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생산공장.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이 중국에 핵심 반도체장비 반입을 금지하는 등 강도 높은 규제를 추진하자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에서도 무역갈등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미중 무역분쟁은 반도체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만큼 중국에 반도체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과 중국에서 모두 강한 압박을 받는 처지에 놓일 것으로 전망된다.
7일 중국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ASML 반도체장비 수출 규제 시도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를 ‘기술 테러리즘’이라고 규정했다.
미국 정부가 네덜란드 ASML을 향해 중국에 반도체 노광장비 수출을 완전히 중단하라는 압박을 내놓았다는 블룸버그의 보도가 나온 데 대응한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일본 반도체 장비업체에도 중국 반도체기업에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중국 반도체산업을 향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에서도 반도체 규제를 계기로 중국과 본격적으로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중국 기업을 겨냥한 제재조치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유력하다.
네덜란드와 일본 등 반도체장비 공급업체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SMIC와 화훙반도체 등 중국 반도체기업들이 기술 개발과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정부의 공세는 중국업체뿐 아니라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미국 마이크론이 중국 시안 반도체공장에서 인력을 대거 구조조정한 점도 미국과 중국 무역분쟁 및 반도체산업 규제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기업도 각각 중국 시안과 우시에서 낸드플래시와 D램 등 메모리반도체,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운영하는 만큼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중 무역분쟁이 이번에는 반도체산업을 정조준해 이뤄지고 있는 만큼 한국 반도체기업들이 현재 갈등 국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에 놓이고 있는 셈이다.
한국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뒤 미국과 외교 및 안보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중국과 더욱 거리를 두는 외교정책을 앞세우고 있다.
자연히 한국 반도체기업들의 중국 생산공장 투자 및 운영과 관련한 문제가 앞으로 한미동맹에서 중요한 의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생산기지에서 중국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다 중국 정부 지원으로 원가경쟁력 및 현지 고객사 확보에 도움을 받고 있어 중국에 등을 돌리기 쉽지 않다.
중국 정부도 반도체 자급체제 및 공급망 구축 노력에 속도를 내면서 한국 반도체기업의 역할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산업을 향한 압박을 더할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두 국가의 이해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 외교정책과 미국의 영향력 등 현실적 측면을 고려하면 한국 반도체기업들이 점차 중국에 생산 의존을 낮추는 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반도체공장에서 최신 반도체장비를 활용하지 못 하게 된다면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의 경쟁력도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동안 중국 반도체공장에 들인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고려하면 이는 결국 큰 손실을 감수해야만 하는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에서 다른 국가의 반도체 장비기업을 대상으로 지금과 같은 압박을 내놓는 일이 원하는 목표대로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ASML과 같은 장비업체가 네덜란드 경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에 해당하는 만큼 바이든 정부가 강제적으로 거래 중단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반도체산업 규제를 현실화하려면 반도체 공급망에 포함된 주요 국가들에 강력한 로비를 벌여야 하는데 이는 들이는 비용과 노력 대비 효율이 낮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반도체 및 장비 관련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반도체기업 인력을 빼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점도 중국의 기술 발전을 근본적으로 막기 어려운 이유로 제시됐다.
결국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산업을 규제해 기술력을 높이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목표는 현실성이 크지 않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 의지가 꺾인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사업도 미국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장비 중국 수출 규제는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전략”이라며 “다른 국가 정부와 기업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