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영 기자 doyoung@businesspost.co.kr2022-08-31 11: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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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비에트 연방(소련) 대통령이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30일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 임상병원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오랜 투병 끝에 이날 저녁 사망했다”고 밝혔다.
▲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왼쪽)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7년 미국 워싱턴에서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소련의 첫 대통령이자 전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전제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과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듬해 동서독 통일을 용인해 냉전 해체의 주역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31년 3월 러시아 남부 스타브로폴 지역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직접 농사일을 하는 등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 19세에 모스크바국립대 법대에 입학하고 21세 때 공산당에 입당했다. 대학에 재학하던 1953년 라이사 티타렌코와 결혼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지역 공산당 조직에서 일하던 때 스타브로폴을 찾은 공산당 지도부의 눈에 띄어 1971년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격했다. 1980년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국원 자리까지 올랐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54세 때인 1985년 7번째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됨으로써 권력의 정상을 차지했다.
그는 집권 8개월 만인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화해의 악수를 했고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두 나라 사이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초석을 놨다.
이후 미국과 전략무기감축협정을 체결하고 동유럽 주둔 소련군 50만 명을 감축하는 등 군축 조치를 시행했다. 1989년 몰타 미·소 정상회담에서 냉전 종식을 공식 선언했고 통일 독일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잔류하는 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1990년에는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기도 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냉전 해체와 독일 통일 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소련이 악화하는 경제난 속에 군부의 쿠데타 시도 등 정국 혼란을 겪고 1991년 12월 해체되면서 권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권력에서 물러난 뒤 사회·정치·경제 연구소인 ‘고르바초프 재단’을 설립해 학술과 강연 활동에 전념해왔다. 1996년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에 맞서 러시아 대선에 출마해 재기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0.5%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강대국 소련의 패망을 몰고 온 장본인이라는 국내의 평가가 반영된 결과였다.
그는 올해 초 모스크바 외곽의 전원주택인 ‘다차’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임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