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현대차에 따르면 윤 부회장은 이번 연말인사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현대차그룹 최장수 부회장 기록을 1년 더 이어가게 됐다.
윤 부회장은 2008년 11월 부회장으로 승진해 12년째 현대차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9년 8월 부회장에 올라 올해 10월 회장에 취임한 정의선 회장, 2009년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해 이번 인사에서 고문으로 물러난 김용환 전 부회장보다 승진 시기가 1년 정도 빠르다.
부회장은 오너일가를 제외한 전문경영인이 대기업집단에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로 평가된다.
윤 부회장이 현대차 부회장으로 일하는 동안 현대차그룹에서는 10명이 넘는 부회장이 새로 임명되고 물러났다.
현대차그룹은 2010년 말만해도 14명의 부회장을 뒀다. 정의선 회장이 수석부회장에 오르기 전인 2017년 말까지도 9명의 부회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윤 부회장과 정의선 회장의 매형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둘만 남았다.
윤 부회장이 여전히 현대차 소속인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최근 2년 사이 현대차그룹을 떠난 우유철 부회장, 김용환 부회장, 정진행 부회장 등은 모두 계열사를 옮긴 뒤 퇴진했다.
윤 부회장은 2000년 출범한 현대차그룹 노사관계의 산 증인으로 평가된다.
1952년 태어나 서울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현대차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판매교육팀 부장과 경기남부지역사업실 이사대우, 영업운영팀 이사, 운영지원실장 상무, 경영지원본부장 전무 등을 거쳐 2004년 노무관리지원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무 전문가의 길을 걸었다.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아래 산별노조로 국내를 대표하는 강성 노조로 꼽히는데 윤 부회장은 오랜 기간 현대차 노사협상을 이끌며 산전수전을 겪었다.
2012년 1월 현대차 노조원의 분신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고문으로 물러났다가 2013년 5월 노무총괄 부회장으로 복귀한 일화는 유명하다.
현대차 노사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 무파업으로 단체협상을 마무리했으나 윤 부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난 뒤 노사협상에 진통을 겪었고 당시 정몽구 회장은 1년 만에 다시 윤 부회장을 불러들였다.
윤 부회장이 맡은 일은 어려움도 컸다. 2007년 1월에는 시무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노조 간부로부터 폭행을 당해 안경이 부러지고 콧등이 파이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현대차 노사는 올해 2011년 이후 9년 만에 2년 연속 무파업으로 단체협상을 마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노사관계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전기차시대에는 기술 발전과 부품 감소 등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해 신뢰를 잃는다면 언제든 노사관계가 다시 틀어질 수 있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현명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윤 부회장의 연륜과 경험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윤 부회장은 현재 단체교섭을 직접 이끌고 있지 않지만 정책개발담당으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지금의 노사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형 일자리도 윤 부회장이 챙길 수 있는 사업으로 꼽힌다.
광주형 일자리 공장은 내년 4월 준공돼 9월부터 생산에 들어가는데 윤 부회장은 2019년 1월 투자협약을 이끌어내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현대차로서는 원활한 차량 공급이 중요한 만큼 윤 부회장이 소통창구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도 있다.
윤 부회장은 현대차그룹 전문경영인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만큼 상황에 따라 그룹의 무게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
윤 부회장은 정의선 회장이 수석부회장에 오르기 전인 2017년과 2018년 정몽구 명예회장을 대신해 현대차 시무식을 주재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윤 부회장은 현대차그룹 다른 전문경영인들이 롤모델로 삼을 정도로 도전적 마인드를 지니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라며 “협상력이 중요한 노사관계에서 윤 부회장만큼 노하우를 지닌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