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유 기자 jsyblack@businesspost.co.kr2024-01-15 15: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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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이우현 OCI그룹 회장이 한미약품그룹과 그룹 간 통합이라는 전례 없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 회장은 이번 통합으로 태양광용 폴리실리콘과 화학사업에 더해 제약·바이오사업을 그룹의 또 다른 중심 축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비중이 높은 실적 구조를 극복하고 수익 안정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이우현 OCI그룹 회장(사진)이 제약·바이오사업 확대를 위해 그룹 간 통합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 회장은 6년 가까이 육성해 온 제약·바이오사업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기 위해 대형 제약사를 거느린 한미약품그룹과 손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증권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OCI홀딩스가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의 통합을 통해 성장성을 확보하고 실적 변동성을 줄이는 효과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승택 DB투자증권 연구원은 “본업(태양광용 폴리실리콘)의 탄탄함이 여전한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바이오 회사를 통해 장기 성장성의 기대 요인이 더해졌다”고 분석했다.
제약·바이오 분야는 산업 자체가 빠르게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표적 산업으로 꼽힌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제약·바이오산업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0년 11조3183억 달러(약 1경4900조 원)에서 2026년 16조1919억 달러(2경1300조 원)으로 연평균 6% 이상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OCI홀딩스는 주력 사업인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사업의 경쟁이 심하고 변동성이 높다는 이유로 저평가를 받아왔다”며 ‘시황 변동이 크지 않은 제약·바이오사업 투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OCI홀딩스는 그동안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사업 실적에 따라 전체 실적이 좌우돼 왔다.
2022년 연간 기준으로도 OCI홀딩스의 전체 실적에서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중심 베이직케미칼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 40%, 영업이익 65%다.
현대차증권은 두 그룹 통합 이후 OCI홀딩스의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사업(자회사 OCIMSB) 실적 비중이 매출 13%, 영업이익 38%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다른 화학 자회사 OCI는 14%, 한미약품은 19%로 전망했다.
이는 이 회장이 한미약품그룹과 통합의 중장기 목적으로 가장 먼저 내세운 효과이기도 하다.
OCI홀딩스는 한미약품그룹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취득과 관련한 IR자료에서 중장기 목적으로 ‘미래 지속 가능한 성장성 및 수익성 확보를 위한 기존 주력 사업 포트폴리오의 다변화’를 첫손에 꼽았다.
기존 신재생에너지(태양광)와 화학사업, 화학 분야의 반도체·배터리소재 신사업에 더해 제약·바이오를 핵심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번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의 통합은 이 회장의 승부수로 평가된다.
국내에서 주력 사업이 아예 다른 두 대기업집단이 합쳐 새 기업집단을 만드는 것은 이전까지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재계의 시선이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에 모이는 이유다.
그만큼 이 회장 입장에서는 제약·바이오사업에 덩치가 큰 긴밀한 조력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풀이된다.
이 회장은 2018년부터 제약·바이오사업을 OCI홀딩스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고 육성해왔다. 다만 OCI홀딩스의 제약·바이오사업에서의 뚜렷한 성과는 부족하다는 시각이 많았다.
▲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의 통합 지배구조 개요. OCI홀딩스가 통합 지주회사가 되고 그 아래 현재 두 그룹의 사업이 포진한다. < OCI홀딩스 >
OCI홀딩스는 2018년 부광약품과 신약 개발, 유망 벤처 투자 등을 위한 합작투자사 비앤오바이오를 설립하며 제약·바이오사업에 진출했고 바이오 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이후 국내 에스엔바이오사이언스 및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 이스라엘 뉴클레익스, 미국 에이디셋바이오 등에 각각 수십억 원 규모로 투자해 췌장암 치료제, 암 조기진단기술, 면역 항암세포치료제 등 관련 제품군·품목의 제조권과 유통권, 판매권을 확보했다.
OCI홀딩스는 2022년 2월에는 1400억 원을 들여 부광약품 지분 10.9%(774만7934주)을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르며 제약·바이오사업을 본격화했다. 이 회장은 당시 부광약품 공동대표이사에 올랐고 지난해 11월부터는 단독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다만 2022년 기준으로 제약·바이오사업을 포함한 OCI홀딩스 기타 부문은 매출 비중은 여전히 전체의 1%에 그치고 영업손실(194억 원)을 보고 있다.
