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월1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미국독립국립역사공원에서 미국의 영혼의 대해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을 'semi-Fascist'라고 불렀다. 이를 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을 '국가의 적'이라 비난했다. 이날 연설무대의 기괴한 모습도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 AFP/연합뉴스 > |
[비즈니스포스트] 걸핏하면 옛날 얘기 끄집어 내는 것이 노인네들의 특징이기는 한데, 그것은 단지 노인네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를 현재화하여 현재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은 모든 세대에게 공통적인 일이며, 인간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니 스무 살만 넘어도 "내가 소시적에는..." 운운이 가능하다.
이 '역사', 지나간 과거가 찬란했을수록 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넓게 퍼져있을수록 그 활용도가 커진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제자백가와 고사성어를 여전히 들먹이고 서구에서는 그리스-로마 시절이나 성경 구절이 단골 손님으로 등장한다.
현재화된 역사, 그리고 이 역사를 둘러싼 현재의 투쟁은 미국에서 동원된 '로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주 목요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 지지자들(MAGAs; Make America Great Again을 주장하는 공화당원들)을 'semi-Fascist'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이들은 '민주주의의 적'이며 '국가의 영혼을 갉아먹는다'고 주장했다.
사흘 뒤에 트럼프는 바이든을 '국가의 적'(enemy of the state)이라고 비난했다. 둘 다 로마제국의 역사를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에서(다른 모든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상대방을 '파시스트', '공산주의자', '독재자'라고 부르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1990년대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던 시절에 그도 '사회주의자'로 불렸다. 당시 의회를 장악했던 new republican(깅그리치 공화당)은 사석에서는 당시 영부인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을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같은 침대 쓰는 부부인데, 부인 쪽이 훨씬 더 '나쁜 놈'으로 치부되었던 것이다(클린턴의 '바람기'는 단지 남성 호르몬이 넘쳐서가 아니라, 힐러리에 대한 열등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이벤트'들은 과거와는 좀 다르다.
미국에서도 '정치적 허우대'가 있는지라, 공식적으로는 그 같은 호명을 거의 하지 않는다. 특히 '각 잡고' 상대방을 '파시스트'로 비난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만일 그런 언동을 하면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
더구나 정치적으로 국민 전체를 대변해야 한다는 '역사적 관행' 속에 있는 대통령이 그 같은 정치적 언사를 쓰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닉슨 대통령 집권 당시의 녹음기록을 보면 백악관회의에서는 입만 열면 욕설에다 온갖 정치적 마타도어가 난무하기는 했다. 그래도 여전히 '비공식적'인 일이었다).
지난 2020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약 7400만 명이었다(바이든이 얻은 득표수는 약 8100만 명). 그리고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 가운데 최소한 40% 이상은 이른바 'MAGA' 지지층으로 분류된다. 즉 아무리 적게 잡아도 유권자의 20%는, 이번에 바이든이 비난한, 'semi-fascist' 또는 '민주주의의 적'에 속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은 당파적이어도 상관없으며, 역사적으로 계속 당파적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여전히 국민 전체를 대변해야 한다는 전통 내에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국민의 일부를 '파시스트'라고 비난하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사건이다. 미국 국민의 20%가 '파시스트'라고?(실은 80%가 넘는 줄 알았는데 그것밖에 안 된다고 해서 놀랐다).
어딜가나 정치는 '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속마음이야 어떻든 정치적으로는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진보적인 척해야 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을 유권자들에게 '니들이 문제야'라고 비난하는 것은 그 정치적 효과를 떠나서 미국 정치의 지형이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정치적으로는 효과가 역효과보다 큰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의 연설은 필라델피아주의 가톨릭 유권자들을 암암리에 겨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서구 정치 전통에서 '파시즘'은 '주류 정치'와 불가분의 핵심 요소였다. 명칭의 기원부터가 로마 제국의 'fasce'에서 온 것인데, 이는 로마시대 행정관들의 무장경호원들이 가지고 다니던 무기의 이름이었다.
이 무기는 도끼 주변에 여러개의 각목을 둥그렇게 덧대 만든 것으로, 여럿이 뭉치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단결'(unity)을 형상화한 것이었다('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구호 자체가 그 기원이 파시즘적이다).
