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스틱 규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한국 대응은 미지근하다. 사진은 쓰레기하치장에 플라스틱 폐기물이 섞여 쌓여 있는 모습. < Flickr >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유럽연합(EU) 등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규제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의 비중이 큰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플라스틱 협약 등 국제사회의 규제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커 보인다.
14일(현지시각)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독성물질관리법(TSCA)에 따라 독성 화학물질 5종을 대상으로 위해성을 평가하는 절차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평가 대상인 독성 화학물질은 아세트알데히드, 아크릴로니트릴, 벤젠아민을 비롯해 4,4′-메틸렌비스와 염화비닐 등이다. 해당 물질들은 12개월에 걸친 법정 절차를 통해 위해성 우선순위가 높은 물질(High Priority Substances)로 지정되면 추가로 위험성 평가가 시작된다.
피즈닷오르그 등 외신들은 환경보호청의 이번 발표에서 염화비닐(Vinyl Chloride)과 관련해 ‘PVC 플라스틱 생산의 종말(end of plastic production)’을 가져올 수 있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번 발표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 중인 암 정복 프로젝트 ‘캔서 문샷(Cancer Moonshot)’의 일환이기도 하다.
염화비닐은 주로 PVC의 제조 및 가공에 사용되는 물질로 1974년부터 발암물질로 분류돼 헤어 스프레이, 냉매, 화장품, 의약품 등에는 사용이 금지됐다. PVC는 파이프, 절연재 등 건자재로 주로 쓰인다.
비영리단체인 비욘드플라스틱의 주디스 엔크 대표는 “염화비닐은 50년 넘게 심각한 건강 및 환경 문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번 환경보호청의 조치는 이제 첫 단계(step one)에 불과하며 우리는 이를 수십 년 동안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PVC를 비롯한 플라스틱 관련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 생산량 감소, 재활용 비율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역시 2018년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 금지를 시작으로 2025년까지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 사용의 단계적 금지 등을 계획하고 있다.
▲ 한국환경회의, 노동환경건강연수고 관계자 등이 11월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유엔환경총회(UNEA)를 중심으로 제정 작업이 진행 중인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플라스틱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플라스틱 규제와 관련해 '법적 구속력' 있는 첫 국제협약이 제정되는 것으로 2024년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에서 최종협상이 진행된다.
올해 9월에 공개된 협약문 초안에는 플라스틱 생산 및 사용 감축, 재사용 시스템 활성화, 일회용 플라스틱의 단계적 퇴출, PVC 등 유해 폴리머 사용 금지와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한국은 플라스틱 관련해 최종 제품과 폐기물 부문을 제외하고는 생산, 유통, 폐기 등 모든 주기에서 수출 상위 7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플라스틱 수출에 적극적 나라다.
다만 정부의 대응은 미적지근해 보인다.
정부는 10월19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플라스틱 협약 대응 방향을 논의한 뒤 “우리나라의 석유화학산업 생산량이 세계 4위인 것을 고려해 신재 플라스틱 생산감축 목표설정, PVC 등 특정 물질의 일률적 규제조항 신설 등에는 신중한 접근을 하겠다”고 밝히는 데 그쳤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세계적 플라스틱 규제 추세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연구원은 11월30일 내놓은 ‘순환경제 탈플라스틱 시대, 국제 동향과 대응 전략’ 보고서를 통해 “예정대로 2024년 말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체결되면 플라스틱 감축의무가 국가별로 부여됨에 따라 관련 시장에 투자와 기술개발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커 새롭게 만들어지는 시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바라봤다.
이어 “플라스틱이 전 산업 분야에 두루 사용되는 만큼 당사의 제품이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지 국가별 규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파악해야 하며 나아가 사후적 규제대응을 넘어 신소재친환경제품 개발 등 플라스틱을 대체할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