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원자재가격이 여전히 높은 데다 주택부동산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건설사들이 도시정비 사업 입찰에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는 분위기다.
▲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278-2번지 일대 노량진1 재정비촉진구역 모습. <연합뉴스>
2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이날 시공사 입찰을 마감하는 서울 노량진1구역 재개발사업과 여의도 공작아파트 재건축사업이 둘 다 유찰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정비시장에서 건설사와 조합 사이 공사비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대형 건설사들도 사업장을 신중하게 선택하면서 리스크 관리에 무게를 싣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노량진1구역은 시공사 입찰 마감을 앞둔 지난주 금요일 오후 4시까지 단 한 곳의 건설사도 입찰보증금을 내지 않으면서 사실상 이번 입찰은 유찰됐다.
노량진1구역은 올해 서울 도시정비시장 ‘대어’로 꼽히는 사업장으로 애초 GS건설과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맞대결 성사가 유력했다. 최근에는 포스코이앤씨도 노량진1구역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9월 진행한 노량진1구역 현장설명회에는 GS건설과 삼성물산 건설부문을 포함해 포스코이앤씨,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호반건설, 금호건설 등 7곳이 참석했다.
특히 GS건설은 꼬박 1년을 노량진1구역에 공을 들여왔고 최근까지 강력한 수주 의지를 보였는데도 결국 입찰에 불참했다.
GS건설은 올해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등으로 장기간 영업정지 처분을 앞두고 있어 대형 사업장인 노량진1구역 수주에 더욱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낮은 공사비와 조합과 갈등상황 등 리스크 측면을 고려해 불참을 결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노량진1구역은 조합이 책정한 3.3㎡당 공사비 730만 원은 현재 자재비와 인건비, 고금리 상황을 고려할 때 수익성을 내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시선이 존재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노량진1구역보다) 훨씬 더 많은 사업비를 제시해도 건설사들이 수주전에 참여하지 않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며 “노량진1구역은 입지적 조건 등 사업성을 고려해도 공사비가 낮게 책정돼 있다는 게 중론”이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 중구 신당9구역은 10월 말 3.3㎡당 공사비를 기존 742만 원에서 840만 원으로 올려 시공사 선정에 나섰는데 입찰한 건설사가 없었다.
GS건설은 노량진1구역 조합 집행부와 갈등도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GS건설은 노량진1구역에서 사전홍보행위 등으로 조합으로부터 두 차례 경고를 받았다. 노량진1구역 조합은 13일에도 조합원들에게 GS건설이 다른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GS건설은 조합원 카카오톡 단체방 개설·운영, 입찰 방해 등이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미 경고를 2회 받은 상황이라 경고를 한 번 더 받으면 입찰자격 박탈과 입찰보증금 몰수 조치 가능성이 있다.
GS건설 관계자는 “노량진1구역 조합으로부터 부당하게 2회 경고를 받았고 소명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보증금 500억 원을 납부하고 입찰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며 “앞으로 경고가 취소되고 공정한 입찰환경이 보장되면 당연히 입찰을 재검토할 것이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노량진1구역 입찰을 두고 낮게 책정된 공사비 문제로 끝까지 고심을 하다가 불참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관계자는 “조합이 제시한 여러 조건들을 검토한 결과 내부적으로 이번에는 참여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노량진1구역은 노량진동 278-2번지 일대 지하철 1·9호선 노량진역 바로 앞에 위치한 곳으로 재개발을 통해 3천 세대 규모 주거단지로 조성된다. 노량진뉴타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사업비가 1조 원이 넘는다.
노량진1구역 조합은 이번 입찰이 유찰되면서 바로 재입찰 공고 준비에 들어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21-2번지 일대 공작아파트 위치도. <서울시>
서울 핵심지 가운데 한 곳인 여의도 재건축시장 수주전도 경쟁을 피하는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다.
여의도 공작아파트는 이날 마감하는 시공사 선정을 위한 2차 입찰에 대우건설이 단독입찰한 것으로 파악된다.
공작아파트는 앞서 9월 진행한 시공사 입찰도 대우건설이 혼자 참여해 유찰됐다.
이번 2차 입찰도 유찰되면서 조합은 대우건설과 수의계약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공작아파트는 서울 핵심지 노른자위 입지에 한양아파트 시공사 선정이 연기되면서 여의도 일대 초고층 재건축 단지들 가운데 가장 먼저 시공사 선정에 들어가게 된다. 그럼에도 수주전은 대우건설의 무혈입성으로 마무리됐다.
여의도 공작아파트는 1차 현장설명회에 삼성물산 건설부문, 현대건설, 포스코이앤씨, 대우건설, DL이앤씨,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 HDC현대산업개발, 호반건설, 금호건설, 효성중공업, 화성산업 등 무려 건설사 12곳이 참석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 뒤 포스코이앤씨와 대우건설이 유력 후보로 꼽히며 수주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포스코이앤씨가 여의도 한양아파트 수주전에 집중하면서 경쟁이 무산됐고 2차 현장설명회에는 대우건설과 동부건설 두 곳만 참석했다.
여의도 공작아파트는 영등포구 여의도동 21-2번지에 위치한 12층 높이 아파트 4개 동, 373세대 단지다. 재건축을 통해 지하 5층~지상 49층 규모 아파트 3개 동, 570세대로 지어진다.
단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사이 한강변을 바라보는 단지인 데다 5호선 여의나루역과 LG그룹 트윈타워, 현대백화점 더현대서울이 모두 도보로 5분 안 거리에 있다.
이밖에도 올해 연말 도시정비시장은 대형 건설사들의 수주경쟁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준강남’ 입지의 과천주공10단지 재건축사업은 14일 시공사 선정 입찰에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단독으로 참여해 유찰됐다.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던 롯데건설이 빠지면서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수의계약으로 수주전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 시민공원주변 촉진2-1구역 재개발사업도 건설사들의 ‘간보기’만 계속되고 있다. 촉진2-1구역은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포스코이앤씨의 대결이 점쳐졌던 사업장인데 8일 2차 시공사 입찰에도 참여한 건설사가 없어 유찰됐다. 16일 진행한 세 번째 현장설명회에는 삼성물산 건설부문, 포스코이앤씨, 대우건설, DL이앤씨, 두산건설 등 5곳이 참석했다.
한화리서치센터 자료에 따르면 2023년 9월 누계 기준 주거용 건축수주 가운데 민간 신규주택 수주는 2022년 같은 기간보다 53.1%, 도시정비 수주는 11% 감소했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재개발, 재건축시장 수주는 2020~2022년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다 올해 들어 시공사 선정 수주가 큰 폭으로 위축되고 있다”며 “도시정비 수주잔고가 많은 회사일수록 분양 물량 확보에 유리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분양수요와 가파른 공사비 증가, 이에 따른 분양가 협상 난항 등으로 도시정비도 분양이 원활하지는 못한 상태”라고 바라봤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