로마의 무장경호원들은 단지 '경호'만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들에게는 집회해산권과 사형집행권이 있었다. 즉 가운데의 도끼는 그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죽이는 도구였다. 인민을 때려잡는 도구, 그리고 국가를 향한 '단결'이라는 로마의 전통은 서구 역사에서 연면히 이어져왔으며, 최초의 근대적 민주주의인 미국에서도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미국 하원의장의 연단 뒤에도 'fasce'를 형상화된 문양이 새겨져 있다. 프랑스에서는 아예 국가 문장이다. 나치 시절에는 훈장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니 무솔리니가 '파시즘'의 창시자로 욕을 먹는 것은 좀 억울한 바가 있다. 실은 그는 단지 전통을 개념화한 것 뿐이다.
무솔리니가 욕을 먹는 것은 전통에다가 이탈리아풍으로 현대적 색채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를 'cooperative', 즉 다양한 사회세력들이 협력하여 공동으로 구성한 단위로 제시했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다른 모든 것들보다 상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이 주장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영국의 토마스 홉스가 18세기에 이미 했다).
다만 무솔리니는 그렇기 때문에, 국가 앞에서는 다양한 사회세력들 사이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계급'이나 '계층', '지역', '인종'(물론 백인만 인종이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무솔리니의 국가는 무계급, 무차별 국가다.
이것 때문에 파시즘이 '국가 사회주의'라고 불린 것이다. 그런데 이 때의 '사회주의'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통일된 사회'라는 의미에서의 사회주의였다.
즉 무솔리니에게는 '국가=사회'였다(헤겔이 이미 그보다 100년 전에 그런 정신나간 소리하지 말라고 점잖게 훈계한 바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헤겔은 정반대로 사회가 모순적으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가 필연적으로 존립한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연설은 유감스럽게도, 그 자신이 'semi-fascism'이라고 비난한 그 전통 위에 서 있다. 그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극단주의'(extremism)라고 비난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파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래서 기자들이 연설 뒤에 백악관 대변인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극단주의가 뭘 말하는 것이냐?" 백악관 대변인인 카린 쟝-피에르가 대답했다. "미국인들 주류(majority)와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신)자유주의는 19세기 후반의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전혀 다른 철학적 정치적 전통에서 출발했다.
19세기의 자유주의는 '공리주의적 이성'에 기초했다. 개인들의 합리성이 최대로 발현되면 공동체의 최고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핵심이었다.
당시 이에 대항했던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분석을 통해 '사적 자본가의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전체로서의 자본주의의 파국'을 지시하며 공리적 이성의 존재를 부인했다(오스트로-헝가리 맑시즘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1차 대전과 대공황, 파시즘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19세기 자유주의는 현실에서 패배했다.
2차 대전 이후의 자유주의는 전혀 다른 기원을 갖는다. 이들은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전체주의'라는 이름으로 묶으면서 민주주의에 반한다고 주장했고, 이 '민주주의'는 '다원주의'(pluralism)를 기초로 한다고 주장했다.
즉, 사회는 '다양'하며, 다양해야 한다. 다양한 사회(세력)를 하나로 억지로 통일시키려는 것이 '전체주의'이며 여기에는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모두 해당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같은 자유주의의 변화는 미국 내에서 1940년대 말, 50년대 후반까지의 매카시즘을 거치면서 생겨난 것이다. 매카시즘은 '미국적인 것'을 가치로 설정하여 여기에 따르지 않는 다른 '다양한 사회적인 것들'을 모두 '반미국적인 것'으로 분류하고 억압했다. 그런 의미에서 매카시즘은 'semi-fascism'에 속한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 매카시즘이 몰락하면서 정치학과 사회학에서 이른바 '다원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이들은 민주주의란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법적인 표현으로는 '인권' 혹은 '소수자 보호'로 나타났다.
이것이 20세기 후반부터 전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의 정치적 이론적 기원이었다(다른 이론적 기원은 핵무기 대립으로 절대 절멸이라는 조건 하에서의 제한적 이성의 효율성-이른바 '합리적 선택이론').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는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결정적으로는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쟝-피에르의 해설은, 그리고 바이든의 연설은 이 선을 넘었다. 그들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의 기준을 '다수/소수'로 정하고 다수를 따르지 않는 소수를 '적'으로 규정했다.
