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은 16일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리고 있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브라질이 다시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 등 환경정책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진은 룰라 당선인이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브라질이 돌아왔다(Brazil is back).”
가디언 등 주요 외신들은 16일(현지시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이 이집트에서 열리고 있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회의장에서 한 연설을 머릿기사로 앞다퉈 보도했다.
룰라 당선인의 일성은 이번 당사국 총회에서 가장 파급력이 강한 발언이었다. ‘세계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의 대부분을 보유한 중남미 1위 경제대국 브라질이 다시 환경보전에 앞장서겠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룰라 당선인은 “아마존을 보호해야 세계의 기후 안보를 지킬 수 있다”며 “브라질 새 정부는 무분별한 삼림 벌채, 생물다양성 감소 등을 막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고 우선적으로 아마존을 훼손하는 ‘기후 범죄자’들을 모두 쫓아 내겠다”고 약속했다.
당사국총회 회의장 안팎에서는 룰라 당선인을 향한 환호가 이어졌다. 이날 회의장에는 룰라 당선인을 보기 위한 인파가 몰려 당사국총회 사무국이 이례적으로 연설장 문을 닫고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다.
BBC는 이런 상황과 함께 “룰라 당선인이 이번 당사국총회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아마존 열대우림은 지구 산소의 20%을 생성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열대우림이다.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경제개발을 위해 국토의 59%에 이르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개발해야 할 지를 놓고 정치적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9년 집권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환경 규제를 완화하고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2022년 10월 한 달 동안에만 여의도 면적의 312배에 이르는 904㎢ 면적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파괴된 것으로 파악됐다.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INPE)가 2015년 실시간 삼림벌채 감지시스템(Deter)을 도입한 이후 가장 큰 수치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마존 삼림 파괴를 이유로 2019년 브라질 내 법률가들로부터, 2021년에는 오스트리아 환경단체 ‘올라이즈’로부터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발 당하기도 했다.
룰라 당선인도 대선 때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보르소나루 대통령에 공세를 펼쳤다.
룰라 당선인이 12년 만에 3선에 성공한 만큼 한동안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 등 환경 정책에 강하게 힘을 줄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이번 당사국총회도 원칙적으로는 현직 대통령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참석해야 하나 그가 불참을 선언하자 룰라 당선인이 대신 참석한 것이다.
룰라 당선인이 실제로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우선 브라질 의회 상황도 룰라 당선인에 녹록치 않다. 올해 10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브라질 연방의회 선거 결과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자유당이 하원에서 1998년 이후 단일 정당 최대 의석인 99석을 차지하는 등 상하원 모두 우파 정당이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다.
게다가 2023년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이 0.6%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 등 경제 전망이 좋지 않다.
룰라 당선인은 지난 집권 후반기에도 경제성장 압박에 농업 부문에서 환경정책을 일부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다만 환경정책이 남미 정세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변했다는 점은 룰라 당선인이 펼칠 환경정책에 힘을 보태는 요인이다.
룰라 당선인의 집권으로 완성된 남미의 ‘2차 핑크 타이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적극적 외교활동을 펼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존 보호 등 환경정책은 더 이상 브라질의 국내 문제가 아니다.
‘핑크 타이드(pink tide, 분홍물결)’는 온건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좌파 정당이 남미에서 잇따라 집권한 흐름을 일컫는 말로 완전한 극좌의 붉은색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핑크’를 쓴다.
과거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1차 핑크 타이드를 통해 집권한 남미의 좌파가 ‘반미’를 주로 내세웠던 것과 달리 2020년 이후의 2차 핑크 타이드로 집권한 남미의 좌파 정권은 ‘반미’ 색채가 약하고 복지, 환경 등과 관련된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브라질 등 좌파가 집권한 남미 국가들이 녹색 성장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진하려 하는 만큼 환경 문제는 미국과 외교에서 대화의 접점이자 공동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또한 여전히 외교정책에서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 전통을 고수하며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항해 남미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룰라 당선인은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특사가 이끄는 미국 대표단과 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케리 특사는 룰라 당선인의 연설을 놓고 “룰라 당선인이 브라질의 환경 접근법을 완전히 바꿀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