부광약품을 따로 봐도 OCI홀딩스에 인수된 2022년 연간 기준 첫 연결기준 영업손실(2억 원)을, 지난해에도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 218억 원을 기록했다.
부광약품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지난해 11월 조현병 및 제1형 양극성 우울증 치료제 ‘라투다’의 품목허가 승인을 받으며 혁신신약 개발에서 첫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 회장이 노리는 건 글로벌 제약바이오 선도그룹으로의 '퀀텀 점프'다. 이미 1조 원 이상의 매출, 1천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며 5대 제약사로 꼽히는 대형 제약·바이오기업을 둔 한미약품그룹을 통해 글로벌 제약바이오를 그룹의 3대 성장판 가운데 하나로 세우려는 것이다.
한미약품그룹 계열사 한미약품은 2022년 국내 의약품 생산실적에서 모더나코리아(1조2756억 원), 셀트리온(1조2226억 원)에 이어 3번째로 많은 1조2018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각종 해외 학회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후보물질 연구결과를 40건 발표하기도 했다.
한미약품은 2022년 연결기준 매출 1조3315억 원, 영업이익 1581억 원을 거뒀다. 지난해에도 3분기까지 영업이익은 1506억 원을 거두며 증가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많다.
이 회장은 한미약품그룹과 통합을 바탕으로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미약품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제약·바이오사업에 OCI그룹이 태양광·화학사업으로 쌓아온 미국, 동남아시아, 일본 등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회장은 지금까지 중요한 결단을 통해 OCI그룹을 성장시켜왔다. 가장 쉽지 않았던 결정으로는 2020년 2월 결정한 군산 공장의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중단이다.
당시 중국 기업들의 대규모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증설에 따른 ‘치킨게임’에 OCI홀딩스는 2018년부터 2020년 2분기까지 7개 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이에 OCI홀딩스는 전체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연간 생산능력 7만9천 톤의 66%에 이르는 5만2천 톤 규모의 군산 공장 설비의 가동을 모두 멈췄다. 대신 수력 발전으로 전기를 공급받아 국내보다 전기료가 값싼 말레이시아(당시 2만5천 톤)를 유일한 생산기지로 삼았다.
OCI홀딩스는 말레이시아 공장의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능력을 3만5천 톤까지 늘렸고 최근 ‘비중국산 폴리실리콘’ 프리미엄이 더해져 좋은 수익성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1~3분기 OCI홀딩스 베이직케미칼 부문은 영업이익률 43%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 후반 대인점을 고려하면 이 회장의 결단이 성공한 셈이다.
지난해 5월에는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사업에 가려있던 화학사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을 단행하기도 했다. 특히 기존 OCI(현 OCI홀딩스)에서 분할한 사업회사 OCI를 통해 2025년 실적 가시화를 목표로 반도체·배터리소재사업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OCI는 반도체 8대 공정 가운데 웨이퍼 제조, 증착, 연마, 세정, 식각 등 5개 공정과 관련된 반도체소재를 생산해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배터리소재로는 포스코퓨처엠과 세운 합작법인 피앤오케미칼을 통해 지난해 말부터 배터리 음극재 핵심 소재인 고연화점 피치(High Softening Point Pitch)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OCI홀딩스는 12일 이사회 결의를 거쳐 한미사이언스와 현물출자 및 신주발행 취득 등을 통한 그룹 간 통합에 관한 합의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을 통해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를 확보하고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 겸 한미약품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는 OCI홀딩스 지분 10.4%를 취득한다.
OCI홀딩스는 통합 지주사가 되고 이 회장과 임 사장 각자대표이사 체제의 2인 공동 이사회를 구성한다. OCI홀딩스는 추후 회사 이름과 회사 아이덴티티(CI) 변경 등 브랜드 통합 작업도 진행한다.
OCI홀딩스 관계자는 “이번 통합에 따라 두 그룹은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 선진화를 통해 사업과 관리의 통합을 이뤄냄으로써 각 부문 전문성을 강화하고 신규 사업 추진에 관한 동력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