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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반도체 패권 경쟁, 소련이 주도한 '스푸트니크 위기' 재현

김용원 기자 one@businesspost.co.kr 2022-10-14 15: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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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반도체 패권 경쟁, 소련이 주도한 '스푸트니크 위기' 재현
▲ 소비에트 연방이 1957년 10월 우주에 발사한 스푸트니크 1호는 미국 정부가 우주과학 분야에 투자를 본격적으로 확대하며 기술 경쟁의 포문을 본격적으로 여는 계기가 됐다. < NASA >
[비즈니스포스트] ‘스푸트니크’라는 다소 생소한 어감의 단어는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1957년 우주로 발사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이름이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가 이어지고 있던 1950년대에 두 국가 사이에서는 군사기술을 중심으로 한 첨단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우주과학 기술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민감한 영역으로 꼽혔다. 그야말로 두 열강의 기술 경쟁이 지구를 넘어 우주로 확산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1955년 처음으로 인공위성 개발과 상용화 계획을 공식화하며 1957년 이를 발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적 문제 등 여러 이유로 계획이 무산됐고 인공위성 발사 시기는 기약 없이 늦춰졌다.

그러던 중 극비리에 로켓 기술을 개발하고 있던 소련이 1957년 10월 미국보다 앞서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하면서 미국 정부를 비롯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미국에서는 훗날 이 사건을 ‘스푸트니크 위기’라고 부르게 됐다.

소련보다 앞선 경제력 및 군사력, 기술력 등을 자신하고 있던 미국이 첨단기술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고 위기감을 느끼는 중요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은 이후 인공위성을 넘어 유인 우주비행과 달 착륙, 행성 탐사 등 분야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면서 전 세계 우주과학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래 전의 역사적 사건으로 남은 스푸트니크 위기라는 단어가 최근 주요 외국언론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우주과학 기술 경쟁이 아닌 반도체 기술 경쟁을 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현재 세계 첨단기술 분야에서 패권을 잡기 위해 반도체를 두고 열띤 기술 경쟁과 서로를 향한 압박을 이어가는 상황이 과거 미국과 소련의 대결을 떠올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13일 “미국의 수출 규제가 중국 정부의 반도체산업 육성 의지에 큰 타격을 안기면서 중국이 ‘스푸트니크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에 대응해 우주과학 기술 투자를 대폭 확대한 것처럼 중국도 반도체 기술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공격적 투자와 연구개발 노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씨티그룹의 보고서를 인용해 미국 정부의 중국 반도체 공급망 단절 시도가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노력을 앞당기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이 자체 기술로 반도체 소재와 장비, 완제품에 이르는 공급망을 구축하는 일은 비용 측면의 효율성과 성공 가능성이 낮지만 정치적 관점에서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 중국 반도체 패권 경쟁, 소련이 주도한 '스푸트니크 위기' 재현
▲ 중국을 겨냥한 미국 정부의 반도체 규제로 중국 정부가 과거 미국의 '스푸트니크 위기'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최근 주요 반도체 장비기업들이 고성능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를 중국에 원천적으로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강도 높은 규제조치를 도입했다.

중국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고립시켜 고성능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쓰이는 인공지능과 군사기술 등 분야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목적이다.

로이터는 시진핑 국가 주석이 이른 시일에 3연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의 반도체 규제조치가 결정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 주석이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면서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국가 차원의 최우선 목표로 전면에 앞세워 더욱 공격적으로 추진해 나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에서 완전한 자급체제를 구축하려면 적어도 1조 달러(약 1426조 원)에 이르는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미국과 반도체 패권 경쟁을 국가의 미래와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스푸트니크 위기에 대응해 우주과학 분야에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한 일도 당시에는 일각에서 심각한 예산 낭비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인 우주선을 발사해 달 표면에 착륙시킨 뒤 지구로 귀환하도록 하는 ‘아폴로 계획’에 투입된 예산만 254억 달러인데 현재 가치로 따지면 300조 원을 훌쩍 넘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이런 노력이 현재 우주과학 및 로켓 기술의 발전에 기여한 점을 고려한다면 중국의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노력도 미래에는 중요한 성과로 남게 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글로벌타임스 등 여러 관영매체를 통해 자급체제 구축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은 표면적으로 기술 경쟁에 해당하지만 궁극적으로 군사력 강화를 위한 경쟁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통점을 보인다.

소련은 당초 미국에 핵공격을 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진행하며 로켓 기술을 연구했고 스푸트니크 발사는 결국 막강한 군사 역량을 증명하는 역할을 했다.

첨단 반도체 기술 경쟁도 향후 드론과 로봇 등 무인 군사무기 체계, 인공지능 기반 방산체계 구축 등에 핵심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래 군사력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히고 있다.

세계가 미국과 중국의 양강체제로 점차 재편되는 신냉전 체제가 갈수록 뚜렷해지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두 국가의 반도체 경쟁은 전 세계가 주목해야 할 ‘세기의 대결’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반도체 기술 강국이라는 점에서 이런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반도체 경쟁에 핵심으로 파악하고 자국 동맹에 끌어들이려 압박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은 더욱이 중국을 반도체 최대 시장으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완전한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노력에 따라 경제적 악영향도 피하기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한국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에 남북 분단의 아픔을 겪으며 가장 큰 피해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됐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시대도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될 수 있다. 김용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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