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 중간 지점에 위치한 파이브가이즈 매장 앞에는 공식 오픈을 앞두고 대기줄이 40m가량 늘어서 있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월요일 아침 8시.
이른 출근을 하는 직장인들로 거리가 활기를 띄기 시작한 시간이지만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와 신논현역 7번 출구 사이의 중간 지점 일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건물쪽으로 바짝 붙어 길게 늘어선 약 40m 길이의 대기줄.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60명가량의 인원은 무엇인가를 한창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을 오가는 행인들의 눈에도 이 대기줄은 신기해 보였다.
노년의 신사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줄입니까”라고 물었고 대기줄에 있는 한 사람에게 “햄버거를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듣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이날은 미국 햄버거 프랜차이즈 ‘파이브가이즈’가 국내에 첫 매장을 내는 날이다. 파이브가이즈는 인앤아웃, 쉐이크쉑과 더불어 미국 3대 유명 햄버거 가게로 알려져 있다.
아침 8시가 좀 넘어서 파이브가이즈 매장 앞에 도착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대기줄이 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건물을 감싸고 돌 정도로 길게 늘어선 오픈런 모습을 기대했지만 밤새 비가 온다는 소식이 많은 사람들을 망설이게 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5일 밤 11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 파이브가이즈 관계자가 현장에 대기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미리 읽을 메뉴판을 주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대기줄의 첫 번째 손님인 털보PD(38)는 “사람들이 궁금해할만한 식당을 가보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덕분에 오게 됐다”며 “수제버거를 좋아한다기보다 업 때문에 오게 됐는데 한 달 전쯤 프랑스에서 파이브가이즈를 상당히 맛있게 먹어본 적이 있어 기대는 어느 정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는 아내와 함께 오려고 했다. 그러나 매장 오픈 시간인 아침 11시까지 내리 12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무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결국 혼자서만 왔다고 했다.
털보PD의 뒤에는 피곤한 모습이 역력한 젊은 남자 대학생 A씨도 있었다.
영등포에 거주한다는 A씨는 사실 강남역에 25일 저녁 8시경에 도착했다. 하지만 파이브가이즈 앞에 도착해보니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돌아다니다가 두 번째로 줄을 서게 됐다고 했다. 털보PD가 먼저 자리를 잡은 것을 보고 뒤늦게 오픈런을 시작한 셈이다.
A씨는 “미리 살짝 자두고 샤워하고 나왔지만 비가 밤새 내리는 바람에 의미가 없어졌다”며 “수제버거를 종종 먹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파이브가이즈의 한국 진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의 맛을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에 그는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A씨는 “쉐이크쉑 버거를 먹어봤지만 미국에서 먹어본 것과 비교해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파이브가이즈는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강조해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줄에는 외국인도 있었다.
▲ 독일인 데보라 캐츠(22)씨는 밤을 새다시피 하다가 집을 나서 6시경에 강남역에 도착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파이브가이즈 대기 줄이 길어 놀랐다고 했다. 그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라고 파이브가이즈를 평가했다. <파이브가이즈 인스타그램> |
독일인 데보라 캐츠(22)씨는 새벽 5시까지 자지 않고 밤을 새다가 집을 나서 6시에 강남역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기자들이 많아 살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인스타그램으로 파이브가이즈의 한국 1호점 오픈 소식을 접했다”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4년가량 미국에서만 생활하면서 파이브가이즈를 종종 맛봤는데 한국에도 들어선다고 하니 들뜬 마음에 앉아서 기다릴 의자까지 준비해서 왔다”고 말했다.
휴가를 내고 온 직장인들도 있었다.
B(30)씨와 C(28)씨는 원래 다른 일정 때문에 휴가를 냈지만 계획이 취소돼 파이브가이즈 오픈런에 동참하게 된 연인이다. 이들은 “둘 다 오픈런은 처음이다”라며 “갑자기 생긴 일정이라 어제 저녁에 함께 다이소에서 5천 원짜리 의자를 사서 기다리게 됐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인 C씨는 “미국에 여행갔다가 3대 버거로 꼽히는 인앤아웃 버거를 너무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며 “당시 파이브가이즈는 못 가봤는데 이번 기회에 맛볼 수 있어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튜버 ‘육식맨’도 파이브가이즈 오픈런에 빠지지 않았다. 육식맨은 ‘고기만 먹는 콘셉트’의 방송만 하는 유튜버로 구독자 105만 명가량을 보유한 유명 인사다.
