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미국⑥] 미국 교수 2인 "401K도 접근성, 해고자 기여분 포함 제도 보완 필요"
조혜경 기자 hkcho@businesspost.co.kr2024-06-10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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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 월가에 있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정문 모습. 뉴욕증권거래소는 미국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장소로 여겨진다. 미국 퇴직연금도 뉴욕증권거래소를 바탕으로 안정적 노후 자산으로 거듭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뉴욕(미국)=비즈니스포스트] 미국은 오랜 역사, 높은 수익률, 거대한 자산운용 규모 등을 자랑하는 퇴직연금 선진국으로 여겨진다.
한국을 포함해 퇴직연금 후발주자인 여러 나라들에게는 ‘롤모델’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퇴직연금 역시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더 나은 제도로 발전하기 위한 고민과 제언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번 뉴욕 출장 기간 더 나은 미국 퇴직연금 시장을 바라는 학계 교수들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5일 화상인터뷰로 만난 테레사 길라두치 미국 뉴스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정부가 사회보장연금(국민연금)을 가진 모든 사람이 추가적으로 퇴직연금을 적립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며 퇴직연금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테레사 길라두치 뉴스쿨 경제학 교수가 화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미국 퇴직연금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회사에서 401(k)를 제공하고 높은 매칭 비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면 ‘연금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실제로 401(k)를 가입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 사회보장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 수준이다”며 “근로자들은 소득대체율을 높이기 위해 추가적으로 노후자금을 적립해야 하지만 전체 근로자 가운데 절반만이 401(k)를 가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퇴직연금 제도는 가입 의무조차 없는 높은 자율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에 따라 퇴직연금 혜택의 사각지대도 크다는 것이다.
길라두치 교수는 퇴직연금 ‘접근성’ 문제를 단순히 가입여부에 국한하지 않았다.
근로자는 퇴직연금 가입 이후 자산운용, 적립금액 등에서 수많은 선택지를 제공받는데 이에 대한 정보 접근성 역시 떨어진다는 것이다.
길라두치 교수는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는 연구자들조차도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후를 위해 어디에 어떻게 저축해야 하는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각 시점에 얼마를 저축해야 충분한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퇴직연금 시스템이 성공적 결과를 내려면 단순해야 하고 단순함의 핵심은 자동화에 있다"며 “모든 근로자들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퇴직연금에 자동으로 가입되고 운용되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바라봤다.
길라두치 교수는 미국 학계에서 노동경제학자이자 은퇴·퇴직설계 전문가로 평가된다. 은퇴와 연금에 대한 저서를 꾸준히 집필하고 있으며 연금제도의 개선 방안을 담은 법안을 지지하는 활동에도 참여한다.
▲ 사만다 프린스 펜실베니아주립대 디킨슨 법대 법학 교수는 401(k)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바라보고 있다. <펜실베니아주립대 디킨슨 법대>
사만다 프린스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 디킨슨법대 법학교수 역시 401(k)에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그는 특히 ‘베스팅스케줄’이 근로자들의 노후자금 형성을 방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베스팅스케줄은 근로자들이 회사가 제공하는 ‘매칭’ 기여분을 받기 위해 근무해야 하는 일정 기간을 말한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6년까지도 적용된다.
근로자는 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회사의 매칭 기여분을 받을 수 없다. 문제는 미국의 유연한 고용문화에 따라 많은 근로자들이 매칭 기여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프린스 교수는 “베스팅스케줄 제도는 근로자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실제는 그 기능을 하지 않는다”며 “근로자들은 401(k) 매칭 기여분을 위해 이직을 포기하기보다는 매칭 기여분을 포기하고 더 나은 근무환경을 찾아 이직을 한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직장에서 해고되는 경우에도 베스팅스케줄이 적용돼 매칭 기여분을 받을 수 없다.
프린스 교수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80만 명이 자발적·비자발적 퇴직에 따라 퇴직연금에서 회사의 기여분을 받지 못했는데 금액으로 따지만 15억 달러(약 2조 원)가 넘는다.
프린스 교수는 “근로자들이 베스팅스케줄에 따라 회사 기여분을 받지 못하면 최종적으로 노후자금 마련 계획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보다 나은 퇴직연금을 위해선 베스팅스케줄 제도가 없어져야 한다고 봤다.
그는 “현재 베스팅스케줄도 과거보다 축소된 상황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제도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한 만큼 언젠간 분명 사라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프린스 교수는 미국 언론에 ‘퇴직연금 전문가’, ‘기업 복지제도 전문가’ 등으로 소개되는 학자로 최근 주요 연구주제 역시 401(k)다.
▲ 미국 뉴욕 거리. 뉴욕 거리를 거닐다보면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길라두치 교수와 프린스 교수는 미국 퇴직연금 시장의 좋은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미국 퇴직연금에도 개선해야 할 점이 분명히 있고 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길라두치 교수는 한국의 퇴직연금 제도 발전을 위해서는 미국보다도 네덜란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네덜란드의 퇴직연금 제도는 전세계에서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며 "한국이 퇴직연금 시장 발전을 위해 다른 나라를 참고하려 한다면 네덜란드의 퇴직연금 제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갈라두치 교수에 따르면 미국이 퇴직연금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과 달리 네덜란드 퇴직연금 제도는 강제성이 높은 편이다.
네덜란드는 퇴직연금을 일시금이 아닌 연금형태로만 수령할 수 있는 의무연금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래연금법을 제정해 모든 퇴직연금은 2028년까지 DC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머서와 글로벌 투자전문가협회(CFA연구소)가 매년 세계 주요국가의 연금제도를 평가해 발표하는 ‘글로벌 연금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2023년 종합점수 85.0점으로 1위에 올랐다. 미국은 63.0점, 한국은 51.2점을 받았다. 조혜경 기자
2024년 당신의 노후 계획은 안녕하십니까. 올해 한국사회는 퇴직연금을 도입한 지 20년차를 맞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이 퇴직 이후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퇴직연금'이 되기 위해선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퇴직연금 선진국을 찾는다. 우리보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호주, 일본, 미국의 퇴직연금 장단점을 알아보고 국내 퇴직연금제도가 가야할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