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총리 후보자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인사청문회 전 사퇴했다. |
4전 1승3패. 승률 25%.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총리 지명 성공률이다. 프로야구 꼴찌 구단인 한화 이글스의 승률보다 낮다.
박 대통령이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문창극 후보자가 24일 오전 자진사퇴를 했다. 문 후보자는 “지금 시점에서 내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문 후보자의 사퇴에 대해 “국민들의 판단을 받기 위한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는 자진사퇴했지만 사실상 지명철회나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문 후보자의 거취표명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문 후보자 사퇴에 앞서 안대희 전 대법관도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낙마했다. 총리후보가 연달아 낙마한 것은 2002년 김대중 정부에서 장상, 장대환 총리후보가 낙마한 이후 12년만이다.
역대 총리후보 가운데 낙마한 사람은 총 12명이다.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여섯 번의 낙마가 있었다. 이 중 세 번이 박근혜 정부에서 나왔다. 모두 청문회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자진사퇴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국가개조의 강력한 의지를 표현했지만 당장 국정을 이끌 책임자인 총리 선임부터 좌초하고 있다. 정홍원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이후 두 달째 차기총리를 정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하고 내각개편을 통한 국정쇄신 의지도 빛이 바래고 있다.
최악의 인사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도대체 왜 박 대통령은 인사실패를 거듭하는 것일까? 반복되는 실패에도 박 대통령의 인사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박 대통령의 인사가 플러스 인사가 아닌 마이너스 인사이기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 인사에 매번 발목 잡히는 박근혜
문창극 총리 후보자 지명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50% 이상을 유지하던 지지율이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이 불거져 나온 11일 이후 박 대통령 지지율은 50%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리얼미터 조사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1일 51.1%였지만 12일 49.4%로 50% 선이 깨졌고 이후 18일 41.4%까지 가파르게 떨어졌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6월 셋째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43%였다.
박 대통령의 최저 지지율에 가까운 수치다. 박 대통령의 최저 지지율 역시 집권 초기 인사파문 때였다. 박 대통령이 등용한 인사들이 각종 논란에 휩싸여 물러날 때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요동쳤다. 박 대통령에게 "인사가 망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는 첫 출범부터 인사실패를 겪었다.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가 부동산 투기 의혹과 두 아들의 병역문제로 논란이 일었다. 김 후보는 논란에 부담을 느끼고 지명 닷새 만에 자진 사퇴했다.
역대 정부에서 첫 총리후보가 사퇴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인 데다가 김 후보가 사상 최단기인 닷새 만에 사퇴하면서 박 대통령의 인사에 비판이 쏟아졌다. ‘수첩인사’, ‘밀실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인사실패로 인해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떨어졌다. 김용준 후보를 비롯해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 등이 사퇴하면서 박 대통령 지지율은 41%까지 떨어졌다. 박 대통령 대선 득표율이 51.6%였던 데 비해 정권 초 지지율이 10% 넘게 곤두박질 친 것이다.
지난해 5월에도 인사실패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강타했다. 박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한미정상회담을 하는 등 외교적 성과를 바탕으로 지지율 60%를 넘보고 있었다. 그러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주미 한국대사관 인턴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박 대통령 지지율은 50%대 초반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의 수첩인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자진 사퇴의 뜻을 밝혔다.
◆ 박근혜는 왜 인사에서 실패하나
박 대통령의 인사에서 거듭 나오는 말은 ‘수첩인사’와 ‘밀실인사’다. 인사추천과 검증과정이 불투명하고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에만 의존해 인사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외부와 소통이 부족해 ‘불통인사’라는 말이 야권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공공연히 나온다.
또 ‘수첩’ 내에서만 발탁하는 좁은 인재풀 역시 문제로 꼽힌다. 박 대통령은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 본인과 최측근이 잘 아는 주변인들로만 인사를 하려고 하니 인사가 막히고 늘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7인회 등 올드보이들의 영향력만 커진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지난달 박 대통령의 인사 실패를 비판하며 “박 대통령은 인사수첩을 버려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안 대표는 박 대통령 인사실패의 원인을 “널리 인재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내 진영 사람 중에서, 내가 만나 본 사람 중에서, 내 맘에 드는 사람만 기용하면 쓸 만한 인재가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인사에 실패하는 원인을 인사방식 자체에 두는 의견도 있다. 박 대통령의 인사가 ‘플러스 인사’가 아닌 ‘마이너스 인사’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인사할 때 ‘안되는 이유’를 찾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찾기보다 이것저것 안되는 조건들을 통해 걸러내고 남은 사람을 선발하다 보니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번 총리 지명에서도 박 대통령이 안대희 후보 낙마 후 법조계 인사를 배제하고 PK 출신도 제외하고 이명박 정부 사람들도 빼고 야당 인사들은 안되고 하는 식으로 추려나가다 보니 쓸만한 인재가 없었단 말이 나온다. 인구에 회자된 차기 대권 주자급 정치인들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부담스러워서 후보군에서 제외했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감짝인사가 나온다.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깜짝발탁은 곧 수첩인사라는 비난으로 연결됐다.
◆ 벼랑 끝 마지막 카드는 누구인가
두 번이나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이상 박 대통령에게 남은 기회는 한 번뿐이다. 이번에 또 다시 인사에 실패한다면 새 내각을 꾸리지 못해 국정공백이 생기는 것은 물론 7·30 재보궐 선거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 어떻게든 박 대통령으로서도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미 박 대통령은 총리 한 명 제대로 쓰지 못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있다.
▲ 김문수 경기도지사 |
박 대통령으로서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확실한 카드가 필요하다. 인사청문회 통과는 물론이고 정국을 장악하고 박 대통령이 내세운 국가개조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확실한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총리 인선 과정에서 꾸준히 거론됐던 정치인 총리가 더욱 부각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여당 중진 중에서 정무능력과 추진력을 두루 갖춘 인물들이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힌다. 이들은 언론에 자주 노출되며 국민들에게도 익숙하기 때문에 검증을 통과하기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근접한 인물은 김문수 경기도지사다. 당권주자인 김무성 의원이 청와대에 김문수 지사를 총리 후보로 추천했다고 말하는 등 김문수 지사는 안팎에서 총리후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경력과 능력 면에서 부족할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차기 대권주자인 김 지사를 총리로 발탁하기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자칫 박 대통령과 김 지사가 각을 세우는 일이 생기면 박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와 강창희 전 국회의장도 후보군으로 떠오른다. 두 사람은 오랜 정치경력으로 경험이 풍부하고 박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친박 주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황 전 대표는 청와대가 총리 후보로 꾸준히 검토해 왔고 강 전 의장은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총리 적임자로 꼽기도 했다.
이밖에도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조무제 전 대법관 등도 물망에 오른다. 다만 일부 인사들은 최근 총리 지명을 둘러싼 사태와 검증과정에 부담을 느껴 인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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