육식맨은 “8시50분쯤 왔는데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다는 후회를 하고 있다”며 “파이브가이즈에 오기 전에 가격 조사를 다 하고 왔는데 수제버거계의 프랜차이즈인 쉐이크쉑, 수퍼두퍼와 비교하기보다는 서울 유명 수제버거집인 패티앤베지스나 제스티살룬, 길버트버거앤프라이즈 등과 비교하면서 시식해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전날 저녁부터, 당일 새벽부터 한참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파이브가이즈의 햄버거 가격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 파이브가이즈가 파는 햄버거는 모두 8종이다. 가격은 9900원부터 시작해 가장 비싼 베이컨치즈버거가 1만7400원이다. 파이브가이즈 오픈런을 한 고객들은 다소 비쌀 수 있는 가격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비즈니스포스트> |
파이브가이즈가 파는 햄버거는 모두 8종이다.
패티가 2장씩 들어간 햄버거(1만3400원), 치즈버거(1만4900원), 베이컨버거(1만5900원), 베이컨치즈버거(1만7400원)가 기본인데 이들보다 패티를 1장씩 뺀 ‘리틀’ 버거는 3500원씩 덜 받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수제버거 치고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감자튀김과 음료를 시키게 되면 가격은 급격히 올라간다.
파이브가이즈 감자튀김은 사이즈에 따라 ‘리틀’ ‘레귤러’ ‘라지’ 3종으로 나뉘는데 각각 6900원, 8900원, 1만900원이다. 리필이 가능한 탄산음료(3900원)과 리틀 감자튀김, 베이컨치즈버거를 함께 먹으면 가격이 2만8200원까지 올라간다.
한 끼 햄버거라고 생각하고 지출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털보PD는 파이브가이즈에서 파는 햄버거 가격이 비싸지 않냐는 질문에 “저에게는 당연히 비싸지요”라고 대답했다. 다만 “매일 먹을 것도 아니고 일년에 2~3번 먹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며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
대학생 A씨도 “고든램지버거와 같은 고가 수제버거도 한국에 들어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이브가이즈의 햄버거 가격이 엄청 비싸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튜버 육식맨 역시 “요즘 대부분의 수제버거 가격은 이것저것 포함하면 3만 원대를 쉽게 넘어간다”며 “3만 원대에 선보이는 여러 수제버거집 가운데 파이브가이즈가 얼마나 맛으로 승부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 파이브가이즈 대기부터 음식 수령까지 걸린 시간은 모두 3시간 반이었다. 매장에 들어선다고 해도 주문까지 20분, 음식 수령까지 또 10분을 기다려야 했다. 사진은 파이브가이즈 매장 내부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100명가량 서 있던 파이브가이즈 대기줄은 8시50분경부터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파이브가이즈 매장 근처 올리브영 매장 앞까지 늘어선 대기줄은 9시가 넘으면서 ㄴ자로 꺾이기 시작했고 이어 골목을 둘러싸 ㄷ자 형태까지 확장했다.
파이브가이즈 관계자는 대기 시간이 5시간이 넘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날을 위해 시간을 비어둔 이들의 오픈런 동참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두 시간을 더 기다린 끝에 11시부터 입장이 시작됐다. 하지만 대기줄의 100번째 정도 서 있던 기자는 11시50분이 넘어서야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매장 안에서도 긴 줄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실제 주문을 마친 뒤 시간을 확인해보니 12시10분이었다.
주문한 메뉴를 모두 받기까지 또 10분을 기다려야 했다. 대기부터 음식 수령까지 모두 3시간 반을 기다린 셈이다.
