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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브리핑] '국민차' 자리잡은 37세 그랜저, 해외에서는 왜 인기가 없을까

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 2023-02-0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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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브리핑] '국민차' 자리잡은 37세 그랜저, 해외에서는 왜 인기가 없을까
▲ 지난해 기아 쏘렌토에 밀려 연간 베스트셀링카 자리를 내준 현대자동차 그랜저가 올해 1월 월간 첫 판매에서 판매량을 크게 키웠다. 사진은 현대차 7세대 그랜저.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2022년 기아 쏘렌토에 밀려 베스트셀링카 자리를 내준 현대자동차 그랜저가 올해 1월 판매량을 크게 키웠습니다.

6년 만에 나온 그랜저 완전변경(풀체인지) 7세대 모델로 신차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5일 현대차와 기아 판매실적 IR자료를 종합하면 1월 그랜저는 지난해 같은 달 판매량의 5배가 넘는 9131대가 팔려 국내에서 판매된 모든 자동차 가운데 압도적 1위를 차지했습니다. 1월 판매 2위에 오른 카니발(6904대)을 2200여 대 차이로 크게 앞섰습니다.

현대차는 지난해 11월 브랜드 승용 모델 최초로 일자형 램프를 달고 몸집을 크게 키운 6년 만의 풀체인지 모델, 7세대 그랜저를 출시했었죠.

그랜저는 2022년까지 6년 연속으로 국내 판매 1위 왕좌를 노렸으나 쏘렌토에 박빙의 차이로 밀려 2위에 머물렀습니다. 다만 새해 첫 달부터 압도적 판매량을 보이며 2023년 가장 유력한 '국민차' 후보로 치고 나가는 모습입니다.

그랜저는 2018년 '아제라'란 이름으로 판매되던 미국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면서 현재는 사실상 '내수용'으로만 판매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2016년부터 그랜저 미국 수출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판매량이 저조했기 때문입니다. 2000년 2세대 모델 '뉴 그랜저'로 처음 미국 땅을 밟은 그랜저는 2006년 2만6833대의 판매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2015년부터 연간 판매량이 5천 대 수준으로 뒷걸음 쳤습니다.

똑같은 차량을 바라보는 고객들의 온도 차이가 국내와 해외에서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국내 인기 모델들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높은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현대차에서 그랜저 다음으로 국내 판매량이 많은 아반떼는 미국에서 브랜드 최고 인기 모델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쏘렌토와 함께 기아 국내 판매 실적을 쌍끌이 하고 있는 대표모델 스포티지도 글로벌 시장에서 지난해까지 8년 연속으로 브랜드 판매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국내에서 독보적 인기를 누리는 그랜저가 해외 시장에서는 유독 힘을 못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국 소비자들의 그랜저 사랑에는 제품이 갖춘 객관적 상품성뿐 아니라 37년 동안 뿌리내린 '기억'도 한 몫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백브리핑] '국민차' 자리잡은 37세 그랜저, 해외에서는 왜 인기가 없을까
▲ 1세대 그랜저. <현대차>
그랜저는 37년 전인 1986년 1세대 '각 그랜저' 모델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출시 당시 판매 가격은 1690만 원~2890만 원으로 중간 가격은 당시 1인당 명목 국민 총소득(GNI) 245만 원의 9배가 넘었습니다.

1992년 출시된 2세대 '뉴 그랜저' 역시 판매 가격이 1850~3490만 원으로 중간가격은 출시 당시 1인당 국민 총소득 634만 원의 4배를 넘어섭니다.

1996년 현대차 다이너스티가 출시될 때까지 그랜저는 국내에서 가장 고급스런 자동차의 지위를 이어갔습니다.

더구나 2022년 한국 시장에서 판매 비중이 약 20%에 달할 정도로 지금이야 수입차 시장이 크게 성장했지만 1987년 국내 시장에 수입차가 개방된 뒤 2001년까지만 해도 수입차 점유율은 1%에도 못미쳤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랜저는 대체 불가능한 '최고급' 자동차였던 셈입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3만7844대의(법인 및 사업자 제외) 그랜저 가운데 구매 연령층은 50대가 1만2342대(32.6%), 60대가 8926대(23.6%)를 차지하며 가장 단단한 수요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최근 출시된 7세대 그랜저 가솔린 모델은 3716~4854만 원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중간 가격은 2021년 기준 국민 총소득의 1.06배에 그칩니다.

현재 주 수요층인 50~60대의 청년 시절 집 값을 넘봤던 그랜저가 부담되지 않는 예산의 선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물론 현재는 다양한 수입 브랜드와 제네시스 브랜드가 최고급 자동차 자리를 대체하면서 그랜저가 80~90년 대 고급 세단으로 평가받던 쏘나타의 포지션으로 내려간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에게 그랜저에 관한 고급스러운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와 달리 이런 기억이 없는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그랜저는 별 특별할 것 없는 '준대형(E-세그먼트) 세단' 가운데 하나일뿐입니다.

더구나 그랜저가 위치한 준대형 차급이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에서와는 달리 해외에서 매우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22년 미국 자동차 판매 탑 10 모델을 보면 1~3위를 포함해 픽업트럭이 5자리를 꿰찬 가운데 4자리를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모델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단으로는 토요타의 중형 세단 캠리 만이 5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세단만 따로 보면 중형 이하 차급에서 가성비 좋은 차종들이 높은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백브리핑] '국민차' 자리잡은 37세 그랜저, 해외에서는 왜 인기가 없을까
▲ 2세대 그랜저. <현대차>
다른 자동차 선진 시장인 유럽은 전통적으로 소형차 인기가 높습니다. 유럽은 중세부터 도시가 발전한데다 전통 경관 보존을 중시해 도로와 주차공간이 매우 협소한 편입니다.

지난해 유럽 자동차 판매 10위권에서 소형차가 무려 7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나머지는 준중형 모델들이 차지했는데 그 가운데 9위에 오른 준중형SUV 투싼이 차체가 가장 큽니다. 투싼의 전장은 4630mm로 7세대 그랜저(5035mm)보다 405mm나 짧습니다.

반면 지난해 국내에서는 그랜저를 비롯해 제네시스 G80, 기아 K8 등 국산차가 생산하는 모든 준대형 세단이 판매 순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바 있습니다. 

이렇듯 그랜저는 국내와 해외에서 매우 다른 판매 환경에 놓여 있지만 여전히 글로벌 판매 재개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차는 7세대 그랜저를 출시하며 글로벌 판매와 관련해 권역별로 환경에 따라 전략적으로 준비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다만 현대차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아직 그랜저 글로벌 판매에 관한 구체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37년 전 최고급 자동차의 대명사로 등장해 현재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차가 된 그랜저가 글로벌 시장에서 다시 날개를 펼 수 있을지 큰 관심이 쏠립니다. 허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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