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사진)은 기업들의 인식 전환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합쳐져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기업이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재생에너지 확대가 ‘돈을 벌 수 있는 일’로 인식돼야 한다. 그 인식 정도에 따라 기업의 행동이 달라질 것이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수석연구원은 “궁극적으로는 재생에너지도 비용을 써서 수익을 내는 의사결정의 문제”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다른 경영 부문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와 마찬가지로 재생에너지에서도 비용 대비 수익을 따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 참여 확산, 탄소중립 시대로의 전환이 본격화하면서 재생에너지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의 국제 캠페인이다. 다국적 비영리단체인 더클라이밋그룹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와 협력해 2014년 발족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3년 3월 기준 RE100에는 세계 403개 기업, 국내 29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을 통한 재생에너지 발전은 여러 온실가스 감축수단 가운데 핵심으로 꼽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애플 등 주요 글로벌기업도 협력업체까지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CDP에 따르면 지난해 CDP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고 응답한 국내 기업 64개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전체의 7%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RE100을 달성할 수 있을까. 비즈니스포스트는 7일 김 수석연구원을 만나 인터뷰했다.
김 수석연구원은 CDP한국위원회 사무국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서 CDP의 한국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다. RE100 등 글로벌 연합체(이니셔티브)를 국내 기업에 확산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매년 CDP 한국보고서, ESG 금융보고서, 석탄금융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 삼성전자도 지난해 9월 RE100에 가입하면서 RE100을 향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RE100 실현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는지.
“현실적으로는 지금 상태에서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한다는 목표는 전혀 실현이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해외에서도 초기에는 대부분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낮거나 가격이 높아 확산에 어려움이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이 그러하다. 재생에너지 보급률도 낮고 가격도 높다.
따라서 이 부분은 관점을 바꿔야 한다. 기업들의 RE100 전환이 가능하냐는 ‘실현’의 측면보다는 전환을 해야 하느냐 ‘당위성’의 측면을 봐야 한다. 즉,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보고 우선순위를 잡는 것이 타당하다.
전략 및 정책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재생에너지의) 우선순위가 높아져야 기업의 선택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된다.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여부는 국제 경쟁력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분야의 중간재 기업들이 많은데, 우리 기업들은 공급망 전반에 걸쳐 재생에너지 사용 등 온실가스 감축 요구를 강하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국내 가격경쟁력이 뒤처져 재생에너지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가격경쟁력이 회복될 때를 대비해 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을 높여야 한다.
향후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더라도 재생에너지 사용비율 차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해외 주요 고객사에 선택받기 어려울 수 있다.”
- 정부의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을 어떻게 보나.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시각도 많은데.
“한국은 여론 등을 고려하면 대기업을 향한 현금성 지원 또는 감세를 통한 지원이 쉽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또 기업들도 자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부문에는 자연스럽게 투자하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런 직접적 지원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기업의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재생에너지 사용 비용이 비싼 상황이 유지되게 되는 것이 문제다. 이런 측면에서의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다.
국내 재생에너지 가격이 높은 이유는 재생에너지 구축에 드는 원자재가격이 높아서가 아니라 행정처리 때 발생하는 주민 수용성 문제 등 기타 간접비용이 워낙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해외와 비교해서 수요에 발맞춰 공급이 이뤄지는 속도가 느린 것인데 이는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정부에서 강조하는 것이 산업경쟁력인데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이 높아지면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이는 바로 국가 산업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재생에너지 정책은 정치적 쟁점으로 다뤄져 왔다. 특히 보수정권은 상대적으로 진보정권보다 재생에너지를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는 데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가 산업경쟁력으로 이어지는 만큼 현 정권에서 더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 정책에 나서야 할 것이다.”
- 산업계에서는 여전히 재생에너지 사용 등 온실가스 감축에 드는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기업은 당연히 비용을 지출해 이익을 내는 집단이기 때문에 비용 지출을 부담으로 느끼는 것이 타당하다. 기업이 어려움을 표출해야 정책적 지원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들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방안이라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 지출한 비용이 결국 수익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고 이 비용을 지출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규제대응 비용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해외 기업들의 인식을 따라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업들의 노력과 함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더해져 재생에너지 확대가 ‘돈을 벌 수 있는 일’로 인식돼야 한다. 그 인식 정도에 따라 기업의 행동(투자)가 달라질 것이다. 재생에너지도 궁극적으로는 비용을 들여 수익을 내는 의사결정의 문제로 이어진다."
- 재생에너지가 의사결정 문제라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쉬운 결정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 현재 국내 주요 기업들의 사업계획은 대부분 5년 이내에서 구체화하는 상황인데 재생에너지 사용 등 장기적 탄소중립 비전은 전문경영인이 끌고 갈 수 있는 전략이 아니다.
오너경영인을 통해 아젠다가 제시되고 이에 맞춰 장기적으로 기업이 함께 (전략적으로) 따라가야 한다.”
- 최근 RE100의 대안으로 ‘CF100(Carbon Free 100%)’이 언급되고 있다. 전력조달방식 등에서 RE100보다 더 친환경적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오는데.
“24/7 CFE(CF100)가 원칙적으로는 RE100보다 엄격하고 더 친환경적인 것은 맞다. 또 실시간으로 재생에너지 등을 공급해야 하므로 시간대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의 재생에너지도 시장에서 선택받을 수 있어 전력시장 측면에서 봐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현재 국내에서 이 캠페인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국내 원자력 발전 확대 정책과 맞물려 원전 사용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문제다. 실질적으로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24/7 CFE에 동참한 글로벌 주요 기업들은 원자력을 사실상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건설이 재개된 신한울 3·4호기 이외에는 다른 원전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있다. 원전과 연계해 에너지 정책이 정치적 대립을 심화할 수 있는 측면을 경계해야 한다.”
“CF100이 온전히 달성할 수 있으면 더 좋은 전략이지만 관련 정보가 완전하지 않으면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