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및 수도권 27곳의 공공재개발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공공재개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주민의견 묵살하는 공공재개발 절대반대! 절대반대!”
공공재개발을 반대하는 200여 명의 시위자들은 30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공공재개발사업으로 재산권이 침해당했다며 총력저지를 다짐했다.
27개 비대위는 이날 우중집회에서 “공공재개발 반대를 주장하는 27개 비대위는 과반수 다수결로 사유재산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공공재개발 정책에 끝까지 싸우겠다”며 “공공재개발이 무산될 때까지 국토부, 대통령실, 서울시청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 등 모든 절차를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공공재개발은 사업성이 부족하거나 오랫동안 정체된 재개발 사업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사업시행자로 참여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서울 지역에서 추진되는 공공재개발 사업에 대해 이를 반대하는 22곳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꾸려졌고 경기·인천 지역에서도 5곳의 비대위가 공공재개발사업 반대에 나섰다.
이날 시위는 이들 27곳의 비대위의 실력행사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들은 이날 집회 뒤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진정서와 함께 공개질의서를 전달했다.
공공재개발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고 용적률도 법적 상한의 120%를 받는다. 이를테면 법적 상한 용적률이 500%인 준주거지역은 600%로 상향된다. 제2종 주거지역은 250%에서 300%가 된다. 하지만 늘어난 용적률의 절반을 공공기여해야 한다.
이들 비대위가 공공재개발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산권 침해이다.
공공재개발사업은 대부분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도촉법)이 적용된다. '토지 등 소유자'의 10% 이상 동의로 사업을 제안할 수 있고 주민 동의율 요건도 50% 수준이다. 토지 등 소유자는 정비구역 내의 땅이나 건물 소유자 또는 지상권자를 일컫는 법률 용어다.
반면 재개발·재건축사업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라 '토지 등 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및 '2분의 1 이상 토지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조합설립 등 사업이 추진될 수 있다.
더욱이 공공재개발 쪽은 도촉법 적용에 따라 50% 이상의 주민만 찬성하면 토지면적과 상관이 없이 사업이 추진될 수 있다. 이에 토지 소유면적은 크나 인원수는 적은 상가 소유자들 위주로 공공재개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 비대위는 이와 관련해 “과반수 동의만으로 재개발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수용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라며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특별법을 적용함에 있어 엄격한 기준과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이 시작되면 당장 생계에 위협이 되는 점도 큰 이유를 차지한다. 건물 소유주는 사업 기간 월세 수입이 끊기고 상가에서 영업하는 자영업자들도 생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공공재개발 1호로 꼽히는 서울 영등포구 흑석2구역에 이런 문제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흑석2구역은 주민 300명 가운데 상가 소유자 140명이 토지의 8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최조홍 흑석2구역 비대위원장은 이날 “서울시는 사유지 9400평 가운데 1300평을 소유한 토지 소유자들이 다수결의 횡포를 부리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느냐”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이어 “흑석2구역 주민 300여 명 가운데 140여 명의 상가 및 주택소유자들의 사유재산권과 그 상가세입자 400여 명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며 "이를 임대아파트 500세대 공급을 명분으로 밀어붙여도 되느냐”고 덧붙였다.
이미 흑석2구역 비대위는 지난 1월 흑석2구역 공공재개발사업 집행정치 가처분 신청과 사업시행자 지정 인가처분 취소 소송을 법원에 냈다.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지만 소송은 이어가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월16일 “신청인들의 주장과 제출된 자료만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흑석2구역뿐 아니라 강북5구역 비대위도 사업시행자 지정 취소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비대위 측은 소송 이외에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 등 강구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공공재개발사업에 참여하는 11개 구역에서 정비구역 입안 및 시행자 지정에 필요한 동의율을 확보했으며 사업자 선정 절차 등 사업이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실제 흑석2구역은 시공사 선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용두1구역 6지구는 지난 27일 현대엔지니어링과 HDC현대산업개발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법적으로 무리가 없고 법정 동의율도 넘겨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현실적으로 비대위의 주장이 반영되기 어렵다는 관측에 무게가 쏠린다. 하지만 서울시도 마냥 비대위 측 주장을 외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스피드 주택공급’을 강조하며 신속통합기획, 공공재개발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 비대위 쪽의 시위와 소송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비대위 쪽이 법적 절차를 개시하면 신속한 사업 진행이 어려워진다.
서울시는 공공재개발 후보지에 '정비사업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소통을 이어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한 서울시가 지난 29일 신속통합기획 재개발 2차 공모를 진행하기로 하면서 정량평가 항목에 ‘찬성동의율’을 추가해 사업실현 가능성도 평가하기로 했다. 주민들의 여론을 파악해 사업이 순탄히 진행될 수 있는지를 따져 점수에 넣겠다는 것이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공공재개발은 정부가 토지를 수용해 개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사유재산권 침해 등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행정적 지원에 초점을 맞춰 갈등 조정이 선행된다면 새 정부에서 추구하는 민간공급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