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CNBC 등 해외매체에 따르면 EU(유럽연합)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450억 유로(약 61조 원) 규모를 투자하는 ‘EU 반도체법’을 제안하면서 삼성전자가 TSMC, 인텔 등과 유럽에서 설비투자 경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CNBC는 “유럽연합은 첨단 반도체칩을 제조하기 위해 인텔과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가 공장을 건설하도록 설득할 것”이라며 “특히 TSMC와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시장의 70%가량을 장악하고 있는 아시아기업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은 현재 9%의 세계 반도체시장 점유율을 2030년 2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최신 반도체칩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 없는 만큼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시장 1위인 TSMC나 2위인 삼성전자를 유치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현재 삼성전자와 TSMC는 유럽에 반도체공장을 두고 있지 않다.
인텔은 지난해 아일랜드에 있는 컴퓨터용 프로세서 공장을 확충하고 향후 10년 동안 800억 유로(약 110조3천억 원)를 투자해 유럽에 차량용 반도체공장 2곳을 새로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는 반도체 시설을 유치하려는 유럽연합과 파운드리시장에서 경쟁력을 다시 강화하려는 인텔의 뜻이 맞아 떨어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연합은 인텔에 이어 TSMC를 비롯한 대만 반도체기업 유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TSMC를 비롯한 대만 반도체기업을 협력파트너로 직접 언급했다. 이에 조앤 오우 대만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성명서를 통해 “반도체산업에서 대만과 유럽연합은 협력할 여지가 매우 크며 협력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을 재건하고 코로나19 이후 시대의 경제 회복력을 강화할 수 있다”며 화답했다.
삼성전자도 인텔과 TSMC가 유럽에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사업은 설비투자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데 경쟁사만 유럽연합 정부의 자금 지원 등을 받게 된다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 진다. 또 자국에서 생산된 반도체에 더 혜택을 주는 기조가 강해지고 있는 만큼 한국에서 생산된 반도체는 향후 유럽 등에 수출하는 데 불리할 수도 있다.
또 유럽은 시스템반도체의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독점공급하는 ASML뿐 아니라 많은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고객사가 위치해 있어 파운드리공장을 건설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시너지도 큰 것으로 여겨진다.
유럽의 대표적 팹리스기업으로는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이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파운드리부문에서 100여 개의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SMC(고객사 500여 개)와 격차를 좁히는 데 유럽에 공장을 세우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설비투자를 위한 현금성 자산도 충분하다.
▲ 삼성전자(왼쪽)와 대만 TSMC의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삼성전자는 2021년 말 기준으로 순현금 105조8100억 원을 포함해 현금성자산 124조2067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기업 가운데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다. 애플은 1955억 달러(약 234조4045억 원), 알파벳(구글)은 1355억 달러(약 162조4645억 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엔비디아가 각국 정부 경쟁당국의 반대로 ARM 인수에 실패한 것을 고려하면 반도체산업에서 대형 인수합병은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경계현 사장은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사업 강화를 위한 설비투자 확대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현재 파운드리공장을 한국과 미국에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텍사스주에 20조 원을 투자해 신규 파운드리공장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경쟁사인 TSMC가 앞으로 10년 동안 120조 원을 파운드리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