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에서 기후위기에 따른 경제적 위기를 일컫는 '그린스완'이 출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후위기는 인플레이션, 에너지위기 등과 맞물려 유럽 각국의 정치 리더십까지 흔들고 있다. 사진은 스페인 갈리시아 오렌세 지역에서 17일(현지시각) 발생한 산불의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에서 ‘그린스완’이 출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린스완은 국제결제은행(BIS)가 2020년 1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경제 또는 금융의 위기 가능성’을 뜻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충격파는 유럽에서 인플레이션, 에너지 위기와 맞물리면서 경제를 넘어 각국의 정치 지형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5일(현지시각)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러시아 국영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은 27일부터 독일과 이어진 가스관 노드스트림1의 공급량을 설비용량의 5분의 1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가스프롬은 7월 들어 11일부터 열흘 동안 유럽에 대한 가스공급을 잠시 중단했다가 20일부터 30% 수준으로 공급을 시작했으나 1주일 만에 20% 수준으로 낮춘다고 압박 강도를 높인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유럽 국가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에너지자원을 무기로 삼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은 이미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위기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전반적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개문 냉방, 심야 조명광고 등을 금지하는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속도 제한이 없는 도로인 ‘아우토반’에서의 최고속도를 시속 130km으로 제한하자는 주장까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유럽 각국의 노력은 올해 여름 찾아온 기록적 수준의 폭염과 가뭄에 좀처럼 효과를 보기 어려울 듯 보인다. 에너지 수요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폭염으로 인해 산업 생산력 전반이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기온 상승으로 원전의 가동률이 떨어지고 독일에서는 가뭄에 따른 급격한 라인강 수위 하락으로 석탄 등 에너지원의 선박 운송이 차질을 빚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고온이 에너지 발전 및 산업 전영역에 직접적 피해를 주면서 유럽의 인플레이션을 더욱 자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루크레지아 레이클린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뉴욕타임즈 인터뷰에서 “폭염이 이미 취약해진 유럽 경제를 한계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경제에 ‘그린스완’ 위기에 빠질 위험이 커진 셈이다. 그린스완은 ‘블랙스완’에서 파생된 표현이다.
검은 백조의 출현으로 '백조는 희다'는 상식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이에 블랙스완은 이전까지 발생하지 않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위기를 뜻하게 됐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행한 표현이다.
그린스완이 경제에 타격을 주는 방식은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생산 타격에 그치지 않는다. 식료품 가격의 상승, 농업 관련 금융의 차질, 홍수나 산불 혹은 미세먼지 등 재해에 따른 보험사의 손해율상승 등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악영향을 끼친다.
최근 유럽에서는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이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특히 포르투갈은 전 국토의 90% 이상이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은 물론 크로아티아, 헝가리 등 동유럽까지 폭염에 따른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는 전선 늘어짐 등으로 도시 내 화재도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ECB)이 올해 7월 인플레이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2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사회의 불안과 인플레이션 등 경제 위기는 유럽 각국의 정치 리더십까지 흔들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14일 사임을 선언했고 차기 총리로는 극우성향 인사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l) 당수가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에 취임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몰락한 베니토 무솔리니 이후 최초의 극우성향 총리의 등장이 된다.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4월에 20년 만에 대통령 연임에 성공했음에도 6월 총선에서 의회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독일에서도 올라프 슐츠 총리가 속한 사회민주딩(SPD)의 지지율이 3위까지 떨어지는 등 유럽 주요국가 집권당은 대부분 지지율 하락에 허덕이고 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