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은 중소 협력업체, 가맹점주 등과 동반성장을 필수로 여기는 그룹의 상생경영 방침에 따라 여러 프로그램을 펼쳐왔지만 불공정 행위 의혹을 받으며 그 동안 기울인 노력에 빛이 바랠 처지에 놓였다.
▲ CJ그룹이 계열사들의 잇따른 불공정 행위 논란에 그 동안의 상생경영 행보의 의미가 퇴색할 처지에 놓였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CJ올리브영의 ‘갑질 의혹’과 관련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의혹이 규명된다면 처벌 수위가 지난해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떠오른다.
CJ올리브영은 경쟁사인 무신사와 거래하는 중소 납품업체 구매 담당자에게 무신사 판촉행사에 참여하지 말 것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정위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한 신고를 접수한 뒤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정위는 10일 서울 용산구 CJ올리브영 본사 사무실에 조사관을 보내 납품업체 계약 관련 서류를 살펴보는 등 현장조사도 진행했다.
지난해에도 CJ올리브영은 비슷한 문제로 공정위 조사를 받았다.
당시 CJ올리브영은 △행사독점 강요 △판촉행사 후 정상납품 가격으로 미환원 △정보처리비 부당수취 행위 등을 한 것이 인정돼 시정명령과 과징금 18억9600만 원을 부과 받았다.
이때는 공정위가 핵심 쟁점이었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와 관련한 결론을 내지 않고 심의를 끝냈기 때문에 무거운 처벌은 피할 수 있었다. 시장지배적 지위가 인정됐다면 CJ올리브영의 매출 규모와 대상 기간을 고려했을 때 수천억 원대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비슷한 의혹이 재발한 만큼 공정위가 관련 의혹을 사실로 규명한다면 이전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CJ그룹의 다른 계열사 CJ프레시웨이는 자회사 부당지원 혐의로 지난달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 245억 원을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CJ프레시웨이가 식자재 유통 자회사 프레시원에 인력을 지원한 뒤 인건비(334억 원 상당)까지 모두 대신 지급하며 중소상공인 위주의 시장에서 프레시원이 유력한 지위를 얻도록 부당지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CJ프레시웨이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301억 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과징금 규모가 1개 분기 영업이익이에 거의 맞먹는 수준인 셈이다.
CJ프레시원은 식자재 유통 시장이 다수의 중소상공인들로 이뤄진 만큼 프레시원이 차지하고 있는 시장 점유율은 시장지배적 지위와는 거리가 멀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행정소송 등을 통해 소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CJ그룹으로서는 계열사들이 잇달아 불공정 행위 논란에 휩싸인 만큼 부담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아직 절차가 완결되진 않았지만 과징금 등의 유형적 손실뿐 아니라 의혹만으로도 이미지 타격 등의 무형적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CJ그룹은 B2C(기업과 소비자 거래) 사업 비중이 높은 편이라 기업 이미지의 중요성이 작지 않다.
아직 CJ그룹에서는 불매 운동 등의 소비자 단체 행동이 본격화한 적이 없지만 비슷한 사업을 하는 식품·유통 기업 가운데는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확산으로 직접적 피해를 본 곳들도 제법 있다.
사업구조상 다수의 협력업체와 가맹점주들과 접점이 많아 이들과 관계에서 공정성과 관련한 시비가 불거질 여지가 애초에 많다고도 볼 수 있다.
CJ그룹 차원에서 상생경영을 늘 강조해온 배경이기도 하다. CJ그룹은 이번 추석을 앞두고도 상생경영의 일환으로 중소 협력업체 3700여 곳에 약 5800억 원의 결제대금을 미리 지급하기로 했다. 이번 조기집행 금액은 역대 최대치다.
▲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CJ그룹 계열사에서 불거진 여러 의혹을 놓고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회장은 올해 1월11일 CJ올리브영 본사를 방문해 임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유통업의 기본은 상생과 동반성장”이라며 “협력업체에 손해를 보도록 강요하는 회사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계열사 현장을 방문한 것은 2019년 이후 약 5년 만이었는데 이 자리에서 상생경영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이보다 앞서 이 회장은 2021년 11월3일 사내 방송을 통해 중기 비전을 공개하는 자리에서도 “계열사들은 기본정신과 철학으로 웰니스와 서스테이너빌러티, 즉 모두가 잘사는 것과 공정·갑질 불가·상생은 기본이고 세계적 흐름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기반한 신사업으로 미래 혁신 성장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며 상생경영을 그룹의 미래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경영방침에 따라 CJ그룹은 각 계열사별로 중소 협력사와 동반성장을 위한 활동을 진행해왔다. 협력사에 직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판로 개척과 마케팅 등을 지원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계열사들이 불공정 논란에 휘말리며 CJ그룹으로서도 곤혹스런 형편이 됐다.
CJ올리브영 관계자는 “최근 협력사 관련 논란이 제기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관련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적극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CJ프레시웨이 관계자는 “프레시원은 지역 유통사업자와 당사가 ‘공동경영’을 전제로 ‘지역 식자재 유통시장 선진화’를 위해 합의계약을 통해 만든 공동 사업이다”며 “공정위 판단에서 이 점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며 이에 소송을 포함해 주어진 절차에 따라 다시 한번 판단을 구해보고한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