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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뛰는 K금융 인니①] 인도네시아 금융한류 기회의 땅? 답은 '오랑'에 있다

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 2023-05-15 16: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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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회사들이 동남아 공략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아세안시장 개척이 코로나19 여파로 주춤했다가 리오프닝과 맞물려 투자금융 글로벌 스탠다드 확보를 목표로 한 민관 협력이 개화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세일즈맨을 자처하며 지원 사격에 나서 이목을 끌고 있다. 아세안 금융허브인 싱가포르와 함께 수교 50주년을 맞는 인도네시아, ‘포스트 중국’ 베트남, 신흥시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캄보디아 시장 선점을 위한 행보로 읽힌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금융시장 성장 발판을 구축하고 있는 동남아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고,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3개국에서의 국내 금융업계 활약상을 생생하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인도네시아 글 싣는 순서
① 인도네시아 금융한류 기회의 땅? 답은 ‘오랑’에 있다
② KB부코핀은행장 이우열 “인디카와 협력, 종합금융 발판 될 것”
③ 신한은행 황대규 “리테일 신상품과 디지털로 포트폴리오 균형 맞춘다”
④ 우리소다라은행장 황규순 “한국계 1등 넘어 현지 톱10 목표” 
⑤ 우리소다라은행 현지 직원들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⑥ 하나은행 박종진, 구성원 단합과 디지털로 리테일 넓힌다
⑦ 미래에셋 임원 아리산디 “1등 비결은 현지화와 투자 민주화”
⑧ 신한투자증권, 인도네시아 IB는 우리가 선도자
⑨ 한국투자증권, 리테일과 IB 양날개로 안정 성장 궤도
⑩ IBK기업은행 차재영 "우리는 원팀, 단단한 은행으로 가고 있다"

 
[다시뛰는 K금융 인니①] 인도네시아 금융한류 기회의 땅? 답은 '오랑'에 있다
▲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이 열린 ‘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에 있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 동상. 수카르노 동상은 인도네시아 금융 중심지인 수디르만지역(Sudirman Central Business District) 고층 빌딩을 바라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자카르타=비즈니스포스트] ‘기회의 땅.’

5월9일부터 12일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현지에서 만난 국내 금융사 법인장을 비롯한 주재원들은 하나 같이 인도네시아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는 동전의 한 면만 보는 것과 같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의 성장 가능성을 누구보다 높게 사면서도 한편으론 K금융의 위상이 더디게 높아지는 현 상황을 냉정하게 짚었다.

◆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기회의 땅, 아세안의 맏형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10개국 가운데서도 땅이 가장 넓고 인구가 많아 아세안의 맏형으로 불린다.

인도네시아 면적은 한반도보다 9배 넓다. 그 안에 2억8천만 명이 살고 있다. 거대한 내수시장이 외국기업을 유혹하는 강력한 무기다. 거기에 농수산, 광물 등 자원도 풍부하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해 코로나19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인도네시아 경제는 5.3% 성장했다. 올해 역시 5%대의 경제 성장이 예상된다.

인도네시아는 막강한 성장 잠재력을 바탕으로 외국인투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외국인투자(FDI)규모는 456억 달러로 2021년보다 44% 증가했다.

인도네시아는 다른 아세안 국가들과 달리 선거를 통한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어 정치체제도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재영 IBK기업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강점은 정치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정치체제가 불안하면 아무리 내수가 좋고 경제가 빨리 커도 해외기업이 맘 놓고 투자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국내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 역시 확대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 롯데그룹 등 대기업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투자를 결정한 것을 비롯해 나날이 많은 중소기업들이 인도네시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는 국내기업의 성격이 과거 봉제, 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지상사(지사와 상사)를 바탕으로 한 제조업 중심의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넓어지는 셈인데 이에 따라 국내 금융사의 역할도 자연스레 커지고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주 연령층인 30세 미만의 젊은 인구를 바탕으로 고페이, 그랩페이 등 디지털금융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IT금융에 강점을 지닌 국내 금융사의 진출에 제격일 수 있다.