왜냐하면 '국가의 영혼'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뿌리를 부정하고 '신전체주의자'(neo-totalitarian)로 전환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이 자유주의자/민주주의자라고 믿는 '착종'이 발생한다.
아마도 이것은 바이든 연설의 미학적 측면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학적 측면? 바이든 연설에서 그 내용만큼 놀라운 것은 그 무대 설정이었다.
붉은 색과 검은색 배경에 연설하는 바이든의 뒤편 양옆으로 해병대원들이 부동자세로 서있는 세팅은 거의 기괴하게 느껴진다. 오죽했으면 CNN에서 중계중에 '크롭'(화면 색상 변조)을 했다가 시청자들에게 들통날 정도였다.
이 무대장치와 조명을 두고 무엇을 연상시키느냐로 한동안 설왕설래하다가(히틀러를 연상시킨다에서 지옥문을 연상시킨다까지 다양한 해석들이 나왔다), 최종적으로는 지난 2016년 FOX TV에서 방영되었던 '엑소시스트'라는 시리즈의 스틸컷과 가장 비슷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선전문구도 바이든의 연설 요체와 유사하다. 아무튼 '종교적'이며, 음울하게 '그로테스크'하다. 동양적 경험 하에 있는 필자로서는 1980~9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던 홍콩 영화를 연상시킨다. 당시 홍콩 무협영화는 필터링이 남발되어 도대체 화면을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크롭이 심했다.
바이든의 무대와 가장 비슷하게 느껴지는 영화가 서극 감독의 오리지널 '촉산'과 '요수도시'다. 실은 '요수도시'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실패가 예감된 정체성의 전환과 선포되지 않았지만 어둠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전쟁이라고 규정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을 국가의 적이라고 비난했다. |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의 연설을 두고 '전쟁'이라고 규정하면서 바이든과 민주당을 'enemy of the state'라고 부른 것은 실은, 바이든이 환기한 역사와 동일한 연장선 위에 있다.
'국가의 적'(또는 공공의 적)은 로마 제국에서 '반역자'를 규정하는 표현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선언을 할 수 있는 권한이 '황제'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상원(원로원)에게 있었다는 점이다.
로마의 관행과 법률상 '국가의 적'은 굉장히 강력한 무기였다. 로마시민이면 누구나, 그리고 후대에는 노예에게도 그 권리가 주어졌는데 누구든지 국가의 적으로 선포된 사람(그리고 그 가족)을 죽일 권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 국가의 적을 죽인 사람에게는 그가 소유했던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국가의 적을 처단한 노예는 해방시켜주었다.
그래서 일단 상원에서 국가의 적으로 선포되면, 그는 언제 누구에게 죽을지 모르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 폐해가 너무 심해서 나중에는 국가의 적으로 규정된 인물이 자살을 하면, 그 재산은 가족에게 상속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뀔 정도였다(이것 때문에 로마 귀족층에서는 자살이 용인되기도 했다).
네로 황제도 이 국가의 적 때문에 죽었는데, 상원에서 자신을 국가의 적으로 선포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을 하려다 겁나서 포기했는데 시종이 죽여버렸다.
그런데 상원은 처음에는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했다가 곧 이를 철회했지만, 철회했다는 소식은 미처 네로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네로는 아우구스투스 초대 황제의 유일한 직계 혈족이었기 때문에 네로가 죽으면 혈통이 끊겨 로마 제국 전체가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네로 사후 로마는 황제위 계승을 둘러싸고 내전을 치뤄야만 했다).
바이든도 트럼프도 모두 로마제국의 '정치'를 끌어와 현재의 권력 투쟁에 동원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바이든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인민들에게 도끼를 넌지시 내보이며, 트럼프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인민들에게 국가의 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이렇게 되면 양자 사이에는 전쟁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둘 다, '국가'가 '인민'들보다 상위에 있다. 다만 어떻게 싸우느냐가 다를 뿐이다. 한편에서는 '국가기관'(fasce를 든 경호집단)을 동원하며(그런 점에서 제도적이며, 기득권적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누구나'를 동원한다(그런 점에서 포퓰리스트적이다). 이 내전 속에서 탄생할 다음 대통령은 칼리큘라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트럼프의 발언에는 '힘'이 없다. 국가의 적을 규정할 수 있는 권한은 황제(대통령)가 아니라, 원로원(상원)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상원을 장악하지 못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예상 성적표를 보면, 하원은 공화당이 과반수를 넘길 것이 확실시된다.
