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영 엔지켐생명과학 대표이사 회장은 신약 후보물질의 기술이전에서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외부에서 자금을 수혈하기 바빴는데 롯데그룹의 내민 손이 반가울 것으로 보인다.
▲ 손기영 엔지켐생명과학 대표이사.
23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롯데지주가 엔지켐생명과학에 지분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엔지켐생명과학을 향한 투자자의 기대감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롯데지주는 이날 공시를 내고 바이오사업에 대해 검토 중에 있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지만 투자가 확정되면 적어도 1500억 원가량의 자금이 엔지켐생명과학에 투입될 것으로 제약바이오업계는 바라본다.
엔지켐생명과학이 최근 몇 년 동안 상장과 유상증자 등으로 확보한 자금과 맞먹는 규모의 돈이 단번에 들어오는 셈이다.
손 회장은 신약 연구개발 등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2018년 2월 엔지켐생명과학을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해 상장하면서 431억 원을 마련했고 그 뒤로 기관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약 1천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엔지켐생명과학은 1999년 7월 설립된 바이오기업으로 특히 신약 후보물질 ‘EC-18’를 활용해 블록버스터(연매출 1조 원 이상) 신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국내와 미국에서 호중구 감소증, 구강점막염 등 항암치료 등에 따른 질환의 치료제와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EC-18의 임상2상을 진행하고 있다.
롯데그룹에서 자금이 투입되면 엔지켐생명과학의 신약 연구개발뿐 아니라 신사업 추진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엔지켐생명과학은 31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 백신 개발 및 판매업, 위탁생산(CMO)사업 등 무려 17개 사업목적을 새로 추가하는 안건을 상정한다.
애초 롯데그룹이 엔지켐생명과학에 지분투자를 검토하는 배경이 위탁생산사업 등 바이오사업의 여러 성장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데 있는 점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보탠다.
손 회장으로서는 롯데그룹의 지분투자를 거절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유일한 신약 후보물질인 EC-18의 기술이전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2013년 뒤로 줄곧 영업적자를 내고 있다.
손 회장은 애초 EC-18의 기술이전 성과를 낼 때까지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하며 확보한 공모자금과 원료의약품사업에서 매출로 엔지켐생명과학을 운영하려 했는데 이런 계획이 어긋나면서 엔지켐생명과학의 실적 부진도 길어지고 있다.
손 회장은 글로벌제약사를 대상으로도 지분투자 방식의 기술이전 가능성을 열어뒀던 만큼 롯데그룹의 지분투자 제안에도 크게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엔지켐생명과학의 최대주주는 브리짓라이프사이언스로 2020년 9월 말 기준 지분 11.68%를 들고 있다. 손 회장은 브리짓라이프사이언스의 지분 38.57% 들고 있는 최대주주다.
손 회장은 이와 별개로 엔지켐생명과학 지분 7.02%도 보유하고 있다.
손 회장은 2018년 1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글로벌제약사 사노피와 미국 제약회사 리제네론의 협력모델을 사례로 들며 “지분 투자를 받고 해외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글로벌시장을 공략하겠다”며 “공동개발과 상업화로 비용과 이익도 나누겠다는 의미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이 엔지켐생명과학을 인수할 수 있다는 말도 제약바이오업계 일각에서 나오지만 손 회장의 그동안 노력 등에 비춰볼 때 매각까지는 검토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손 회장은 바이오업계 출신이 아니다.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회계사인데 바이오업계의 성장성을 믿고 2003년 브리짓라이프사이언스를 창업했다.
엔지켐생명과학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는 회계사로서 경험을 살려 돌파구를 찾았다. 2013년 엔지켐생명과학을 코넥스에 상장하고 또 2018년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한 게 대표적 사례다.
손 회장은 바이오문외한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부했고 결국 EC-18에 대한 논문 9편과 특허 19건을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EC-18 호중구 감소증 치료 임상2상 시험계획승인(IND)도 직접 참석해 이끌어냈다. [비즈니스포스트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