K팝과 K드라마 등으로 시작된 한류 열풍이 K푸드 등으로 이어지며 확대재생산 되는 점도 국내 금융사의 인도네시아 진출에 긍정적 요소로 평가된다.

1990년대 학창시절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김규민 신한투자증권 인도네시아법인 이사는 “최근 대형 카르푸매장에 전용 K푸드 코너가 크게 마련되는 등 인도네시아에서 K마케팅은 여전히 열풍”이라며 “한류를 향한 관심이 계속 높아지는 점은 국내기업이 현지 사업을 하는데 분명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다시뛰는 K금융 인니①] 인도네시아 금융한류 기회의 땅? 답은 '오랑'에 있다
▲ 인도네시아 금융 중심지 수디르만지역 '트레저리 타워(Treasury Tower)'에 입주한 금융사들. 국내 금융사인 우리소다라은행,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간판이 보인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중심지에서는 국내 금융사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K금융 경쟁력 확대 막는 불확실성 요소도 많은 인도네시아

하지만 인도네시아에 기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들 역시 기회 옆에 잔뜩 웅크리고 있다.

강한 규제가 대표적이다.

주재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지에서 ‘오자까’라 부르는 금융감독청(OJK)은 체감상 한국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을 합쳐 놓은 것과 같은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쥐고 국내외 금융사를 관리 감독한다.

오자까는 매년 말 인도네시아에서 영업을 하는 금융사의 다음해 사업계획을 심사하는데 사업계획에는 지점과 영업점 수, 신상품 출시 계획 등 개별 금융사의 민감한 사업 전략까지 꼼꼼히 담아야 한다.

해외 금융사에는 강력한 인력 규제도 적용된다. 우선 주재원 수에 제한을 둔다. 현지법인에는 현지 직원들에게 지식 이전을 위해 허가를 얻은 주재원만 상주할 수 있는데 주재원 수를 늘리기가 쉽지 않다.

국내 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익을 내고 있는 우리은행 인도네시아법인인 우리소다라은행은 전체 직원 1600여 명 가운데 한국인은 9명에 그친다. 인도네시아 1등 증권사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약 600명의 직원 가운데 주재원은 3명에 불과하다.

은행의 경우 임원급이 아닌 주재원은 3+1로 최장 4년까지밖에 일을 하지 못한다. 은행 지점장도 한국인이 맡을 수 없다.

한 국내은행 인도네시아법인장은 “한 번은 서울 본사를 헤드쿼터라고 불렀다고 너희 본사가 여긴데 무슨 소리냐며 오자까한테 한 소리 들은 적 있다”며 “오자까는 이곳에 있는 법인이 인도네시아 회사라는 점을 상당히 강조한다. 여기선 서울 본사를 보통 대주주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한국 주재원의 수와 역할, 근무기간이 제한적인 만큼 역량 있는 현지 직원을 모으고 기르는 일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주요 과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능력 있는 현지 직원들은 외국계 금융사에 다닌 경력을 바탕으로 몸값을 높여 금융사를 빠르게 옮겨 다니기 때문이다.

한 법인장은 “여기선 경력을 쌓아 이직을 하면 한 번에 30~40%씩 연봉이 뛰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 나와 외국계 은행에 들어오면 보통 한 달에 우리 돈으로 60만 원 정도 버는데 이들 상사 중엔 여러 번 이직을 통해 한 달에 1천만 원 넘게 버는 잘 나가는 관리자들도 많다. 젊은 친구들이 이들을 롤모델로 삼고 있어 인력 양성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종교에서 오는 문화 차이도 극복해야 할 주요 과제로 꼽혔다.

한 주재원은 “이슬람을 믿는 직원들은 하루에 5번씩 기도하는데 이를 피해 회의를 잡아야 하고 아무래도 금식기간에는 몸에 힘이 없어 업무 효율성도 떨어진다”며 “전반적으로 직원들이 싫은 소리를 못하고 너무 순하고 여유로워 답답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의 90%가량이 이슬람을 믿지만 이슬람 국가는 아니다. 국교 없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종교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로 평가된다.

