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4-02-06 14: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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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국회에서 지난해 논의가 중단됐던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나온다.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부실 사태가 발생한 뒤 정치권에서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금융당국이 부정적 입장을 내비치면서 진전되지 못했다.
▲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가운데)이 예금자보호한도 공약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최근 국민의힘이 예금자 보호한도를 늘리는 방안을 총선 공약으로 발표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즉각 시행할 수 있다고 받았다. 거대 양당이 모두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에 한 목소리를 낸 만큼 예금자 보호한도 논의에 다시 물꼬가 트일지 관심이 모인다.
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 관련 법안은 현재 12건이 계류돼 있다. 대부분 현행 보호한도 5천만 원을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금자보호제도는 금융회사가 파산 등을 이유로 예금을 고객에게 지급할 수 없는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금융사 대신 예금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주는 제도다. 금융사가 파산하면 법적으로 예금보험공사가 예금자 1인당 보호해주는 금액으로 현재 우리나라는 현재 최고 5천만 원까지 보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서민금융지원 측면에서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 카드를 꺼내들어 금융당국의 전향적 자세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1월30일 '서민·소상공인 새로 희망' 공약에서 예금자보호한도를 현행 5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경제 규모가 커진 것에 비해 (보호) 한도가 작다는 점, 대출금리와 비교해 이자금리에 대한 경쟁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고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국민의힘이 예금자 보호한도 샹향을 공약으로 내놓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은 이미 작년에 우리가 제안한 바 있다”며 "정부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의 예금자보호한도 공약에 관해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거대양당의 뜻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이 전향적으로 논의할 지 여부는 미지수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논의과정에서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이 가져올 부정적 효과들을 놓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부는 예금자 보호제도 개선을 위해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다. TF는 지난해 현행 유지, 단계적 상향, 일부 예금에 별도 한도 적용 등 시나리오를 두고 논의한 결과 현행 유지 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국회에 보고했다.
금융위원회는 2023년 10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예금보험제도 개선 검토 보고서’에서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함으로써 얻는 실익이 크지 않고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향후 찬반 논의, 시장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한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실익이 작다고 지적한 부분은 예금자보호한도를 늘렸을 때 금융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혜택보다 금융권의 부담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예금보호를 위한 재원은 각 은행과 저축은행이 예금보험공사에 지불하는 보험료로 조성되는데 한도가 상향되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들한테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보고서에서 “보호한도를 1억 원으로 하면 금융사의 예보료는 최대 27.3% 상승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예보료가 인상돼 금융소비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도 같은 해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금융사들의 예보료율 부담 여력 문제를 언급하며 2027년쯤에 예금자보호 한도를 늘리는 것이 적합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유 사장은 "예금보호 한도를 높이려면 예보료율을 높여야 하는데 과거 외환위기, 저축은행 사태에 들어간 구조조정 비용을 충분히 다 상각한 상태가 아니다"며 "금융사들은 0.1%의 특별기여금을 내고 있어 추가 예보료율 인상 부담 여력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이 가져올 자금이동에 따른 금융기관 안정성 대책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예금자보호한도를 늘릴 경우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저축은행으로 예금이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예금자보호 한도를 1억 원으로 상향하면 은행에서 저축은행으로 자금 이동이 발생해 저축은행 예금이 16~25%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을 통한 혜택이 소수의 금융 소비자들에게만 집중된다는 분석도 있다.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8월 ‘2023년 국정감사 이슈 보고서’에서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 원으로 상향할 경우 추가 혜택을 받는 예금자는 금융권별로 약 1~2% 내외에 불과해 한도 상향 효과는 미미하고 혜택을 받는 예금자도 주로 고액자산가에 집중된다고 바라봤다.
이러한 점을 반영한 듯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준 수석전문위원은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금융기관이 보험료 부담을 대출 금리 상향이나 예금 금리 인하와 같은 형태로 금융소비자에게 전가할 경우 예금자의 편익이 오히려 감소할 가능성 등에 관한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예금보험공사의 예금자보호한도 설명. <예금보험공사 블로그 갈무리>
이렇듯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에 관해 살펴야할 점이 많은 만큼 2월 임시국회에서 곧바로 법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2월 임시국회는 오는 19일부터 열리지만 본회의는 29일에만 열린다. 또한 쌍특검 법안, 선거법 개정안 등 정치 현안이 산적해있다.
다만 정책결정권을 가진 정부와 여당이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민주당이 이에 호응한다면 논의가 급물살을 탈 공산도 크다.
국회 정무위 소속으로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법안을 발의한 김한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은 오래된 의제로 이미 많은 검토가 완료된 사안"이라며 "여당 측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논의에 임한다면 얼마든지 논의에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말했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에 관한 입장에 관한 질문에 “예보는 정책 결정에 따라야 하는 입장”이라며 “정책 결정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표할 위치는 아니다”라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