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인 배출권을 사고팔는 배출권 거래시장이 국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대응기금 확보에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한 공장에서 온실가스를 포함한 연기를 배출하고 있는 모습. < Getty Images > |
[비즈니스포스트] 국가의 ‘2050 탄소중립' 목표 실현을 위한 핵심적 재정 지원 프로그램인 기후대응기금이 계획만큼 확보되지 않으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후대응기금이 부족한 주요 요인으로는 탄소배출권 판매 수입 미달이 꼽힌다.
배출권 가격은 1년 사이 4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이에 정책 설정, 과도한 배출권 무상할당 규모 감축 등을 통해 배출권 가격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한국거래소 배출권시장 정보플랫폼에 따르면 이날 배출권(22년할당배출권·KAU22) 가격은 전날보다 2.37%(180원) 내린 1톤당 7420원을 기록했다.
이는 이달 1일의 1톤당 8550원보다 13%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1년 전인 2022년 8월18일 2만7400원과 비교하면 72% 하락한 것이다. 1년 만에 4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지난달 24일에는 1톤당 7020원까지 내려갔다.
유럽의 배출권 가격과 비교하면 국내 배출권 가격이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 체감할 수 있다.
유럽 배출권 가격은 15일 기준 1톤당 87.13유로(약 12만6805원)이다. 유럽 배출권 가격은 2020년 1월2일 1톤당 24.39유로(약 3만5499원)에서 장기적으로 상승 추세를 그리고 있다. 올해 3월21일에는 장중 사상 처음으로 1톤당 100유로(약 14만5523원)를 돌파하기도 했다.
국내 배출권 가격이 지속해서 하락하는 등 배출권 거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원인으로는 배출권 이월제한 조치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월제한 조치는 초과 배출권의 매도를 유도하고 시장 물량을 안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7년 도입됐다. 기업이 보유한 배출권을 다음 연도도 이월해 활용하는 것이 제한되면서 배출권 수요를 줄이는 효과로 나타난 것이다.
배출권 컨설팅 기업인 에코아이의 박현신 팀장은 “코로나19 확산 때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국내 배출권거래제에만 적용되는 이월제한 조치로 배출권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출권은 기업이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말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배출권을 사고파는 배출권거래제는 기업들이 배출권 가격과 직접 감축 비용을 비교하고 이에 따라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선택지를 취하면 사회전체적으로 감축비용이 최소화하는 효과를 목표로 한다.
지금처럼 배출권 가격이 지나치게 낮은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직접 감축에 힘을 쏟을 유인이 적어지는 셈이다.
최근 더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낮은 배출권 가격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재원, 즉 기후대응기금의 규모를 줄인다는 점이다.
기후대응기금은 탄소중립 사회 이행과 녹색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설치한 기금이다. 산업전환과 기업 온실가스 감축활동 등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기후대응기금의 주요 재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배출권 판매 수입이다. 기후대응기금은 배출권 판매 수입과 교통·에너지·환경세 전입금 등으로 재원을 확보한다. 그런데 배출권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배출권 판매 수입이 저조해져 기후대응기금 마련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 사진은 국내 탄소배출권(22년할당배출권·KAU22)의 최근 1년간 추이. 배출권 가격은 1년 전인 2022년 8월18일 1톤당 2만7400원에서 2023년 8월18일 1톤당 7420원까지 급락했다. <비즈니스포스트> |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7월20일까지 배출권 매각 수입은 441억 원에 그치고 있다.
올해 기후대응기금 수입계획에서 배출권 매각 수입을 통한 재원확보 목표는 원래 4009억 원가량이다. 올해 절반이 이미 지났지만 배출권 매각을 통해서는 전체 계획의 11%밖에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에도 올해처럼 배출권 매각 수입 부족 탓에 기후대응기금이 원하는 만큼 마련되지 못했다.
지난해 기후대응기금은 당초 2조4594억 원 조성될 계획이었지만 최종 2조465억 원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4129억 원이 모자랐다.
이는 배출권 판매 수입 미달금액과 거의 일치한다. 지난해 배출권 판매 수입은 모두 3188억 원으로 당초 목표였던 7306억 원과 비교하면 4118억 원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배출권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무상할당 비중 축소, 정부의 정책적 의지 등이 필요하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의 박지혜 변호사는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도 수요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배출권이 과다할당됐다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배출권거래제 규제강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면 미리 배출권 확보에 나서는 기업들이 생기면서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플랜1.5가 올해 초 내놓은 보고서 ‘고장난 배출권거래제, 쟁점과 대안’에 따르면 포스코의 경우 2015~2020년 동안 2018년을 제외하고는 배출권이 부족한 해가 없었다. 과도한 배출권 할당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정부도 7월4일 내놓은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말까지 배출권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시장 참여자 확대, 배출권 연계 투자상품 다양화, 이월제한 조치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 ‘배출권 시장활성화 방안’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고려한 배출허용 총량 설정, 유상할당 비중 확대 등을 포함한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기후대응기금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유상할당 수익에 관한 의존을 줄이고 정부 출연금 등 여타 항목의 비중을 높여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 변호사는 “기후대응기금 확보 측면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탈탄소화 촉진을 위해서라도 배출권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는 만큼 정부가 앞으로 배출권거래제 운영을 점진적으로 강화해나가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줘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