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현 기자 naforce@businesspost.co.kr2023-03-22 15: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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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법 주요 규제인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세부 규정을 공개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사업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를 각각 중국 시안과 우시에서 생산하고 있다. 그런 만큼 중국에서 생산량을 확대하지 못한다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사실상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량을 확대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성장 전략을 두고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에서는 현지에서 소비되는 반도체 위주로 생산하고 국내 투자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22일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가 미국 반도체지원법(CSA)의 투자 보조금을 받으면 향후 10년 동안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발표한 것을 놓고 한국 반도체 기업들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지만 성장이 정체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바이든 정부의 이번 조치로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는 성장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특히 삼성전자와 같은 메모리반도체 기업은 중국사업 확장에 더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된다”고 보도했다.
대만 과기신보는 “미국의 제재로 TSMC의 중국 난징 생산라인의 설비 확장이 어려워졌다”며 “하지만 한국의 삼성전자 등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서 직면한 투자 제한은 TSMC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TSMC는 현재 대부분의 반도체를 대만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중국 난징 공장에서는 28나노 수준의 시스템반도체를 월 6만장 정도(웨이퍼 기준) 생산하고 있다. 28나노 이상의 시스템반도체는 구형 반도체공정으로 분류돼 미국 규정에 따르면 10%까지는 증설할 수 있다.
반면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공장에서 생산하는 낸드플래시는 월 27만 장 수준에 이른다.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공장에서 생산된 D램도 월 20만 장으로 TSMC의 반도체 생산량과 단순 비교했을 때 3배 이상 많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도 중국 다롄에서 월 9만장 정도 생산하고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는 대부분 첨단반도체에 속해 5%까지밖에 생산량을 확대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기술 업그레이드를 통한 반도체 생산 확대가 허용된 만큼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최근 몇년 동안 반도체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했던 추세를 고려하면 10년 동안 5% 생산량 확대 제한은 사실상 확장을 금지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게다가 올해 10월 미국의 반도체장비 수출 통제 유예기간이 지나면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해 중국공장에 반도체장비를 반입하는 것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미국과 별도의 협상을 통한 기간 연장이 없다면 사실상 중국 공장에서 반도체 생산량 확대를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미국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 원문을 보면 강한 어조로 생산량 규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며 “생산능력 통제는 보조금에 대한 꼬리표 치고 대단히 값비싸다”고 분석했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
따라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리스크가 커진 중국보다는 국내에서 반도체 생산량을 확대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5일 경기도 용인에 710만㎡ 규모의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산업단지)를 조성하고 20년 동안 300조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SK하이닉스도 2022년 착공을 시작해 2027년부터 가동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공장 4곳에서 12인치 웨이퍼 기준 최대 월 80만 장 규모의 반도체를 생산하게 된다. 현재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보다 2배 이상 많다.
로이터는 “삼성전자가 20년 동안 2300억 달러(300조 원)를 투자해 한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것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투자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를 대부분 현지에서 판매하는 방식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 생산량의 85% 이상이 중국 내수 시장에서 소비되는 기업은 10% 이상의 설비 투자가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을 뒀다. 다만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미국 상무부에 가드레일 규정 준수여부를 지속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현재 한국기업의 반도체 매출 60%가 중국(홍콩 포함)에서 발생하는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는 모두 중국 내수로 소비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중국도 최근 반도체 자급을 장려하는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는 만큼 향후 중국 내 반도체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입지가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고영민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전 세계 IT 수요 가운데 중국 비중은 30~40% 이상으로 추정돼 중국이 자국 내 반도체 수요만 충당한다고 해도 작은 규모가 아니다"며 "다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비중의 수요를 중국 업체에 일부 뺏기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