몰려드는 주문 탓에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매우 분주했다. 이들은 얼굴을 들 시간조차 없이 햄버거를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빵을 굽는 직원, 패티를 굽는 직원, 양상추를 올리는 직원, 케찹과 머스타드를 뿌리는 직원 등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었는데 이들은 간혹 ‘빨리빨리’ ‘허리업 허리업’ 소리를 외치며 속도를 내자고 서로에게 외쳤다. 그러면서도 간혹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고객들에게 웃으며 포즈를 취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재료가 많다 보니 간혹 곤란한 일도 벌어졌다. 햄버거를 수직으로 쌓다보니 여러 부재료가 흘러 떨어졌는데 주방에서 이 재료들을 햄버거에 다시 욱여넣는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 밀려드는 주문에 파이브가이즈 조리 직원들은 눈코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이들은 때때로 '빨리빨리' '허리업 허리업'을 외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
오랜 기다림 끝에 맛본 파이브가이즈. 실제 맛은 어땠을까.
파이브가이즈가 여러 차례 강조한 대료 재료의 신선함은 합격점을 줄 만 했다. 기자는 파이브가이즈 관계자의 추천에 따라 베이컨치즈버거에 마요네즈와 케첩, 머스타드, 양상추, 피클, 토마토, 그릴드어니언, 그릴드머쉬룸, 렐리시, 할라피뇨 등 10가지 토핑을 추가해 주문했는데 모든 재료의 신선함이 돋보이는 맛이었다.
특히 파이브가이즈가 직접 매장에서 만든다는 패티는 육즙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삼삼오오 짝지어 비슷한 메뉴를 먹고 있는 고객들 모두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라는 의견을 나누며 햄버거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앞서 기자와 인터뷰했던 데보라 캣츠씨와 연인 B, C씨 모두 식사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기자와 만나 "충분히 만족할만 한 맛이다" "감동스러운 맛이라고까지는 표현하기 힘들지만 휴가를 낸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맛이다"라고 말했다.
가장 놀란 것은 ‘리틀’ 감자튀김이다.
일반 사이즈의 감자튀김 가격이 8900원이나 하는 탓에 ‘리틀’을 시켰지만 이마저도 대식가인 기자에게 매우 많은 양이었다. 맥도날드나 롯데리아와 같은 일반 햄버거 프랜차이즈와 비교해 적어도 5배 이상 양이 많았다. 블로그마다 왜 '리틀'만 시켜도 충분하다는 얘기가 나왔는지 이해됐다.
옆 테이블에 앉은 성인 남성 3명은 '라지' 감자튀김 1개를 시킨 모양이었는데 이들은 "이 정도 가격 받을 만하다"며 "아무래도 남겠으니 싸갈 봉지를 따로 달라고 해야겠다"고까지 했다.
▲ 기자가 주문한 파이브가이즈 베이컨치즈버거(1만7400원). 마요네즈와 케첩, 머스타드, 양상추, 피클, 토마토, 그릴드어니언, 그릴드머쉬룸에 렐리시와 할라피뇨를 추가했다. 토핑은 모두 무료다. 파이브가이즈의 설명대로 신선한 재료와 육즙 가득한 패티가 인상적인 맛이다. <비즈니스포스트> |
식사가 끝난 뒤 매장 뒷편으로 나왔을 때도 파이브가이즈를 맛보기 위한 대기줄은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마침 이 거리를 지나가던 행인 두 명은 "여기가 그 유명한 파이브가이즈래. 대기줄이 엄청 길던데 우리는 나중에 열기가 좀 가시고 나면 한 번 가보자"라고 말했다.
파이브가이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이 주도하는 신사업이다. 김 본부장은 파이브가이즈의 국내 유치를 위해 2년 동안 미국 본사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브가이즈의 국내 론칭을 앞두고 해외에서 직접 조리 실습을 하기도 했으며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파이브가이즈의 국내 경쟁상대는 없다"고 자신감도 보였다. 파이브가이즈의 운영사는 한화갤러리아의 100% 자회사인 에프지코리아가 맡는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