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현 기자 naforce@businesspost.co.kr2023-12-1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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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2023년 12월19일을 기한으로 이동통신 신규 사업자를 모집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지원한 기업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제4이동통신사 선정을 위한 서류 접수 마감일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지만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KB국민은행,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등이 모두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어느 때보다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제4이동통신사 사업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으나 또 다시 불발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통신산업이 초기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면서도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이고 수익성도 높지 않아 기업들이 신규 진출을 망설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17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1월20일부터 12월19일까지 5G 28GHz 주파수 대역에 대한 할당 공고를 내고 신규 사업자를 모집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지원한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7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통신3사가 포기한 28GHz 주파수 800MHz 폭과 700MHz 대역의 앵커용 주파수 20MHz폭을 신규 할당한다고 발표하면서 다양한 유인책을 제시했다.
우선 주파수 비용(최저 경쟁가격)을 기존 통신3사보다 65% 적은 주파수 비용 742억 원으로 책정했다. 또 제4이통사는 정책금융기관으로부터 최대 4천억 원까지 융자받을 수 있도록 했다.
망 구축 의무수량 역시 기존 통신3사보다 대폭 줄어든다. 제4이통사는 주파수 할당일로부터 3년차까지 기지국 6천 대를 세워야 하는데 이는 기존 사업자들의 의무수량이었던 1만5천 대와 비교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혜택에도 기업들은 통신산업에 새로 진출할 만큼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통신시장의 과점체제를 깨고 기업들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통신비를 인하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4이통사 설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7번을 시도했음에도 모두 실패했다.
제4이통사 유치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이미 통신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점이 꼽힌다.
이동통신 보급률이 150%(알뜰폰, 피처폰 포함)를 넘어선 포화시장에서 제4이통사가 자리를 잡기가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피처폰을 제외한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은 2022년 기준 94.2%에 이르고 5G 가입자 비중도 70%에 근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신규 사업자가 자리를 잡으려면 기존 이통사보다 훨씬 좋은 혜택과 경쟁력으로 무장해야 한다.
게다가 제4이통사는 정부의 지원을 받더라도 설립 초기부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매년 1조 원 이상의 투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모두 회수하기에는 통신사업의 수익성이 그리 높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통신3사의 영업이익률은 5~10%에 그쳤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제4이통사는 실패했다.
일본 라쿠텐은 5년 전 기존 통신산업의 과점체제를 깨기 위해 제4이통사로 진출했으나 현재까지 누적 영업손실만 8190억 엔(약 7조4천억 원)에 이른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제4이통사업자 출범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매년 최소 1조 원 이상의 투자 금액이 만만치 않고 7800만 명의 포화된 이동통신시장에서 가입자를 빼앗아 오기도 어려워 이를 기반으로 현금흐름이 플러스 전환되기까지 10년 이상 소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KB리브모바일 이미지. < KB국민은행 >
게다가 정부가 제4이통사에게 할당하겠다는 28GHz 망은 통신사들도 아직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대역이어서 신규 사업자가 운영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범준 카톨릭대 교수는 2023년 7월 ‘5G 28GHz 신규 사업자 주파수 할당계획(안) 공개토론회’에서 “28GHz 망 투자를 진행하면서 통신비를 떨어뜨리는 것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라며 “기존 통신사가 못했던 비즈니스 모델을 추진할 수 있는 사업자가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지 기반과 능력이 없는 사업자가 진입하면 정부가 난처해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들은 제4이통사보다는 알뜰폰에서 기회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하면서도 수익성은 불확실한 제4이통사보다는 ‘가격’이라는 확실한 경쟁력으로 일정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알뜰폰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2023년 9월 기준 알뜰폰 회선 수는 1518만4393개로 1500만 개를 처음 넘어섰다.
KB국민은행이 2019년 선보인 알뜰폰 ‘KB리브모바일’은 가입자 40만 명을 확보했으며 우리은행도 현재 알뜰폰의 사업성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금융기업들은 알뜰폰과 금융업에서 상당한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KB리브모바일 고객은 국민은행의 입출금 예금계좌, 신용카드를 보유해야 하는데 이는 알뜰폰 사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본업인 금융분야 고객도 확보하는 셈이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제4이통사는 이번에도 가능성은 낮다. 네트워크 장애시 피해 보상을 해주려면 자금력 갖춘 업체여야 하기 때문”이라며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는 (알뜰폰 같은) 재판매 육성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