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드릴십(심해용 원유 시추선) 문제 해결에 희망을 품게 됐다.
국제유가가 연일 높아지며 해양플랜트시장이 다시 살아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삼성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는 드릴십 매각 가능성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25일 증권업계와 에너지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올해 들어 본격화된 국제유가 상승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 등 해외언론 보도를 보면 석유수출기구와 기타 산유국 모임(OPEC+)이 7월1일 장관급 회의에서 8월부터 원유 증산을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원유 증산에 따른 공급증가보다 경기회복을 통한 수요증가가 더 큰 폭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예상이 더 많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까지 유가는 우상향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세계 원유수요 증가세가 경제활동 정상화 강도에 따라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23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최한 국제유가전문협의회에서 "하반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선을 웃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24일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기준 배럴당 73.3달러로 1년 전 38.01달러와 비교해 93%가량 올랐다.
삼성중공업은 국제유가 등락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가 높을수록 해양플랜트 채산성이 높아져 발주가 늘어나면 재고자산으로 보유한 드릴십 5기를 매각 또는 용선 등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은 2013년 미국 퍼시픽드릴링(PDC)에서 수주한 1기, 노르웨이 시드릴(Seadrill)에서 수주한 2기, 그리스 오션리그(현 트랜스오션)에서 수주한 2기 등 모두 5기의 드릴십을 재고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재고 드릴십 5기는 계약가격 기준 29억9천만 달러로 삼성중공업이 받은 선수금은 10억 1천만 달러에 그쳤다.
삼성중공업은 재고 드릴십 5기의 합산 장부가치를 12억8천만 달러로 잡고 있어 이를 모두 매각하면 1조4천억 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중공업이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영업손실 1조541억 원을 거둔 것과 비교하면 작지 않은 규모다.
조선업계에서는 국제유가 50~60달러가 해양플랜트 개발의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어 현재 유가가 상당기간 유지된다면 삼성중공업이 드릴십 처리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고 본다.
실제로 올해 국제유가 상승과 함께 국내 조선사들이 해양플랜트 수주 성과를 냈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은 5월과 6월 각각 8500억 원, 1조1천억 원 규모의 해양플랜트(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 FPSO) 건조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동안 삼성중공업은 꾸준히 재고 드릴십 5기 처리를 추진해왔다.
지광훈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국제유가의 점진적 회복추세가 유지되는 가운데 삼성중공업은 재고 드릴십과 관련해 장부가를 넘어서는 예상가액 수준에서 매각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여러 매수처와 재고 드릴십 매각 또는 용선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며 "재고 드릴십 문제를 최대한 빠르게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무상감자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시동을 걸고 있다. 올해 조선업황 호조에 신규수주도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 악성 재고로 남아있는 드릴십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경영정상화에 가까워 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중공업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영업손실을 거뒀다. 6년 동안 영업손실은 모두 3조9천억 원이 넘는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드릴십 재고자산 평가손실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3년을 놓고 보면 삼성중공업은 2019년 영업손실 6166억 원 가운데 3400억 원, 2020년 영업손실 1조541억 원 가운데 4500억 원, 2021년 1분기 영업손실 5068억 원 가운데 2100억 원이 드릴십 재고자산 평가손실이었다.
삼성중공업은 22일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무상감자 안건을 승인하며 재무구조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이번 주식 감자비율은 80%로 액면가 5천 원인 보통주와 우선주를 1천 원으로 감액한다.
삼성중공업은 무상감자를 통해 자본금 2조5천억 원가량을 자본잉여금으로 전환해 자본잠식 우려를 해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은 6년 동안 이어진 적자가 자본잠식 위기로 이어졌다. 자본잠식은 기업의 적자가 누적돼 재무제표상 자본총계가 자본금보다 적은 상태를 말한다.
올해 1분기 연결기준 삼성중공업 자본총계는 3조3364억 원으로 자본금 3조1506억 원과 1800억 원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무상감자 뒤 삼성중공업 자본금은 3조1506억 원에서 6301억 원으로 줄어든다. 무상감자 뒤 약 1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추진한다.
이에 더해 삼성중공업은 25일까지 올해 수주목표 91억 달러의 65%인 59억 달러를 수주하며 중장기적 실적개선 기대를 높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