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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리포트 10월] 세종대왕이라면 '응급실 뺑뺑이' 어떻게 해결했을까

박창욱 부국장 cup@businesspost.co.kr 2024-10-07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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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한 지 9일 한글날로 578돌이 된다. 한글 창제 외에 세종대왕의 업적은 손으로 꼽기도 힘들다.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물시계), 측우기 같은 과학기술 발전부터 대마도 정벌과 '4군 6진' 개척 같은 국방뿐 아니라 경제와 문화예술 진흥까지 그야말로 찬란하다. 
 
[데스크리포트 10월] 세종대왕이라면 '응급실 뺑뺑이' 어떻게 해결했을까
▲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의 모습. <연합뉴스>

누구나 아는 이런 치적 외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은 또 있다. 

바로 조선왕조의 공론정치 시스템을 사실상 구축했다는 점이다. 세종대왕이 펼친 여론을 중시하는 정치는 그 뒤 여러 왕과 신하에게 훌륭한 리더십의 전형이 됐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장의 저서 '소통정치와 국가경영'을 보면 후대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종의 리더십을 언급한 것은 성종부터 현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79차례에 이른다.

조선 후기 개혁군주의 표상으로 꼽히는 정조대왕 같은 분은 즉위 초부터 세종대왕을 아예 본보기로 삼았다. 

정조실록 3년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의 예악문물(禮樂文物)은 모두 영묘(英廟, 세종)의 제도가 아닌 것이 없다. 그 큰 규모와 아름다운 법을 이제까지 준수하니 어찌 성대하지 않겠는가'라는 내용이 있을 정도다.

특히 세종대왕이 일정한 토지마다 정해진 곡물을 거두는 정액제 세금 제도인 '공법' 시행을 위해 무려 17년간 진행한 논의 절차를 보면 오늘날 민주정치 체제 기준에서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세종대왕은 세제 개혁에 반대하는 대신을 우선 설득했고 당시 조세대상 국민의 약 4분의 1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이 여론조사에서 찬성과 반대가 6대 4 정도로 나왔는데도 세종대왕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제도 시행을 보류한 뒤 추가 검토에 들어갔다.

당시 세금제도는 작황에 따라 세율을 정하는 제도였다. 하지만 작황을 판단하는 관리에 따라 불법과 편법이 난무했다. 또 관리를 대접해야 하는 백성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해 정액제 세금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세제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정액제 세금은 토지가 많고 비옥한 고장은 유리하고 척박한 고장은 불리한 것으로 여겨졌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전라도, 경상도에선 정액제 세금에 찬성이 압도적이었으나 강원도나 평안도, 함길도(함경도) 등에선 반대가 많았다. 또 여론조작의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이에 세종대왕은 경상과 전라에서부터 시범 시행을 하며 제도를 보완해 나갔다. 이를 통해 반대 의견을 설득한 뒤 재위 26년 마침내 전국적으로 정액제 세금 제도를 시행했다. 

재위 9년에 처음 논의를 시작한 뒤 17년 만에 이뤄낸 정책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공평과세 제도를 이뤄 중기까지 풍요로운 시절을 이어갈 수 있었다. 

책 '세종공법(오기수 지음)'에서는 세종의 이런 정치를 놓고 '절대군주 시대에 이렇게 민주적이고 과학적 방법과 절차로 정책이 만들어지는 일은 세계사를 보아도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민주국가 시대인 요즘 벌어지는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 공백' 사태를 보면 세종대왕이 만든 역사적 전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인다. 

정부는 의료 정책이 국민의 생명과 관련한 중대사임에도 무리하게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현상을 불러일으켰고 의료 공백 사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는 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필수 의료과와 지방 의료 사각지대를 중심으로 의사가 부족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거친 추계와 형식적 공청회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밀어붙였다. 

내년부터 곧바로 3천 명 수준인 의대 정원을 2천 명을 늘어난 5천 명대로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미래가 불안해진 전공의를 중심으로 극렬한 반발이 나왔고 사직 사태가 이어졌다.

의대생들도 휴학했고 의대 교수 단체에서도 현실적으로 의학 교육이 불가능해진다며 갑작스러운 의대 증원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의료 시스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증원 규모를 1500명 대로 줄었고 최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선 의료계를 향해 사과의 목소리를 냈다. 

대통령직속 의료개혁특위는 뒤늦게 2026년 이후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를 만들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며 의료계 참여를 제안했다. 또 교육부에선 내년 복귀 조건부 휴학 허용과 6년인 의대 교육과정을 1년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이에 급격하게 밀어붙인 의대 증원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정부가 자인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보다 못한 국민의힘에서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통해 의료개혁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꼬인 매듭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 입시가 시작된 만큼 내년 의대 증원 계획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나 의료계에선 내년 의대 증원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하다. 

이로 인해 여야의정 협의체는 제안한 지 한 달여가 지나도록 출범조차 못 하고 있다. 그 사이 구급차가 치료할 병원을 찾지 못하는 '응급실 뺑뺑이'가 늘어나며 희생당하는 국민이 자꾸 늘어가고 있다. 2024년 대한민국 의료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데스크리포트 10월] 세종대왕이라면 '응급실 뺑뺑이' 어떻게 해결했을까
▲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2024년 4월9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의 심장전문병원인 부천세종병원을 방문해 중환자실을 찾아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대통령실>

정부가 의료계를 향해 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말만 반복하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대한민국의 의료체계는 붕괴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는 불안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세종대왕은 "일을 맡은 자들이 빨리 끝내려고 힘쓰기 때문에 도리어 소란을 일으키는 폐단이 있다(세종실록 25년)"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가 검찰에서 범죄자 수사하듯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다 이 지경에 이른 것과 같은 일을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 정책에서 최근 상황과 같은 사실상의 무정부 사태가 더 이상 길어지면 일각의 우려대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실제로 무너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의료계에서 나타나는 이기적 집단 행동이 옳다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의료 정책은 교육만큼이나 긴 호흡에서 마련되야 하는 '백년대계(百年大計)'가 필요하고 이는 결국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의료계에 밀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을 달래 의료정책 협상장에 나오게 할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 결단은 오직 윤석열 대통령만이 내릴 수 있다.

윤 대통령이 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이라면 응급실 뺑뺑이를 어떻게 해결했을까'라는 고민을 한번 해봐 주었으면 좋겠다. 나이 드신 부모님을 둔 입장에서 드리는 간곡한 부탁이다. 박창욱 정책경제·글로벌&기후에너지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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