.
정부가 의대 학사 정상화를 위해 비상대책으로 고려했다는 절박함을 이해하더라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의대 교수들과 전공의 등 의료계에서는 교육의 질 저하 등을 이유로 ‘의대 5년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소병훈 민주당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수의사도 6년제인데 의대를 5년제로 하면 사람 목숨이 개, 돼지만도 못하다는 의미냐”고 한 의대생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게다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감에 출석해 ‘의대 5년제’와 관련해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사이에 제대로 조율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결국 이주호 교육부총리는 어떤 의대도 5년제를 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고민정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할 수 있는 학교를 지원하는 것이니, 없으면 안 하는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더욱 큰 문제는 정부가 이미 정책 혼선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사과한 일이 있음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5월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해외 직접구매(직구) 논란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5월 어린이용 34개 품목,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 등 80개 품목을 대상으로 국내 안전 인증(KC·국가인증통합마크)을 받지 않았다면 해외 직접구매(직구)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사실상 개인의 해외직구를 차단한다는 비판이 일자 대통령실에서 직접 나서 이를 철회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저렴한 제품 구매를 위해 애쓰는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한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 송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당정협의를 포함한 국민의견 수렴 강화, 브리핑 등 정책 설명 강화, 정부 정책리스크 시스템 재점검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직접 정책 혼선의 재발방지를 지시했음에도 최근 5개월 동안 민생정책에서 세 번의 정책혼선이 잇달아 발생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싱가포르 일간지인 스트레이츠 타임즈와 서면 인터뷰에서 “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있는 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을 믿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의 힘으로 국민이 원하는 개혁을 해나가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런 윤 대통령의 말처럼 정부가 내건 개혁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우리나라의 연금, 의료, 교육, 노동개혁 등 여론이 엇갈릴 수밖에 없는 장기적이고 거대한 사회·구조개혁을 이뤄내겠다는 국정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개별 민생정책의 추진 과정에서조차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 개혁 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결코 얻을 수 없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정성스럽게 되고 겉으로 드러난다. 겉으로 드러나면 밝아지고 남을 감동시킨다. 남을 감동시키면 변하게 되고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중용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작은 일을 제대로 해내 세상의 신뢰를 쌓아야 큰 일도 온전히 해낼 수 있다. 정부의 일도 마찬가지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