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올레드 온 실리콘, 올레도스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를 강화유리가 아닌 반도체용 실리콘기판 위에 올린 디스플레이를 말한다.
가로 세로 1인치(2.5cm) 남짓한 크기의 디스플레이에 4천 PPI(가로세로 4천 픽셀), 1600만 개 이상의 픽셀을 넣기 위해 디스플레이업계가 한계까지 도전한 결과다.
디스플레이업계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기존 디스플레이 기술이 가상현실 이용자에게 현실감을 주기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신경이 처리할 수 있는 그래픽 처리량은 시야각 1도당 60픽셀 정도인데 사람의 한쪽 눈의 시야각이 120도를 볼 수 있으니까 가로 세로 7200픽셀 정도를 구현하면 현실과 동등한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업계는 현존하는 가상현실기기의 내부 시야각인 110도에 맞춰 6600PPI 수준의 디스플레이의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디스플레이 기술로는 이 정도의 집적도를 달성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소자를 실리콘기판에 올리는 방법이 고안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올레도스다.
실리콘기판에 높은 집적도로 회로를 그리려면 전문 파운드리 기업들의 도움이 필요해 애플 협력사인 소니는 TSMC과 파트너가 돼 연구를 진행했다.
물론 세계 유수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기업들의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기기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애플, 메타, 소니와 같은 IT기업뿐만 아니라 방산업계도 군사용 영상취득장치 목적으로 올레도스에 주목하고 있다.
이전부터 미국 육군은 보병의 전투력과 생존능력 극대화를 위해 가상현실 장치를 활용해보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2021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미 육군과 약 219억 달러(약 28조 원)에 이르는 증강현실기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가 2022년 미 육군에 시범 공급한 개당 450만 원 상당의 증강현실 장비가 처참한 평가를 받으면서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러던 차에 애플은 2023년 6월 애플이 500만 원대 고성능 가상현실 기기를 내놨으며 비슷한 시기 그동안 미군에 증강현실기기를 납품해온 기업인 미라를 인수하면서 군사용 납품을 위한 포석을 쌓았다는 시선도 나온다.
이렇게 심상치 않은 가상현실기기 시장에 왜 한국 디스플레이기업의 이름은 잘 들리지 않는걸까?
실제로 불과 2022년까지만 해도 올레드 분야의 1인자인 LG디스플레이나 삼성디스플레이가 시장을 휩쓸 거라는 기대가 많았다. 특히 애플의 가상현실 기기에 LG디스플레이의 올레도스가 들어갈거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LG디스플레이가 양산을 차일피일 미뤘고 삼성디스플레이는 다음 세대 기술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공이 소니에게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LG디스플레이가 TV시장 불황으로 재정적 어려움에 빠지면서 본업인 대형패널의 차세대 양산에 집중하기 위해 올레도스 투자를 미룬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기존 올레도스에서 소니와 경쟁하기보다 차세대 기술인 RGB올레도스 양산을 노린다는 방침을 세웠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준비하는 차세대 올레도스 기술을 살펴보면 기존 올레도스는 하얀 빛을 내는 올레드 소자 위에 빨강과 초록 파랑 필름을 씌운 방식이다.
이 차세대 올레도스는 애초에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을 내는 올레드소자를 촘촘히 배치해 컬러필터가 따로 필요 없는 간결한 구조다.
이렇게 하면 올레드나 올레도스 특유의 부족한 광량문제를 개선할 수 있으며 이 분야에서 소니는 물론 LG디스플레이와도 상당한 기술격차를 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안 그래도 작은 올레드소자를 실리콘기판 위에 촘촘히 정렬하는 과제의 해결에 최소 3년이 필요할 것으로 디스플레이업계는 바라본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에게 이런저런 사정들이 있었다고 해도 한때 ‘소니는 끝났다’는 말까지 들었던 소니가 어떻게 올레도스의 선두기업으로 떠오른 걸까?
소니는 과거 브라운관 TV를 고집하다가 2006년부터 한국과 중국 후발주자들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놀림거리가 된 적이 있다.
이에 소니는 2012년부터 전자산업 굴기를 차근차근 준비해왔으며 천문학적인 투자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 이미지센서와 같은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했으며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2017년 프리미엄TV시장 잠시지만 1위를 탈환하는 등 디스플레이 경쟁력을 많이 복구했다.
결국 전자산업 굴기가 시작된 지 11년 만인 2023년 애플의 최첨단 가상현실기기에 소니의 올레도스가 채택되면서 과거의 오명을 지우고 올레도스의 선두 기업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소니의 독주는 최소 2026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더 발전한 차세대 올레도스를 양산한다는 삼성디스플레이의 노림수가 성공할 수 있을까? LG디스플레이는 언제 이 경쟁에 참전할지, 최첨단 디스플레이 경쟁에서 또 어떤 기업이 치고나갈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