트럼프 정권 하에서 백악관 전략 보좌관이었던 스티브 배넌은 한 술 더 떠서 하원 선거 승리가 가능한 공화당 트럼프 지지 후보들의 숫자가 현재 219명에 달한다고 추정했다(미 하원 과반수는 218명). 반면 승리 가능한 반트럼프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 숫자는 9명에 불과하다(공화당이 최소한 230석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계산대로라면, 적어도 다음 하원은 트럼프 MAGA가 장악할 것이며, 바이든은 이들을 이미 semi-fascist라고 불렀기 때문에 민주당은 '파시스트들과의 내전'이라는 프레임 하에 정치를 해나갈 것이다.
문제는 상원에서는 현재까지는 현상 유지(현재 민주/공화당이 50:50이다)를 하거나 심지어는 민주당이 51석을 얻을 가능성까지도 있다는 점이다. 상원을 민주당이 장악하면 바이든 재선론이 힘을 얻고 민주당은 체면유지는 하게된다. 그러면 2024년 대선까지 미국 정치는 정말 불을 뿜을 것이다. 우리는 전쟁으로서의 정치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미국의 바이든이나 트럼프에 비하면, 프랑스의 엠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은 그나마 판단력을 아직은 유지하고 있다.
지난 주 보도된 기자회견에서 그는 '풍족한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는데, 최소한 사태 파악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다지 크게 보도되진 않았지만, 마크롱은 '보편성(universality)의 시대도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것도 맞는 얘기다.
그런데 '발언'과는 달리, 행동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지난 주 금요일 프랑스는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회사인 가즈프롬이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고 발표했다(이유는 말 안했다).
당연히 시장이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프랑스는 절반만 말했다. 가즈프롬에 따르면, 프랑스는 지난 7월분 천연가스 대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9월 1일자로 공급을 중단했다. 여기서부터가 정말 기괴하다.
7일 시장에서 프랑스의 전력 선물(2023년 8월물) 가격은 890/MWH까지 폭등했다. 작년 대비 5배 올랐고, 지난 2015~2019년의 5년 평균 가격의 30배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도 에너지 가격이 최대 현안이다. 그런데 천연가스 대금을 납부하지 않았다고?
둘 중의 하나다. 천연가스 수입회사(Engie)가 자금이 떨어져서 대금을 미납했거나, 혹은 의도적인 것이다.
전자(Engie의 자금난)는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정부로부터 긴급 자금 지원을 받으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이미 독일과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에서 에너지 기업에게 긴급 구제금융(bail-out)을 해주었다. 프랑스라고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대금을 미납했다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에너지 가격(특히 전력 가격)이 폭등하는데? 그렇다. 전력 가격이 폭등하면 다른 상품의 가격도 폭등하는데? 그렇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데? 그렇다.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경기가 극도로 위축되어 성장율도 하락하는데? 그렇다. 그런데 왜?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market'이 붕괴했기 때문이다.
7일자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유럽 가스테크 컨퍼런스에서 유럽의 거대 에너지 기업인 Equinor의 경영자인 Halge Haugane는 "'붕괴'(collapse)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지만, 에너지 거래에서 요구되는 담보 설정액이 상승하면서 중소 거래업자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담보 추가 요구'가 시장에서 '유동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1조5천억 유로의 자금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저도 영국 에너지 시장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며, 직접 거래(거래 플랫폼을 거치지 않은 당사자간 거래)도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담보' 문제는 이미 지난 주 초에도 서구 경제전문지에서 나왔던 얘기다. 에너지 거래에서 추가 담보 설정 요구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아예 거래를 포기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규모가 1조5천억 유로라는 것은 좀 놀랍다. 지난 2008년 미국 부동산 버블 붕괴시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규모가 2조 달러를 약간 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태가 진행되는 방식은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때와 유사하다. 사실은 완전히 동일하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시장에 '충격'이 가해진다. 그러면 거래 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 때문에 기존 부채 혹은 신규 부채에 대한 담보 설정 요구액이 높아진다.
그러면 기업들은 담보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그 과정에서 돈이 될만한 자산들을 급매하게 된다. 그러면 이 급매(fire sale)로 인해 다른 분야의 금융 유동성마저 얼어붙고 점차 시장 전체로 확산(contagion)된다. 결국 가장 취약한 기업이 추가 담보 제공을 하지 못해 '디폴트'(부도)하면 시장 전체로 위험이 확산되어 '유동성 함정'에 빠진다.
