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재생에너지 3배'를 제11차 전력기본수급계획에 반영하는 데 소극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120여 개국의 범국가적 약속인 재생에너지 3배 서약에 참여했지만 제11차 전력기본수급계획(전기본)에 서약 내용을 반영하는 데에는 소극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 국제 서약에는 '포괄적 국내 조치가 필요하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어 한국 정부를 향한 국내외 단체들의 재생에너지 확대 압박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5일 정부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재생에너지 3배’ 서약이 11차 전기본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국이 동참한 것은 맞지만 재생에너지 3배 서약은 전 세계 용량을 늘린다는 내용”이라며 “각 국가가 이 서약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11차 전기본과 관련성은 적다”고 말했다.
1일(현지시각)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서 한국을 포함한 118개국은 전 세계 재생에너지 용량을 지금보다 2030년까지 3배로 늘리는 이니셔티브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 서약은
전 세계 재생에너지 용량을 2030년 11TW(테라와트)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개별 국가에 구체적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재생에너지 3배 서약이 제11차 전기본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지 주목하고 있다. 이 서약
체결이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마련하기로 한 시점(올해 말)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향후 15년간의 전력정책의 기본적 방향과 내용이 담기는 전기본은 에너지 분야 최상위 법정계획으로
, 에너지기본계획의 하위 계획 가운데 핵심이다. 전기본을 통해 전력·에너지업계 전반의 방향성이 결정된다.
▲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대표단. <연합뉴스> |
10차 전기본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재생에너지 용량은 29.2GW(기가와트), 올해 전망은 32.8GW다. 재생에너지 3배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90GW 이상이 필요한 셈인데 10차 전기본의 2030년 재생에너지 용량 목표는 72.7GW에 그친다.
정부가 국제사회의 재생에너지 3배 서약과 11차 전기본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인 만큼 11차 전기본에 재생에너지 확대와 관련한 뚜렷한 수치가 나올 가능성은 작은 셈이다.
그간 전기본 관련 정부의 발표를 보면 재생에너지를 넘어 무탄소에너지를 강조해왔다.
산업부는 7월10일 제29차 에너지위원회에서 위원들이 “전력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신규원전을 포함한 새로운 전원믹스 구성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7월27일에는 11차 전기본 총괄위원회 산하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실무반(워킹그룹) 가운데 기존 ‘신재생’ 실무반을 ‘무탄소 전원’ 실무반으로 개편하기도 했다.
재생에너지가 대폭 확대되기 어려운 현실적 여건이 여전하다는 주장도 있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무탄소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국내 태양광 효율은 15%, 풍력은 25% 정도인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설비만으로 탈탄소화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생에너지 지리적 한계, 변동성, 간헐성에 따른 계통연결, 부하추종 문제, 그리고 천문학적 에너지저장장치(ESS) 투자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남 등 일부 지역에 집중된 재생에너지를 연결할 계통망 부족(계통연결),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따라 다른 발전설비의 출력조절(부하추종), 간헐성에 따른 추가 비용 등이 한계라는 것이다.
국제 비영리기구 클라이밋그룹은 4일 ‘에너지 전환의 자금 조달 : 정부가 기업 투자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 보고서를 내놓고 태양광 시설 이격거리 조례나 복잡한 해상풍력 인허가 절차 등 규제 문제, 전력구매계약(PPA)에 비우호적 시장 등이 한국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서약에 동참한 만큼 전기본에 이를 구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재생에너지 3배 서약이 세계 최대 기후회의에서 나온 범국가적 약속이면서 ‘이 서약 달성에 기여하기 위해 포괄적 국내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도 담겼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코 라 카메라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사무총장은 서약이 체결된 뒤 “이 서약은 다양한 국가적 상황을 고려해 구체적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며 “IRENA는 2030년까지 매년 진전이 이뤄지도록 국가들의 에너지 전환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해야하는 역할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한국은 COP28에서 출범한 기후클럽의 36개 창립 회원국에 이름을 올리며 기후행동을 가속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기후클럽은 2015년 파리협정의 효과적 이행과 글로벌 탄소중립을 가속화하기 위한 협의체다.
2015년 체결된 파리협정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해 각국이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2도 아래에서 억제하고 최소한 1.5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합의가 담겨 있다.
▲ 두산에너빌리티의 8MW(메가와트)급 해상풍력발전기. <두산에너빌리티> |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먼저 정부의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가 국제적 약속과 함께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는 정책적 신호가 있어야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기후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의 이진선 전력시장계통팀장은 “한국과 같은 선진국은 온실가스 감축에 더 큰 책임이 있는 만큼 재생에너지 비중을 훨씬 더 빠르게 늘려야만 한다”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여러 숙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11차 전기본에 재생에너지 3배 서약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니케이아시아는 기후싱크탱크 엠버의 보고서를 근거로 “재생에너지 3배 서약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아시아가 재생에너지라는 친환경 전력 목표를 강화하라는 새로운 압력을 받게 될 것이란 해석이다.
엠버는 최근 ‘전 세계 재생에너지 3배 증가를 향한 국가적 야망 추적’ 보고서에서 한국을 놓고 “기존 잠재력이나 새로운 정책을 반영해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은
"산업화된 1인당 배출량이 많은 편"이라고 언급하며 “가장 빠르게 움직일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재생에너지 3배 서약으로 세계는 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니퍼 레이크 세계자원연구소(WRI) 글로벌 에너지 이사는 “이 서약은 재생에너지가 변방에서 중심 무대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며 “재생에너지 3배는 지구의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계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메라 사무총장도 “이번 협약은 긴급한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데 재생에너지가 수행하는 핵심 역할을 명백하게 확인시켰다”고 강조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