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계기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예상해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사진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4년5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부동산 시장 일각에선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 흥분하며 시장 가격이 다시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장금리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 한국은행이 큰 폭의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기가 여의치 않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 같은 기대는 섣부르며 합리성도 떨어진다.
기준금리 인하됐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시장금리
한은 금통위는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3.25%로 0.25%포인트(p) 내렸다.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0.25%p 올리며 인상을 시작한 지 3년 2개월 만이다. 기준금리 인하 자체로 보면 2020년 5월 이후 4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통화긴축에서 완화로 한은의 기조가 바뀌었지만 은행 대출 금리는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이에 연동되는 시장금리가 내려감에 따라 대출 금리도 내려가지만 이미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시장금리에 선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임계점을 넘어선 가계대출 증가세에 화들짝 놀라 가계대출 관리에 총력을 경주하겠다고 다짐한 금융당국의 의지도 시장금리가 하락하는 것을 막는 데 일조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8월 가계대출이 전월 대비 9조7천억 원 증가하며 3년 1개월 만에 최대치로 치솟은 뒤 가계대출 총량 관리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이 13일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부동산금융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모두 2881조 9천억 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총액(2837조 6천억 원)보다 44조 3천억 원 증가한 수준으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무려 115.9%로 집계됐다.
주지하다시피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는 부동산담보 대출 같은 가계 여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로 대표되는 기업 여신, 부동산 펀드나 리츠를 포함하는 금융투자상품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부동산금융 익스포저가 금액으로는 2837조 6천억 원,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는 무려 115.9%에 달한다는 건 실로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모든 돈이 부동산으로만 몰리고 있다는 것인데 금융당국 입장에선 이를 강하게 통제하지 않을 길이 없다.
더구나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상승하는 모습마저 관찰되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 금리는 지난 11일 기준 연 3.99~5.78%로 7월19일(연 2.84∼5.294%)과 비교해 하단과 상단 모두 각각 무려 1.15%포인트, 0.486%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은행채(5년)는 3.345%에서 3.304%로 0.041%포인트 떨어졌으나 가산금리를 올리는 한편 우대금리를 줄였기 때문이다.
내년 1월까지 추가 금리 인하 없다?
시장참가자들이 오매불망 고대하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시장금리는 요지부동인 가운데 한국은행은 추가 금리 인하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시각을 내놓았다.
한국은행 금융통회위원회는 3개월 내 기준금리 전망에 대해
이창용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중 5명이 향후 3개월 후(내년 1월 포함) 금리 동결 의견을 냈고 1명의 위원만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한 금통위 회의 직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번 금리 인하가 가계부채 증가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에 “금리 인하를 어떤 속도로 하느냐도 이 문제에 굉장히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영끌족’(한계까지 대출을 낸 차주)에 대해선 “한동안 이자율 수준이 예전의 0.5% 수준으로 갈 가능성은 굉장히 적다”며 “(미국 등이) 50bp(1bp= 0.01%포인트) 내린다고 우리도 이제 50bp씩 떨어지겠구나, 그러니까 돈 빌려도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하시면 안 된다”는 경고장을 바로 날렸다.
금통위원들의 표결 결과와
이창용 총재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번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은 ‘매파적 인하’로 해석하는 것이 온당하며 11월 추가 인하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봐야 한다.
2020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많은 시장참가자들이 2020년과 2021년을 그리워한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기준금리가 실효하한까지 떨어지고 시중에 유동성이 흘러넘쳤던 시절이 그 때였다. 유동성의 홍수는 자산 가격을 끝없이 밀어올렸고 부동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코로나펜데믹 당시의 경험이 워낙 강렬했던 터라 적지 않은 수의 시장참가자들은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폭포수처럼 끌어내릴 것이고 그러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빠르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니 그때만 오면 부동산 가격도 용수철처럼 튀어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그건 무망한 기대고 바람이다. 수십 년 동안 잠들어 있다 깨어난 인플레이션의 습격을 경험한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의 부활을 초래할 수 있는 기준금리 인하 드라이브를 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얼마 전 빅컷(기준금리 50bp인하)을 단행한 연준은 경기침체에 대한 예방적 대응과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승리를 위한 최적의 길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특히 견조하기 이를 데 없는 미국의 고용지표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드라이브를 기대하기 어려운 마당에 한국은행이 무슨 수로 기준금리를 급진적으로 내릴 수가 있겠는가.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환율만 놓고 보더라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드라이브는 예상하기 힘들다. 게다가 위태롭기 짝이 없는 가계부채의 양과 질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국민경제로 눈길을 돌리면 사정은 정말 심각하다.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기업투자, 민간소비, 정부지출, 순수출 가운데 양호하다고 평가할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기실 소득과 성장이 망가지고 있는 마당에 유동성에 힘입어 부동산 가격 상승을 고대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에 가깝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7월 8916건에서 8월 6180건, 9월 2399건으로 급전직하하고 8월 경매신청이 18년 만에 최다를 기록하는 등 이미 부동산 시장에는 피로의 기색이 가득하다.
부동산 시장에 2차 하락이 시작되었음을 방증하는 지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한은의 매파적 기준금리에 현혹돼 섣불리 투자에 나서는 건 위험천만하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땅을 둘러싼 욕망과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토지정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투기공화국의 풍경’을 썼고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을 함께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