그러면 투자자들은 '담보' 가치를 믿지 못하게 되고 현금을 선호하여 계좌에서 돈을 인출한다. 이것이 2008년 나타났던 대규모 인출사태(bank run)이며, 그 해 9월 리먼브라더스 도산 직후에는 미국 머니마켓까지 사태가 번져 불과 반나절 만에 6천억 달러가 인출되었고 결국 미 재무부는 인출을 금지했다(capital control).
2008년이 서브프라임 부동산이었다면, 이번에는 유럽의 에너지 마켓인 것이다(2014~16년 사이에 이른바 OPEC의 원유 할인 전쟁 때 미국 프랙킹 업체들도 동일한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그리고 매우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지난 2008년 원유가 급등의 원인이기도 했다.
시장에 유동성이 사라지면 중소거래자들은 담보 설정 요구를 감당하지 못해 시장에서 퇴출된다. 그러면 시장에서 거래자 숫자가 감소하면서 동시에 유동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른바 '버퍼'(완충) 작용이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시장은 극단적인 변동성에 휘둘리게 되는데, 이 때 생산자들에게 '담보' 기능을 하는 일부 원자재들의 가격은 극단적으로 높아진다. 왜냐하면 트레이더들이 기존 담보(채권)을 구하지 못하거나 혹은 채권 가치가 떨어지자 현물(원자재)를 담보로 설정하기 위해 축장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2008년 8월, 경기 침체 하에서도 원유가가 배럴당 147달러까지 급등한 이유였으며, 신흥시장의 달러 부족 현상에도 불구하고 달러화 환율이 하락했던 이유이기도 했다(담보 설정을 위한 미 국채 축장과 이를 바탕으로 달러화 조달).
다만 유로화는 보유통화(reserve currency)이기는 하지만, 달러화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지역통화(regional currency)이기 때문에, 유로화 (채권) 축장 현상은 벌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유로화 가치는 계속 하락하며(유로화 약세), 유로화 표시 채권 가격도 동시에 하락하고, 따라서 기존 담보 가치가 하락하여 추가 담보 설정 요구가 나타난다.
그 다음 단계는? 리먼브라더스이다. 중앙은행이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플레이션을 고의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장에 충격을 주어 디플레이션을 유도하는 것이다. 연준은 지난 2008년 후자를 택했다.
2008년 초의 FOMC 녹취록을 보면, 전자(인플레이션 유도)도 고려는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해당 통화의 가치를 지나치게 폭락시킬 위험이 있다. 그래서 일부 기업의 디폴트 충격을 통해 시장 기능을 아예 마비시키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구제금융에 나서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연준은 글로벌 중앙은행으로서의 책임을 다한다는 명분으로 디플레이션 충격 조치 이후 전세계 금융기관을 상대로(당시 100개 중앙은행, 민간은행, 펀드를 대상으로 했다) 무제한적인 달러 공급 조치를 취했다. 기축통화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기축 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유로존의 상황은 좀 다르다. 금융 위기가 발생하는 경로와 메커니즘은 현재까지는 완전히 동일하다.
그런데 중앙은행(ECB)이 TPI(통화정책 전달 경로 보호장치; transmission protection initiative. 구제금융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를 시행하겠다고 발표는 했지만, 그 기준이나 시기는 불명확하다. 동시에 만일 디플레이션 충격 조치(예컨대 리먼브라더스 사태) 없이 이 같은 정책을 시행한다면 오히려 인플레이션에 불을 지르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전기 선물 요금이 이미 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까지도 의도한 것인가? 유럽이 인플레이션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무엇인가?
에너지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은 단지 생산자의 원가가 상승하고 소비자의 부담이 증가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에너지 소비가 큰 기업들은 아예 생산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미 유럽의 철강, 제련, 제지, 제빵 업체들은 생산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했다.
유럽 가스테크 컨퍼런스에서 sparebank의 애널리스트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이미 유럽의 에너지 수요는 지난해 대비 연률 23% 감소했다. 이 수치는 매우 놀랍다. EU 집행위원회가 목표로 하고 있는 에너지 절약 수준이 15%인데, 이미 23% 감소했다고?
