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면서 삼표그룹 경영공백 우려가 떠오른다. 정 회장은 이미 고령인데다 재판 영향으로 경영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 회장의 장남 정대현 삼표시멘트 사장이 조만간 삼표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중대재해법으로 재판을 받게 되면서 경영권 승계가 빨라질지 주목된다. |
7일 건설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삼표그룹이 진행하고 있는 승계작업이 정 회장 기소를 계기로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 회장은 최근 의정부지방검찰청 형사4부로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2일 만에 경기 양주시 은현면 소재의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토사가 무너져 내리며 노동자 3명이 매몰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검찰은 정 회장이 채석산업에 30년 종사한 전문가이고 사고현장 위험성을 사전에 인식한 점을 고려해 중대재해법상 처벌대상인 경영책임자가 맞다고 판단했다.
최근 나온 중대재해처벌법 판결로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 발생 때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
6일 의정부지법은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온유파트너스 대표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1호 판결인 만큼 후속 재판에도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1947년 생으로 올해 76세다. 적지 않은 나이에 사법리스크까지 직면하면서 정대현 삼표시멘트 사장이 그룹경영 전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많아진다.
정 회장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지만 삼표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정 사장뿐이다. 사실상 승계구도를 정해두고 2020년부터 이를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삼표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위치한 삼표는 정 회장이 지분 65.99%를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라있다. 에스피네이처가 19.43%, 정 사장은 11.34%로 뒤를 따른다.
에스피네이처는 정 사장이 71.95%를 지니고 있는 사실상 개인 기업으로 골재·레미콘의 제조·판매 철스크랩 수집·가공 판매, 제강슬래그 처리대행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삼표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19.43%를 쥐게 됐다.
정 사장이 삼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 에스피네이처를 삼표와 합병해 직접 지분을 늘리거나 정 회장이 삼표 지분과 에스피네이처 주식을 교환해 간접 지분을 늘리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에스피네이처의 가치를 높여 삼표와 합병비율 또는 주식교환비율이 정 사장에게 유리한 쪽으로 설정되면 그룹 경영권 승계가 한층 수월해질 수 있다.
에스피네이처는 꾸준히 실적을 쌓아 삼표 수준으로 덩치를 키웠다. 또한 에스피네이처는 2021년 자본 확충을 위해 800억 원 규모의 상환우선주(RPS)를 발행했다.
상환우선주는 특정기간 동안 우선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가 기간이 만료되면 발행회사에서 이를 되사도록 한 주식을 말한다. 상환해야 하는 자금으로 부채에 가깝지만 자본으로 인정받는다.
이에 따라 자본규모로만 따지면 에스피네이처가 삼표보다 더 크다. 에스피네이처가 삼표와 합병이나 주식교환에서 유리한 비율을 점할 수 있도록 자본규모를 키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에스피네이처는 2022년 말 기준으로 자본총계 4733억 원으로 2013년 설립 당시 282억 원에서 16.8배가량 커졌다. 삼표의 2022년 말 개별기준 자본총계는 3381억 원이다.
또한 에스피네이처는 배당을 통해 정 사장의 승계를 위한 자금 마련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정 사장을 2017년부터 2022년 회계연도까지 에스피네이처에서 370억 원에 이르는 배당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구체적으로는 2017년 29억 원, 2018년 36억 원, 2019년 72억 원, 2020년 90억 원, 2021년 90억 원, 2022년 53억 원 등이다.
에스피네이처는 그동안 높은 배당성향(배당금총액/당기순이익)을 보여왔다. 2019년 75.77%, 2020년 135.62%, 2021년 117.12%, 2022년 59.89% 등으로 2020~2021년에는 벌어들인 순익보다 배당금 지출이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2022년 회계연도에는 상환우선주에 배당을 지급해야 해 정 사장이 배당을 적게 가져갔다.
에스피네이처는 상환우선주를 보유하고 있는 멀티솔루션스프링제일차(37.5%), 신한금융투자(25%), 키스에스비제칠차(37.5%) 등에게 2022년 회계연도 우선주 배당금으로 32억 원을 지급했다.
정 사장이 삼표그룹의 경영권을 완전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추가 자금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이 지니고 있는 삼표 지분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삼표가 지난 2020년 유상증자를 단행했을 때 주당 가격은 5만4950원으로 이를 고려하면 정 회장의 삼표 지분 가치는 2천억 원 수준이다. 정 사장이 이 지분을 온전히 받으려 한다면 증여세 등으로 1천억 원 이상이 재원이 필요한 셈이다.
이에 삼표 서울 성수동 레미콘 공장 부지 개발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해당부지는 2만8천㎥ 규모로 한강과 서울숲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금싸라기 땅으로 평가받는다. 개발에 성공하면 천문학적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부동산업계는 보고 있다.
이 개발사업에 삼표그룹 오너 일가 회사인 에스피에스테이트가 참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표그룹이 성수동 레미콘 공장 부지를 확보하면서 자연스레 그룹 내 부동사개발사인 에스피에스테이트에 시선이 모이는 것이다.
특히 김한기 삼표산업 사장이 에스피에스테이트 대표이사를 맡고 있어 이런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 사장은 대림산업(현 DL이앤씨)에 입사해 삼호 대표, 대림산업 대표이사 사장으로 일한 뒤 보성산업 부회장 한양 대표 등을 맡은 부동산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실제 삼표산업은 2022년 6월 김 사장을 선임하며 그룹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성수공장 부지 개발, 수색 신사옥 건립 등 대형 프로젝트를 총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에스피에스테이트는 삼표에너지 부지인 서울 은평구 증산동 223-15번지 일대 개발사업을 위해 2018년 설립된 회사다.
정도원이 50.51%, 장남 정대현 삼표시멘트 사장이 25%, 장녀 정지선이 9.50%, 차녀 정지윤이 14.9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표 성수동 부지는 현대제철이 소유하고 있다가 삼표산업이 부지를 빌려 레미콘 공장을 운영했다. 교통체증, 미세먼지 등으로 주민 민원이 증가하면서 공장 철거 요구가 늘었고 삼표는 부지를 현대제철에 3800억 원에 넘겨받는 조건으로 공장을 지난 3월 철거하기 시작했다.
정 회장의 장녀 정지선은 1995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결혼해 사돈지간인 만큼 헐값에 땅을 넘겼다는 말이 나왔다. 다만 현대차그룹과 삼표그룹 모두 이러한 의혹을 수 차례 부인해왔다.
여기에 서울시가 삼표부지 용도를 제1종일반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해 용적률이 150%에서 800%로 5배 이상 늘어나는 등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존재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28일 제18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고 삼표레미콘 부지를 도시계획 사전협상 대상지로 선정했다. 서울시는 2023년에 토지 소유주인 삼표산업과 사전협상을 본격 추진해 2025년 상반기 착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