일례로 주재원들 역시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선 이슬람, 기독교, 가톨릭, 불교, 유교, 힌두교 등 6개 종교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선택지에 무교는 없다.

재벌기업을 끼고 있는 산업자본과 경쟁하는 것도 국내 금융사에게 부담 요인일 수 있다.

인도네시아 금융시장은 기본적으로 금산분리가 이뤄지지 않아 주요 재벌기업들이 대부분 은행을 소유하고 있다.

이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따라 운영되는 샤리아은행은 물론 동남아 전통강자인 화교와 일본 자금, 말레이시아 등 아세안 자금이 소유한 금융사 역시 국내 금융사의 중장기적 경쟁상대로 버티고 있다.
 
[다시뛰는 K금융 인니①] 인도네시아 금융한류 기회의 땅? 답은 '오랑'에 있다
▲ 인도네시아 금융중심지인 수디르만지역에 있는 은행 ATM센터. 국내 은행의 ATM은 배치돼 있지 않다. <비즈니스포스트> 
상황이 여의치 않은 만큼 국내 금융사들은 아직 인도네시아에서 위상이 낮다. 은행의 경우 10위권 은행이 없다.

국내 금융사가 인수한 은행 가운데 가장 크다는 KB부코핀은행은 100여 개 은행 가운데 자산 규모 19위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 쉬지 않고 발로 뛰는 주재원들, 인도네시아에서 변화를 꿈꾼다

하지만 단점만 탓하는 것은 기회의 땅에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주재원들에게 시간 낭비일 수 있다.

국내 금융사 법인장을 비롯한 소수의 주재원들은 K금융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매일 같이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들의 전략은 구체적 실행 방식은 달랐지만 방향성은 같았다. 결국 ‘오랑(orang)’을 향했다. 인도네시아 말로 오랑은 사람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주재원이든 현지 직원이든 금융당국자든 결국 모든 일들이 오랑을 통해 이뤄지고 풀려나갔다.

국내 은행 한 법인장은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내기 위해 비행기를 급히 잡아 타고 2일장으로 치러지는 장례식까지 찾아가는 열정을 보여 승인을 앞당겼다.

다른 은행 법인장은 지방공항에서 차타고 7시간 넘게 들어가야 하는 오지에 있는 지점까지 방문하는 강행군을 통해 개인 여신자산을 확대했다.

또 다른 법인장은 현지 한인커뮤니티와 주재원 사이 가교 역할을 맡아 단순히 자신의 회사나 금융산업을 넘어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전반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한 법인장은 “인도네시아가 우리와 규제가 달라 강하게 보일뿐이지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규제가 약한 부분도 있다”며 “안 되는 부분을 볼 것이 아니라 되는 부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적으로 다른 문화 안에서 장점을 찾아내는 것 역시 한국 주재원 오랑들의 몫이었다.

한 국내 은행은 라마단 기간 해가 지면 현지 직원들이 식당으로 몰려가 식사를 한다는 점에 착안해 라마단을 오히려 다 같이 밥을 먹으며 화합을 다지는 기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 법인장은 “여기 이슬람 교인들은 하루에 5번씩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쉽사리 나쁜 짓을 할 수 있겠나”며 “싫은 소리 못하고 순하다는 것은 그만큼 팔로우십이 좋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인도네시아는 1년 내내 매일 같은 시간 해가 뜨고 해가 진다. 주재원들은 이게 참 낯설다고 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구별되지 않아서.

그들이 말하는 인도네시아는 누군가 무한히 감아놓은 시계태엽이 똑같은 속도로 매일 같이 풀리는 곳 같았다. 그곳에서 국내 금융사 주재원들은 어제와 조금이라도 다른 내일을 만들기 위해 그곳 오랑들과 함께 오늘도 부단히 움직이고 있다. 이한재 기자
 
[다시뛰는 K금융 인니①] 인도네시아 금융한류 기회의 땅? 답은 '오랑'에 있다
▲ 고층 빌딩에서 바라본 인도네시아 금융 중심지인 수디르만지역(Sudirman Central Business District) 전경. <비즈니스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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