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반도체 설계기업 ARM와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분야 기술 협력 가능성을 논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비즈니스포스트]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ARM 지분인수 가능성을 논의하는 대신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사업적 협력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지분을 인수하는 데 여러 걸림돌이 자리잡고 있는 만큼 이는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추진하기 쉽지 않은 일로 꼽히기 때문이다.
26일 대만 디지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ARM이 삼성전자와 근접메모리(Near-Memory) 컴퓨팅 기술에 관련해 본격적으로 협력을 추진할 잠재력이 커지고 있다.
근접메모리 컴퓨팅은 하나의 반도체 패키지에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를 통합해 두 반도체가 데이터를 더 원활하게 주고받도록 하며 반도체 성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기술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 분야에서 단기간에 대량의 연산을 처리할 때 메모리반도체와 데이터를 주고받는 동안 ‘병목현상’이 발생해 시스템반도체 성능이 저하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근접메모리 컴퓨팅은 인메모리(In-memory) 컴퓨팅과 비슷한 개념인데 고성능 반도체에 주로 사용되는 2.5D 또는 3D 반도체 패키징에도 적용할 수 있어 활용 잠재력이 더욱 크다.
인메모리 컴퓨팅은 메모리반도체가 데이터를 저장할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연산도 진행할 수 있어 전력 소모량이 낮고 인공지능 등 고성능 연산 분야에서 활용성이 높은 기술이다.
ARM의 한 고위 임원은 디지타임스를 통해 “삼성전자와 협력은 인공지능 솔루션을 위한 근접메모리 분야를 포함할 수 있다”며 “삼성전자가 해당 구조에 활용할 수 있는 메모리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세계 최대 기업이자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초에는 차세대 ‘M램’ 기반의 인메모리 컴퓨팅을 세계 최초로 구현해 글로벌 학술지 네이처에 관련 논문을 실은 적도 있다.
ARM은 주로 스마트폰에 쓰이는 모바일용 프로세서의 반도체 설계 기반(아키텍쳐)을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 대만 미디어텍 등 글로벌 고객사에 공급하는 일을 핵심 사업으로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모바일 분야를 넘어 서버용 인공지능 반도체, 자율주행 반도체 등 고성능 시스템반도체에 사용되는 아키텍쳐까지 개발해 신사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반도체의 연산 성능을 크게 끌어올려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손 회장은 이른 시일에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ARM과 삼성전자의 전략적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 부회장도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손 회장이 어떤 제안을 내놓을 것 같다며 이번 만남을 두고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
손 회장과 이 부회장의 만남이 삼성전자의 ARM 지분 인수를 논의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관측이 다수의 해외언론에서 유력하게 나왔다.
소프트뱅크가 ARM 매각이나 상장을 통한 자금 확보를 꾸준히 추진해 왔고 삼성전자도 이 부회장의 정식 경영 복귀를 계기로 인수합병 등 대규모 투자 기회를 활발히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디지타임스의 보도 내용대로라면 손 회장과 이 부회장의 만남은 삼성전자의 ARM 인수보다 반도체사업에서 기술 협력을 중점으로 두고 진행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가 ARM 지분을 대량으로 인수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ARM의 반도체 기술이 전 세계 주요 반도체기업에서 모두 활용되고 있어 인수에 여러 걸림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엔비디아가 지난해까지 ARM 인수를 추진했지만 각국 경쟁당국의 독점금지 규제로 무산된 적이 있고 다른 반도체기업들도 삼성전자의 인수를 강력하게 반대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와 퀄컴, 인텔 등 여러 반도체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ARM 지분 공동인수를 추진할 가능성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인수 시도 당시 400억 달러(약 57조 원)에 이른 소프트뱅크 기업가치와 글로벌 대형 반도체기업들의 이해관계 충돌 등을 고려한다면 공동인수가 추진되기는 쉽지 않다.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소프트뱅크의 상황에서 ARM을 상장을 밀어붙이는 대신 여러 반도체기업에 지분 매각을 시도하는 일은 오히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손 회장이 여전히 ARM 상장을 염두에 두고 미래 성장성을 높여 기업가치를 유리하게 인정받기 위해 삼성전자와 협력을 통한 근본적 기술 경쟁력 향상을 노리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ARM 지분을 소량 인수해 소프트뱅크의 자금 확보를 돕는 방안이 손 회장과 이 부회장의 만남에서 거론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이를 통해 ARM과 반도체기술 협력을 강화하는 등 실익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삼성전자와 ARM이 근접메모리 컴퓨팅 등 차세대 신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한다면 삼성전자가 잠재적으로 고성능 메모리반도체의 고객사 기반을 크게 확대할 잠재력이 있어 미래 성장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여지가 크다.
디지타임스는 “인공지능 연산 반도체의 수요 증가는 근접메모리 및 인메모리 컴퓨팅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삼성전자가 해당 기술 측면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