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렉트릭이 에너지솔루션사업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조석 현대일렉트릭 대표이사 사장은 수익성 중심의 수주전략을 앞세워 현대일렉트릭에서 흑자기조를 세워가고 있지만 제품 중심의 사업구조에 따른 한계도 맛봤다.
조 사장은 현대일렉트릭의 이익체력을 더 튼튼하게 다지기 위해 에너지솔루션사업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
29일 증권업계 분석을 종합해보면 현대일렉트릭은 한국전력과 중동의 전력기기 발주물량을 중심으로 수주잔고를 채우며 영업이익 개선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한국형 뉴딜정책을 추진하면서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전력수급계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전력이 이에 필요한 전력기기 발주를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 전력기기 발주시장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데 사우디아라비아가 전력기기 발주를 점차 늘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8년 전력기기 발주를 위한 입찰을 10건 진행했는데 2019년에는 입찰이 40건으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이미 26건의 입찰이 진행됐다.
한국전력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력기기는 수익성이 좋은 물량으로
조석 사장이 추구하는 수익성 중심의 수주전략에 들어맞는다. 조 사장은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기조 아래 이미 수주한 물량의 수익성을 점검한 뒤 과도한 저가 수주로 판단되는 물량의 수주를 취소하기도 했다.
이런 전략은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날 현대일렉트릭은 2020년 3분기 연결기준 매출 3조980억 원, 영업이익 294억 원을 낸 것으로 잠정집계됐다고 공시를 통해 밝혔다. 2분기보다 매출이 25.7%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60.7% 늘었다.
영업이익만 보면 지난해 3분기 적자 40억 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시장 기대치(컨센서스) 141억 원을 108.5% 크게 웃돈 깜짝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이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대일렉트릭은 과거 저가에 수주한 물량들을 대부분 소진했으며 앞으로는 우량한 물량으로 수주잔고를 채워 성장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며 “실적 측면에서 올해보다도 내년이 더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조 사장은 전력기기사업의 수익성 개선에서 멈추지 않고 현대일렉트릭에 에너지솔루션사업이라는 새 성장동력을 장착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전력기기 제조업은 발전사업의 미드스트림(중간 단계) 영역의 사업이다. 에너지솔루션사업은 제품을 통해 생산된 전력을 관리하는 다운스트림(하부 단계) 영역이다.
지금까지 국내 발전시장은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 등 대규모 발전설비에 기반을 두고 중앙 전력거래소가 전력계획을 세워 전력을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다운스트림 영역의 사업들이 주목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한국형 뉴딜정책으로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각광받으며 조 사장에 사업 확장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아 일관된 전력계획을 세우기가 어렵고 한 설비에서 짧은 시간에 대규모의 전력을 생산하기가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력을 배분하는 중앙집중형 전원정책보다 분산돼 있는 발전소들이 자체적으로 전력을 배분하는 분산형 전원정책에 더 적합하다.
분산형 전원정책은 적합한 전력기기뿐만 아니라 전력을 운용하고 설비를 자체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에너지솔루션까지 필요로 한다.
조 사장은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채비를 갖춰나가고 있다.
현대일렉트릭은 28일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투자개발회사인 퍼시피코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및 분산에너지분야의 사업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맺었다.
조 사장은 한국형 뉴딜정책으로 국내 에너지솔루션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신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재정적 파트너를 확보한 것이다.
이미 참여를 확정한 사업도 있다. 현대일렉트릭은 국내 최대 산업단지인 반월시화산업단지를 스마트산업단지로 전환하는 사업에서 스마트에너지플랫폼 구축을 담당한다.
이 사업은 기존의 에너지 관리시스템을 클라우드 방식으로 전환해 관리 효율성을 높이고 에너지 절감효과를 극대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에너지솔루션사업은 관련 플랫폼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끝나지 않고 플랫폼의 유지관리나 에너지 모니터링솔루션,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 등 연계할 수 있는 사업들이 많다.
발전업황에 따라 발주량이 달라지는 전력기기 제조업과 비교해 외부 요인의 영향을 덜 받으며 안정적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조 사장은 에너지솔루션사업의 안정성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상무부는 8월 현대일렉트릭이 미국에 수출한 변압기에 60.81%의 반덤핑관세를 매겼다. 현대일렉트릭이 이에 따른 충당금을 실적에 반영하면서 2분기 잠정 순이익 48억 원이 303억 원의 순손실로 변경됐다.
조 사장은 대표이사에 오른 뒤 수익성 중심의 수주전략을 통해 현대일렉트릭이 2020년 들어 분기마다 영업흑자를 내는 성과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2분기에는 외부 요인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제조업 위주 사업구조의 한계도 실감한 것이다.
현대일렉트릭은 2018년 영업손실 1006억 원, 2019년 영업손실 1567억 원을 봤다. 정명림 전 대표이사 사장이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조 사장이 2019년 12월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조 사장의 에너지솔루션사업 진출 시도는 현대일렉트릭의 이익체력을 더욱 튼튼히 다져 기존 사업의 리스크를 완화하고 장기적으로 꾸준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이에 앞서 27일 경기도 반월시화산업단지의 스마트제조 데모공장에서 ‘스마트그린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공동선언식’ 행사가 열렸다.
조 사장은 행사에서 “현대일렉트릭은 전력기기와 에너지설비뿐만 아니라 에너지 관리서비스까지 하나의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는 토털 에너지솔루션사업자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