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지주를 ‘순수 지주회사’에서 ‘투자형 지주회사’로 전환해 그룹의 새 먹거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롯데지주에서 바이오사업 등에 지분투자를 해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뒤 관련 계열사와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지주가 바이오벤처기업 엔지켐생명과학 지분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롯데지주의 투자 역할을 강화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롯데지주는 “현재 바이오사업에 대하여 검토 중에 있으며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공시했다.
롯데지주는 현재 브랜드 수수료와 배당 수익, 경영자문 수수료, 임대수익을 받는 순수 지주회사다.
롯데지주는 그동안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그룹 계열사의 모든 투자, 인수합병(M&A) 등 전권을 쥐고 있었지만 2017년 롯데그룹의 BU체제가 구축된 뒤 굵직한 인수합병 성공사례는 없었다.
이 때문에 지주사의 역할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롯데그룹이 최근 신성장동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지주사 차원에서 미래 유망사업 발굴을 위한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지난해부터 롯데지주의 변화를 추진해왔다.
지난해 8월
황각규 전 부회장의 퇴진과 함께 경영혁신실 임원 전체를 교체했고 이훈기 전무를 경영혁신실 실장에 앉혔다. 이 전무는 2020년 11월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경영혁신실에 힘을 실어줬다.
경영혁신실은 롯데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을 찾고 다양한 사업에서 전략을 세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해 10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그룹의 포트폴리오와 미래전략을 개선하겠다”며 “주주들이 지속해서 투자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등 신사업과 투자를 강조하기도 했다.
롯데지주는 투자 전문회사를 표방하고 있는 SK의 사례 등을 참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SK는 첨단소재, 그린, 바이오, 디지털 등 4대 사업을 중심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고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SK는 2015년 지배구조를 개편한 뒤 지금까지 약 3조8천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바이오, 신에너지, 소재 등 미래 성장후보군에 투입해왔다.
이 때문에 SK는 계열사 지원보다는 스스로 성장하는 데에 현금을 활용하는 회사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지주가 우선 엔지켐생명과학 등 바이오사업에 지분투자를 해 사업성을 확인한 뒤 관련 계열사와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그룹이 바이오사업을 본격화한다면 롯데케미칼이나 롯데제과가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케미칼은 화학분야에서 쌓은 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같은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사업을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2011년 롯데제약을 인수한 롯데제과는 건강기능식품 등을 개발, 생산하고 있는 만큼 바이오부문과 시너지를 낼 부분이 있다.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이 바이오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만큼 엔지켐생명과학에 지분투자하는 것 외에 다른 바이오기업의 인수합병(M&A)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신 회장은 바이오 외에도 모빌리티소재, 인공지능 등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향후 관련 투자도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 회장은 올해 초 사장단회의에서 “성장이 아닌 생존 자체가 목적인 회사에는 미래가 없다”며 “과감한 투자로 새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롯데지주는 지난해 실무역할을 BU와 계열사로 넘기면서 조직규모를 줄였는데 이 또한 투자역할에 집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지주는 신규사업 등 미래먹거리 발굴에 집중하도록 역할이 조정됐다”며 “투자분야를 명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다양한 사업군에서 유망 투자처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