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희 기자 choongbiz@businesspost.co.kr2024-09-10 14: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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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거친 발언으로 의사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박민수 보건복지부2차관 해임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당에서까지 제기된다.
의료계가 의료 대란과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논의의 장인 '여야의정 협의체'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어 정부가 참여를 유도할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월21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제46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박 차관을 해임해 의료계와 갈등을 해결하는데 실마리를 만들지 여부를 놓고 관심이 쏠린다.
10일 정치권 얘기를 종합하면 9월 들어 여당에서도 차기 대권주자뿐 아니라 소장파 의원에 이르기까지 의료갈등과 관련한 정부 책임자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교체 대상으로 주로 지목된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5일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정부와 의료계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신뢰관계가 깨졌다"며 "책임부처 장들이 물어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바라봤다.
국민의힘 내 소장파로 꼽히는 김재섭 의원은 6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의사들이 박민수 차관과 마주앉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어한다"며 "의정 갈등의 가장 첫 번째 핵심은 박민수 차관에 대한 경질 문제가 나와야 된다고 여당 구성원으로서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도 "의정대화를 위해 의사들의 상한 마음을 들어주고 가야 된다"며 "가장 뇌관이 되는 사람이 박민수 차관"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9일 CBS라디오 같은 방송에 나와 "의사들을 대화에 참여시키려면 융통성을 보여줘야 한다"며 "박 차관 정도는 스스로 좀 고민을 하는 것이 사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박민수 차관은 정부의 의료개혁에서 핵심역할을 맡는 과정에서 의료계의 미움을 한몸에 받는 인물로 통한다.
의료계에는 박 차관의 입을 거쳐 발표된 정책이나 의료대책과 관련해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책임한 말을 내놓는다'는 시각이 강했다. 그러던 차에 2024년 2월 정부 브리핑에서 선진국처럼 의대증원을 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의새들이 반대해서'라며 의사 비하표현으로 비춰질 수 있는 말을 해 박 차관이 의사들의 눈 밖에 났다.
박 차관이 발언 직후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의료계의 거센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각종 의료인 커뮤니티에서는 박 차관의 발언을 비꼬아 '박민새'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의새발언이 의도적이었다면 공직자로서 자세가 결여된 것이니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4월 열린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자리에서는 "의사를 자극하는 박민새 차관은 걸레를 물고 잔다"는 한 의대 교수의 발언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3월26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회장에 당선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임 회장은 직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의정대화의 조건으로 '박 차관의 파면'을 내걸었다. <연합뉴스>
현재 의료개혁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격화되면서 의료계는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의료개혁 백지화가 없다면 의료현장 복귀와 의정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성근 전국의대교수협의회 대변인은 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정부의 사과와 2025년도 의대증원 백지화가 없다면 의정대화 참여는 힘들다"는 취지로 말했다.
최안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도 10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2025년도 의대증원안을 백지화하고 의료현장을 정상화하면 의료개혁 협의체 참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기자들에게 "정부와 대화 조건은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을 파면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올해 2월부터 본격화된 정부와 의료계 사이 갈등이 7개월째 이어지면서 국내 병원의 의료공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일각에 따르면 '응급실 뺑뺑이' 같은 심각한 피해사례도 심상찮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각종 교통사고와 안전사고 화재사고가 급증하는 추석에는 대규모 의료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비상대책위원회가 9월3일부터 7일까지 전문의 5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 응급실 근무자의 97%, 비수도권 응급실 근무자의 94%가 추석연휴가 '위기'라고 예상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9일 입장문을 내 "추석 연휴 기간 하루 1만 명의 환자가 응급진료를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정부가 의료계 요구를 모두 들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의사들을 의료현장과 여야의정 협의체 대화테이블에 돌아올 수 있도록 '명분'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의료계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야 대화가 가능하다"며 "그런 점에서 대통령 사과와 책임자 문책이 의사들을 대화테이블에 앉게 하는 첫 출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총연합에서 현안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보다못한 여당에서도 국회가 참여하는 소통의 장을 제안해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연 현안브리핑에서 “의료 공백 해소와 지역·필수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하자”며 "의정 갈등으로 빚어진 의료 차질과 혼란을 수습하고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손질할 방안을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과 민주당 사이에 여야의정 협의체 발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여태껏 '여론을 고려한 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의료계와 화해를 위해 박 차관 경질을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총선 직후인 지난 4월과 6월 전공의 이탈과 지지율 하락에 따라 인적쇄신 일환으로 박민수 차관의 식약처장 이동설이 돌기도 했으나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9일 YTN라디오 뉴스파이팅에서 "의료 개혁과 관련된 부분 논의가 진행될 상황인데 이때까지 그 부분을 담당해 왔던 정부 관계자를 문책하거나 경질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의료개혁 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인 만큼 대통령이 사과할 문제라고도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일 KBS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해 "8일 한남동 관저에서 열린 만찬 참석자에게 의료개혁 문제를 물었더니 '윤석열 대통령 고집 모르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을 철회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증원을 원천무효하고 대국민 사과, 관계자·책임자를 면직시키고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