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부가 반도체 및 관련 부품과 소재 매출 목표를 제시하며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정부가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 의지를 재확인하며 2030년까지 일본 내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관련 매출을 15조 엔(약 148조 원)까지 늘리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대만 TSMC가 신설하는 파운드리 공장과 일본 정부 주도로 설립된 라피더스의 2나노 첨단 미세공정 시스템반도체 생산공장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4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2030년까지 자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와 부품, 소재 매출을 2020년의 3배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20년 일본에서 제조된 반도체 관련 생산품 매출은 5조 엔 안팎으로 집계됐다. 이를 15조 엔 규모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10년 동안 정부와 민간 분야에서 모두 11조 엔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소니와 소프트뱅크, 토요타자동차 등 일본 기업들이 정부와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한 반도체기업 라피더스가 대표적 예시로 꼽힌다.
라피더스는 미국 IBM과 협력을 통해 2027년까지 2나노 반도체 양산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 전문기업이다.
삼성전자와 TSMC가 현재 과점하고 있는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시장에서 일본도 시장 진입 기회를 확보해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등 차세대 기술 성장의 수혜를 노리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TSMC가 구마모토현에 신설하고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과 키오시아의 신규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도 일본 정부의 목표 달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1980년대 들어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강력한 입지를 갖춰냈다. 특히 글로벌 D램 점유율이 최고 80% 수준에 이를 정도로 큰 영향력을 보였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D램시장에 진출해 기술 경쟁력과 공격적 시설 투자를 앞세워 경쟁사들의 점유율을 무너뜨린 뒤 일본 반도체산업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시스템반도체 시장 상황도 마찬가지다. 현재 일본 기업의 미세공정 반도체 기술 수준은 40나노 안팎에 머무르고 있어 삼성전자와 TSMC에 상당히 뒤처지고 있다.
▲ 일본 키오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이 일본에 건설한 메모리반도체 합작 생산공장. |
일본 정부가 반도체 관련 연 매출 15조 엔 달성을 선언한 배경에는 이러한 과거를 딛고 기술 격차를 극복해 세계 반도체 주요 국가의 지위를 되찾겠다는 의미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심화되며 전 세계 반도체시장이 파편화되는 흐름도 뚜렷해지고 있다. 일본도 더 이상 해외 국가에 첨단 반도체 수입을 의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발생한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도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이 자국에 반도체 자급체제를 구축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 셈이다.
결국 일본 정부의 반도체 산업 재건 의지는 앞으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며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기업에도 장기적으로 더 치열한 경쟁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미국 정부가 최근 일본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 동참을 요구하며 압박을 더하고 있는 점은 이러한 목표 달성에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이 주요 수출국인 중국에 반도체 관련 부품이나 소재를 수출하기 어려워진다면 자연히 매출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도 부정적 변수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올해 중순에 이러한 외부적 영향을 고려해 더욱 구체적인 반도체 관련 매출 목표치를 제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