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1. "살아가다 보니 진실이 두 개인 경우가 많습디다." 영화 '모가디슈'에 나오는 말이다. 

사실 세상사 가운데는 선악의 이분법 잣대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는 일이 생각보다는 많다. 이렇다 보니 명확하게 단번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쾌도난마(快刀亂麻)' 식의 일 처리를 좋아한다. 한 가지 기준으로 단칼에 해결하니 통쾌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쾌도난마는 늘 부작용을 낳는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 시절에 이뤄졌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들 수 있다. 최소한의 생활은 할 수 있도록 일한 대가를 제대로 쳐줘야 한다는 생각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옳다.  

하지만 그 전에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건물주가 자영업자를,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던 기존 우리 사회구조 속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입법부터 먼저 추진해야 했다.

이런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빠르게 올린 최저임금은 자본주의 원리 아래에서 결과적으로 저소득층 노동자의 일자리를 크게 줄였다. 아울러 이보다 더 큰 부작용도 함께 낳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의 부작용으로 소상공인이 힘들어졌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물건값보다 사람값이 비싸야 한다'는 선진국 사이에서는 보편화된 가치가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크게 옅어져 버렸다는 점이다.

#2. 보험업법 개정안, 이른바 '삼성생명법' 논의가 2023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2020년 5월 말 출범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후 한동안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2022년 11월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 상정되며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의 핵심은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가격 기준으로 총자산의 3%까지만 보유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고객이 맡긴 보험사 자산의 투자 안정성을 높이자는 취지를 담았다.

보험사가 고객이 맡긴 돈으로 고객의 이익이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몰빵 투자' 하는 일을 법으로 막자는 것이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생생명은 쥐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8%가량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이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은 흔들릴 수 있다. 

현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기타 계열사’의 형태다. 이 가운데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고리가 유지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오너가 고객 돈을 계열사 지배에 이용하던 불합리한 과거 관행을 시정한다는 점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은 큰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고도 볼 수 있다.

#3. 다만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600만 삼성전자 개인 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현실론적 비판도 제기된다. 대량 매물이 시장에 쏟아지면 결국 개미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계에선 보험업법 개정안을 놓고 '삼성해체법'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너 이재용 회장의 지배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비판이다. 

물론 이재용 회장이 삼성에 있어 절대 선은 아니다. 이 회장의 지배력이 흔들린다고 당장 삼성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삼성해체법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다소 무리가 있는 주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1등 기업의 지배구조를 금융관련 법 하나로 바로 흔들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에 얼마나 이득이 될지는 분명 따져봐야 할 문제다.

최근 글로벌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럴 때일수록 오너 경영인 체제가 가지는 강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시스템반도체 등 임기가 정해진 전문 경영인이 할 수 없는 대규모 장기 투자를 오너 경영인은 인내심을 갖고 할 수 있다. 

세계화가 종언을 고하고 지정학적 위험이 커진 현재 이 회장과 같은 오너 경영인의 리더십이 삼성과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 작지 않다.

#4. 우리나라 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궁극적으로 능력 있는 경영인으로 이뤄진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지배구조로 가야 한다는 데는 여러 사람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재용 회장 역시 경영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런 만큼 보험업법 개정안 논의가 '반재벌 대 재벌 기득권 지키기'의 단순한 대립 구도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그런 면에서 보험업법 개정에 따른 소액주주의 피해 가능성을 막기 위해 삼성전자가 삼성생명이 보유한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한 뒤 소각할 수 있도록 법적 제약을 없애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최근 발의된 점은 진일보한 행보로 읽힌다.

보험업법 개정안 논의를 보험 계약자 권익과 소액주주 보호뿐 아니라 기업의 소유지배 구조 단순화, 나아가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폭제로 삼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 

어떤 일이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이치는 같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방향보다는 디테일이 더 중요하다. 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