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브랜드 아파트 외벽 콘크리트가 일부 떨어지고 철근 다발이 튀어나온 하자 관련 글에 달린 댓글이다.
▲ 대형 건설사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붕괴사고가 잇따르면서 부실시공에 관한 우려가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사진은 한 건설현장 모습. <연합뉴스>
대형 건설사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붕괴사고가 잇따르면서 부실시공에 관한 우려가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최근 누수, 침수를 비롯한 신축아파트 하자 문제들도 불거지면서 불신을 더 키우는 분위기다.
20일 대형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등에서는 신축아파트 부실시공이 ‘자이’만이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시선이 팽배하다. GS건설, HDC현대산업개발과 같이 유명한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에서도 부실시공이 나타는데 다른 곳들은 더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신축아파트보다 1980년대, 90년대 지어진 구축이 튼튼하다'거나 '건설 자재값이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한 2020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들은 철근 빼먹은 곳이 많다더라' 같은 글들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이런 온라인상의 글들은 최근 일련의 사고들로 더 이상 근거 없는 ‘괴담’이 아니게 됐다.
정부 등 지자체도 건설현장 부실시공 문제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9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3구역 재개발 공사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광주 화정아이파크, 인천 검단아파트 붕괴사고 등을 언급하면서 “후진국형 부실공사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는 초심으로 돌아가 부실공사와 전쟁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순살자이’나 ‘통뼈캐슬’과 같이 시민들의 불안을 반영한 말들이 시중에 회자되는 걸 계기로 모든 시공과정을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시스템을 당장 지금 진행되는 공사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주문했다.
서울시는 앞서 2019년에도 서울 서초구 잠원동 철거현장 붕괴사고 뒤 건축물관리 조례안을 통해 민간 건축물과 철거공사장 점검기관 공공지정제를 도입하면서 부실시공 근절에 나섰다.
점검기관 공공지정제는 기존 건물주가 직접 감리업체를 지정하던 방식에서 자치구가 검증해 구성한 점검·감리업체 가운데 무작위로 지정해 안전·품질 관리를 살피도록 한 것이다.
당시 서울시 관계자는 “와우아파트 붕괴 뒤 반세기,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지 25년이 지났고 다양한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 안전 사각지대가 남아있다”며 “시민 생명이 희생되는 건축물의 재난사고 발생은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는 지난해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올해 인천 검단아파트 주차장 붕괴사고 등 아파트 건설현장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언급되는 사건이다.
1970년 4월8일 마포구 창전동 6 일대 5층짜리 와우아파트 한 동 전체가 무너지면서 아파트 주민 33명과 아래 판자촌에 살던 주민 1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서울시가 1969년부터 3년 동안 시민아파트 2천개 동을 공급한다는 계획 아래 건설한 단지 가운데 하나였는데 1969년 12월26일 완공된 뒤 3개월 만에 붕괴됐다. 낮은 공사비 책정, 지나치게 짧은 공사기간 등 시공과정 전반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부실시공이 직접적 사고원인이었다. 아파트 받침기둥의 철근량이 부족해 하중을 버티지 못했다. 당시 무너진 동을 시공한 대룡건설이 무면허 토건업체에 하청을 주고 공사비를 떼먹은 비리도 드러났다.
그 뒤 무려 50년이 지나면서 건설업계 시스템과 기술력은 발전해왔다.
▲ 5월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안단테(AA-13-2블록)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국토교통부 사고조사관이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4월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여전히 후진국형 부실시공 사고가 계속되면서 업계를 향한 소비자의 신뢰는 다시 흔들리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ON) 자료에 따르면 최근 2년 국내 건설현장 508곳에서 부실시공이 적발돼 벌점이 내려졌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10위권 건설사를 포함해 건설사 480곳이 벌점을 받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2020년 6월에서 2023년 5월까지 민원분석시스템에 수집된 아파트 부실시공 관련 민원을 분석한 결과 41만8535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민원분석시스템은 국민신문고 및 지자체 민원창구 등에 접수된 민원을 수집, 분석하는 권익위 시스템이다.
아파트 하자문제도 지속되고 있다.
국토부 산하 하자심사 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공동주택 하자분쟁 조정신청 건수는 해마다 3천~4천 건에 이른다. 최근 3년 만 살펴봐도 미감불량부터 석재파손, 누수와 결로, 악취·곰팡이, 미시공, 설계도면과 다른 시공 등 하자가 2020년 4245건, 2021년 7686건, 2022년 3027건 접수됐다.
대형 건설사가 짓는 비싼 브랜드 아파트도 하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허종식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3년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 하자조정 신청건수는 7950건으로 집계됐다.
실제 올해 3월 GS건설이 시공한 서울 중구 서울역센트럴자이는 필로티 외벽 기둥 일부가 파손되는 하자가 있었고 최근 입주한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프레지던스, 동작구 흑석자이 등에 침수피해가 발생했다.
지난달 입주한 롯데건설의 노원롯데캐슬시그니처와 호화로운 커뮤니티시설로 화제를 모은 인천 검암역 로열파크시티 푸르지오 등에서도 누수피해 등이 나왔다. 준공 4년 차 강동구 고덕롯데캐슬베네루체 단지에서는 철근 일부가 드러나는 하자가 발생했다.
건설업계는 최근 부실시공 이슈와 관련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임병용 GS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은 인천 검단아파트 사고 국토부 조사결과 발표 뒤 정비사업 조합 등에 공문을 보내 “조합원들에 심려를 끼친 것에 사죄의 말씀을 드리며 튼튼한 아파트, 최고 품질의 아파트로 보답하겠다”며 “대형 시공사로 설계, 시공 모든 과정에 무조건 무한책임을 다해야 마땅하다는 고객들의 당연한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HDC현대산업개발도 광주 화정아이파크 사고 뒤 안전품질관리 체제 개선에 온힘을 쏟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19일 제안한 공사현장 동영상기록제도 도입 요청에도 가장 먼저 응답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20일 안전·품질사고 예방을 위해 모든 시공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기록관리하는 시스템을 서울시뿐 아니라 전국 현장에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GS건설, 현대건설, 대우건설, 코오롱글로벌 등도 이날 서울시 공사현장 동영상 기록관리제도에 동참해 부실공사에 관한 국민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