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10월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텅 빈 야당 의원석을 지나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예산 청사진을 밝히는 자리에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아예 듣지 않겠다며 참석조차 않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윤 대통령의 리더십에 흠집이 난 것은 물론이거니와 여야 강대강 대치 국면 속에서 예산안 처리가 불투명해지는 등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진행한 새 정부 첫 예산안 시정연설에 국회 의석 반이 넘게 비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감사 도중 야당 당사 압수수색에 민주당은 헌정사상 초유의 시정연설 전면 거부로 맞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차원에서 시정연설 도중 퇴장한 적은 있어도 아예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월16일 윤 대통령이 국회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할 때 민주당 의원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여야 대결이 극한 상황으로 치달은 모양새를 보이면서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게다가 지지율은 여전히 30%대 전후에서 박스권을 오가고 있다.
여권 내 '이준석 리스크' 해소, 북한의 7차 핵실험 임박설과 맞물린 안보 위기론,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전방위적 수사 등에도 불구하고 25일 현재 윤 대통령 지지율은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24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2.9%로 전주 대비 0.2%포인트 소폭 하락했다. 21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27%로 집계되며 5주째 20%대에 머물렀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민주연구원이 있는 민주당 중앙당사를 두 차례 시도 끝에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민주당과 강하게 부딪혔다. 윤 대통령이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강도높은 사정정국을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왔다.
경제 위기가 높아지는 상황이지만 불법 대선자금 이슈를 놓고 여야 대치가 심화되면서 경제 살리기를 위한 야당의 협조는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당장 예산안이 법정처리 시한(12월2일) 안에 통과할 수 있을지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일각에서 '준예산'(지난해 예산에 준하여 집행) 편성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법정시한 내 내년 예산안 처리를 해달라"고 국회를 향해 호소하기도 했다.
예산안 협의뿐만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 및 세제 개편안 등을 둘러싼 여야의 의견 차이가 커 민주당과 협의가 필요하지만 현 대치 국면에서는 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성과를 내기 어려워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지원'이란 단어를 32번, '경제'라는 단어를 13번, '약자'라는 단어를 7번 언급했다.
글로벌 복합위기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 지원에 예산과 정책의 중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내보였지만 납품단가연동제, 안전운임 일몰제 등 경제적 약자를 위한 법안 처리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납품단가연동제는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또는 위탁기업과 수탁기업 사이 거래에서 계약 기간 원자재 가격이 변동될 때 가격 변동분이 납품단가에 반영되도록 하는 제도다.
납품단가연동제의 입법 필요성에는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연동 조건 등 각론에서는 아직 이견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안전운임 일몰제도 여야의 충돌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일몰제 폐지에, 국민의힘은 일몰제 폐지에 반대하진 않는다면서도 폐지가 아닌 연장 쪽에 힘을 무게를 두고 있다.
예산안 협의를 비롯해 국정운영이 삐그덕 거릴 것으로 전망되지만 윤 대통령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은 국민 세금이 반영되는 국정운영 기조를 심의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한 특정인의 사당(私黨)은 아니지 않는가 공당으로서 책무를 다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역시 윤 대통령을 향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협치 가능성을 차단했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 손으로 초유의 정치 탄압으로 야당 말살에 몰두하고 다른 손으로 국회의 협력을 이야기하다니 참 염치 없는 대통령"이라며 "
윤석열 정부에 대한 작은 희망조차 사라져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무책임한 국정운영에 들러리로 서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