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2023-08-22 14:26:01
확대축소
공유하기
▲ 8월22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기업존속을 위한 상속세제 개편 세미나’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상속세재를 개편하지 않으면)삼성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이것을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황승연 경희대학교 교수의 도발적 발언에 국회 제3세미나실에는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경쟁력 있는 기업이 오래도록 존속하기 위해서는 상속세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다만 과세 혜택은 기업가에 한정하고 도덕성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는 의견도 함께 나왔다.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기업존속을 위한 상속세제 개편 세미나’에서 대한민국에 장수기업이 없다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모두발언에서 “일본은 100년을 넘는 장수기업이 3만 개가 넘고 미국엔 1만3천 개 가 있다”며 “우리나라에 장수기업이 없는 것은 과도한 상속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기업이 대를 이어서 지속적으로 가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상속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며 “이번 세미나를 통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100년을 넘겨 존속하고 발전해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허리 역할을 잘 담당할 수 있도록 발전적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를 주관한 굿소사이티의 우창록 이사장은 대기업 만의 문제로 치부되는 상속세 관련된 세미나를 준비한 최재형 의원을 향해 “인기 없는 일을 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너무 어려운 일임에도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주셨다”는 감사의 말로 축사를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 정서가 있는데 이것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배가 좀 아프더라도 참아야 국부를 창출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고 상속세와 관련한 국민의 생각을 전환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우 이사장은 상속세 개편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좀 더 과감하게 용기를 갖고 목소리를 낼 것 또한 주문했다.
그는 “상속세 개편을 제안하면 ‘부자 감세’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공격을 받고 이러면 상속세 개편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전부 물러선다”며 “국부를 늘리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러한 방해를 극복하고 상속세 개편을 강하게 주장해나가야 한다”고 독려했다.
축사 뒤에는 상속세 개편 방안 등을 놓고 두 차례 토론이 진행됐다.
첫 번째로 장재형 법무법인 율촌 세무사의 ‘기업 상속 과세, 정당한가?’ 발제를 주제로 황승연 경희대학교 명예교수와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의 토론이 진행됐다.
▲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8월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업존속을 위한 상속세제 개편 세미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장 세무사는 발제를 통해 현금화가 용이하지 않은 자산 가운데 주식이 상속세 문제의 핵심이라고 바라봤다.
그는 “주식은 시장소득설에 의하면 비실현 소득이기 때문에 상속세를 내기 위해선 대량 매매가 불가피하다”며 “이 과정에서 주식 시장에 영향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주식 가치, 기업 가치, 기업의 영속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장 세무사는 상속세 폐지가 아니라 기업가에 한정해 기업 운영을 조건으로 과세를 연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기업가와 상속인을 동일 범주 안에서 취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최대주주가 기업 가치를 낮추려 드는 사태가 상속세 개편으로 멈춘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의”라고 주장했다.
황승연 명예교수는 대기업에게만 적용되는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가 위헌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황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경영권에는 프리미엄이 있다는 이유로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가 합헌이라고 주장했다”면서 “그러나 헌재가 왜 상속세를 내는 순간 경영권을 잃게 되는 모순을 내버려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황 교수가 최 의원을 향해 왜 이 모순을 내버려둔다고 생각하는지를 묻기도 했다.
최 의원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순간 당황했으나 “잘못됐기에 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고 대답했다. 최 의원은 20대 대선 주자로 나선 2021년 9월 상속세 전면 폐지 공약을 내놓은 적 있다.
아울러 황 교수는 한국의 주식시장이 저평가 받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 상속세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대주주들은 상속세에 허덕이다 기업가치, 주가를 고의로 낮추기 위한 방도를 찾고 있다”며 “상속세로 세수를 늘리려고 하기보다 상속세를 폐지해 최대주주의 기업가 정신과 근로의욕을 제고하는 것이 옳다”고 바라봤다.
임동원 연구위원은 기업 실체에 변동이 없음에도 누군가의 사망만으로 과세를 하는 기업 상속세는 정당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드디어 GDP 대비 상속세 비율이 우리나라가 1위가 됐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이 기업 승계를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속세 부과 때문에 기업이 이득 창출을 일부러 막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상속세의 존재가 조세 수입 기여를 의미하지 않게 됐다”라고 주장했다.
▲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가 8월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업존속을 위한 상속세제 개편 세미나’에서 두 번째 토론 발제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어진 두 번째 토론에서는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가 기업 주식 상속에 특례법을 도입하자는 취지로 발제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의 뿌리 깊은 대기업 차별 정책이 세계시장에서 우리 기업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지름길로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대부분 기업이 가업상속공제제도 및 상속세·증여세 납부유예 등을 통해 증여 문제를 해결했다”며 “결국 0.001%도 되지 않는 중견·대기업을 위해 상속세를 개편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져 상속세 개정 동력을 많이 상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526개 대기업은 기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상속·증여 과정에서 국민연금 등 대주주 진입을 통해 소유분산기업이 될 것이란 인식과 의심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례법을 마련해 기업 승계 주식에 한정해서라도 실현된 소득에 한정해 세금을 거두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전망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최영전 기획재정부 재산세제과장은 가업 계승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며 기재부에서 마련한 가업승계 한도, 연부연납 한도를 늘리는 정부 방안이 국회에서 잘 통과됐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그는 “70년이 넘게 이어져 온 상속세이기 때문에 근본적 틀을 바꾸는 것을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사장은 대한민국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속세 개편이 필요하다는 색다른 주장을 펼쳐 관심을 끌었다.
그는 미국의 가계 자산 소득의 비율은 14%인데 불구하고 한국은 0.8%에 지나지 않는다며 대한민국의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한 이유로 적은 자산 소득을 들었다.
황 사장은 “대한민국 가계가 자산소득 가운데 배당소득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익이 배치되기 때문”이라며 “대주주가 주가가 오르는 것을 겁내고 배당을 겁내는 것은 결국 상속세 부담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해관계의 불일치를 해소시키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제도적으로 고칠 수 있는 부분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황 사장은 경영주의 도덕성 문제 해결이 상속세 개편 논의의 전제조건이 돼야한다고 바라봤다.
그는 “상속세를 피하기 위한 탈세, 탈법 시도로 인해 최대주주를 향한 일반 투자자의 신뢰도가 너무나도 낮다”며 “경영주의 도덕성 문제 해결 없이 상속세 문제를 따지게 되면 ‘가진 자의 이득만 반영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