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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리포트 12월] LG 상속 재판 계기로 지배구조2.0 만들어야

박창욱 기자 cup@businesspost.co.kr 2023-12-07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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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리포트 12월] LG 상속 재판 계기로 지배구조2.0 만들어야
▲ 2012년 4월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구자경 LG 명예회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의 미수연(88세)에 LG그룹 오너 일가가 참석한 모습.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과 부인 김영식 여사(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이사(앞줄 오른쪽). 구광모 LG그룹 회장(뒷줄 가운데). < LG >
[비즈니스포스트] 이 견해에 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크게 없어 보인다. 

LG그룹은 우리나라 재벌 가운데 사회적 평판이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힌다.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 때부터 쌓아온 오너경영 체제의 도덕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구 전 회장은 '정도경영'으로 재계에 모범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국민 신뢰 없이 기업은 영속할 수 없다" "부정한 방법으로 1등 할 거면 차라리 2등을 해라" 같은 경영철학은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구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재계를 뒤흔들었던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타격을 받지 않았다.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에서 구 전 회장은 "국회가 기업에 돈을 요구하는 정권을 막아달라”는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가 정경유착에서 자유로웠기에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구 전 회장은 경제지 머니투데이가 진행한 '존경할 만한 부자'를 묻는 2018년 설문조사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과 공익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펼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장 잘 실천했던 그룹 총수로 인정받았다.

LG그룹은 구 전 회장 재임 시절이던 2003년 국내 대기업집단 가운데 처음으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투명한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기 위한 상호출자, 순환출자 등의 관행을 선제적으로 끊어냈다.

이렇듯 존경받는 오너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2018년 5월 세상을 떠난 구 전 회장이 하늘에서 속을 끓일 만한 일이 그의 사후에 벌어지고 말았다. 

구 전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 세 모녀가 아들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김영식 여사와 구 전 회장의 두 딸은 기망을 당해, 쉽게 말해 속아서 구 전 회장의 지주사 LG 지분을 구광모 회장에게 상속하는 일에 합의했다고 주장하며 송사를 벌였다.

하지만 LG그룹에선 오너가 사이에 합의에 따라 적법한 절차로 상속이 마무리됐다고 맞섰다. 이로 인해 LG그룹 오너경영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김영식 여사 측이 상속재판에서 승소한다면 이들의 지분은 7.84%에서 14.09%로 늘어나고 구 회장 지분은 15.95%에서 9.7%로 줄어들 수 있어서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김 여사 측이 승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권리를 행사하도록 정해진 존속기간)이 지났고 구광모 회장 측과 합의한 사항을 무효로 돌릴 만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이런 분석의 근거로 꼽힌다.

다만 지난 11월16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2차 상속재판에서는 LG그룹의 오너가 내부의 다툼에 따른 지배구조 리스크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짐작해 볼 만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데스크리포트 12월] LG 상속 재판 계기로 지배구조2.0 만들어야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상속재산관련 소송이 진행된 2023년 11월16일 서울서부지방법원 410호 법정 앞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이 녹취록에는 오너 일가 사이 대화뿐 아니라 세 모녀와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 사장 사이에 대화도 포함됐다.

애초 김 여사 측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경영권 분쟁을 원하지 않으며 상속 절차상의 문제를 바로잡고자 한다고 했다.

하지만 녹취록에는 기망을 당했다는 세 모녀의 입장과 달리 "아빠(구본무 전 회장)의 유지와 상관없이 분할 합의는 리셋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구연경 대표의 말처럼 가족 간 합의를 번복하려는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세 모녀가 제기한 상속 재판의 목적이 경영권에 있다는 점도 엿보였다. 

김 여사는 "연경이가 아빠(구본무 전 회장) 닮아서 전문적으로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경영권 참여를 위해 지분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상속 재산을 둔 가족 간의 다툼이야 흔한 일이지만 이런 대목은 도덕적 경영 체제와 인화를 중시하는 LG그룹 오너가의 가풍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 보인다. 

지분을 가진 오너라고 무조건 경영에 나서는 게 아니다. 철저한 경영수업을 차근차근 밟은 뒤 경영권을 승계한다. LG그룹 오너가는 그런 절차를 철저히 지켰다.

구본무 전 회장이나 구광모 회장은 물론이고 앞서 구 회장의 할아버지인 고 구자경 명예회장 모두 같은 과정을 거쳤다.

이와 달리 구연경 대표는 제대로 된 경영 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데도 가족 간의 송사를 통해 LG그룹의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구 대표는 사회복지와 관련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여러 공익단체에서 일했을 뿐이다. 공익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재계 서열 4위의 대기업집단의 경영에 참여할 만한 경력은 되지 못한다.

더구나 김 여사 세 모녀의 법률 대리인 측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자 승계 원칙'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구 명예회장이 말년에 치매 병력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들춰냈다.

구 명예회장의 치매 병력은 LG그룹 오너가의 암묵적 비밀이었으나 재산 분쟁에서 이기기 위해 보이고 싶지 않았을 모습까지 동원한 셈이다.

일각에선 LG그룹 오너가의 장자 승계 원칙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장자 승계 원칙은 일족이 많은 오너 일가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분쟁을 막기 위한 장치라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구 회장 역시 특별관계자 포함 오너가의 LG 지분 41.7% 가운데 15.95%를 바탕으로 대표성을 띠고 선량한 관리자의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LG그룹 안팎의 말을 들어보면 오너가 여성도 본인이 원한다면 경영수업을 거친 뒤 얼마든지 경영에 뛰어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 모녀는 정정당당하게 능력을 보여 오너가 내에서 지지를 얻는 방법 대신에 상속재산을 놓고 법정 싸움에 나섰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구본무 전 회장의 유지를 거스르고, 가족 및 회사 관계자와 대화를 몰래 녹음하며, 시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인 구자경 명예회장의 명예를 깎아내면서까지 말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런 면모는 LG그룹 오너가가 그동안 보였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세 모녀의 모습으로 볼 때 설사 이번 재판에서 지더라도 자신들의 지분 7.84%를 활용해 앞으로 LG그룹 지배구조를 뒤흔들려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어 보인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LG그룹 오너가의 명예는 떨어지고 선대에 쌓았던 무형의 자산은 속절없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재계와 우리 사회에도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LG그룹은 지금껏 오너가 내부의 전통과 선의에 기반한 바람직한 오너경영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이번 상속 재판을 계기로 시스템을 정비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지배구조 2.0'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박창욱 산업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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