그렇다면 이미 유럽은 극심한 경기 침체에 돌입해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23%나 감소했어도 가격은 여전히 상승한다고? 가능하다. 시장에 유동성이 사라지면 순간적으로는 그 몇 배라도 상승할 수 있다(예컨대 마진콜). 수요-공급과 '가격'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움직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유럽의 전력 요금은 marginal trader에 의해 좌우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평균 가격이 아니라, 최종 가격이 전체 가격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에너지의 '최종 가격'은 유럽 전체 산업의 '상품 가격'을 결정한다.
크레딧스위스 은행의 이코노미스트인 졸탄 포자르는 이를 'supply leverage'라고 부르는데, 그는 200억 유로의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2조 유로의 유럽 상품 가격을 결정한다고 지적한다. 공급 사이드에서는 레버리지가 100배인 것이다.
유럽의 기업들이 에너지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으면 철강, 구리, 니켈, 아연, 알미늄 등 금속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며, 다시 이들 금속을 원료로 사용하는 다른 상품들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에너지 소비가 많은 제지 산업의 경우에도 연관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기업들의 상품 생산을 줄이기 때문에 생산이 감소한다.
만일 이런 조건 하에서 일반 소비자의 수요가 줄지 않는다면, 상품 가격(특히 필수재 가격)은 폭등한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인플레이션은 다시 '투기 심리'를 자극하여 원자재 가격을 더 높인다. 다시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어느 생산자가 영구적으로 시장을 떠나게 된다면, 그 때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발전한다(역사적으로 대부분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수요나 통화정책 측면이 아니라, 생산의 붕괴에서 비롯되었다).
유럽은 현재 약 3200억 유로에 달하는 소비자 지원 재정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막 총리에 선출된 영국의 리즈 트러스는 1700억 파운드에 달하는 재정 지원책을 발표했다.
만일 소비가 감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만 감소한다면, 유럽은 극심한 인플레이션 악순환에 빠질 것이며 이는 ECB의 금융 정책을 제약할 것이다. 실은 지금의 처방과는 정반대로, 유럽은 재정은 긴축하고 대러시아 제재는 풀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 보자.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이 전력 생산의 중추를 이룬다. 전체의 50%를 넘는다. 문제는 현재 프랑스 원전 57기 가운데 29기가 '정비 보수' 또는 '고로 부식' 등의 이유로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원전 기술이 어떤지는 몰라도 매우 기괴한 상태다.
프랑스의 천연가스 수입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10% 내외), 어쨌든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중단은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는 천연가스 수입 중단 조치를 내렸을까?(이번 건은 전적으로 프랑스에게 귀책 사유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들은 인플레이션을 원하는 것인가? 도대체 프랑스에서 인플레이션이 어떤 이점이 있는가? 혹은 기존의 완만한 디플레이션 체제(제로/마이너스 금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균열이 발생했던 것인가? 유럽의 은행들은 여기서 무사할 수 있는가?
도이치뱅크의 주가 흐름을 보면, 아직은 지난 2020년 사상 최저가(4.5유로)보다는 높은 8.7유로 정도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하락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폭락도 아니며, 그렇다고 조만간 반등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더 높기는 하다). 아직은 최종적인 판단은 유보할 수밖에 없다.
유럽 금융시장의 '광산의 카나리아'격인 유로존 정크본드 금리는 7.08%를 나타내고 있다. 2020년 3월의 8.1%보다는 아직은 낮다. 그리고 닷컴 버블 붕괴 직후인 2001년 9월의 20%,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1월의 25%보다도 한참 낮다.
유로존 부채 위기 때인 2011년 11월의 11.6%에도 아직은 못미치고 있다. 만일 유로존 졍크본드 금리가 11%대를 넘는다면, 그 때는 유로존의 연쇄 부도로 나타나는 대규모 금융 위기가 발생할 것이다.
오는 12월5일에는 지난 6월 G7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가 도입된다. 본격 시행은 내년 2월5일이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이 이 조치가 원유가만 상승시키고 실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역시 인플레이션만 부추길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정부들이 취하고 있는 정책들은 의도했든 아니든, 모두 인플레이션을 가리키고 있으며, 조만간 방향을 바꿀 가능성도 없다(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도 지속될 것이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방향은 가늠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2008년의 재연을 피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공순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