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게임회사들이 저마다 전면에 내걸고 있는 목표가 있다. 바로 ‘글로벌 진출’이다.
물론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게임회사들은 이미 대부분 글로벌 게임시장에 진출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글로벌 진출이 아시아 게임시장에 집중돼 있었다면 최근에는 게임시장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북미, 유럽시장까지 보폭을 넓히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런 모습이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예시가 바로 엔씨소프트가 올해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는 ‘프로젝트 TL’이다.
프로젝트TL은 콘솔(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플랫폼을 지원한다.
콘솔 플랫폼은 북미 게임시장의 44.3%, 유럽 게임시장의 36.2%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게임시장에서 콘솔 플랫폼의 점유율은 12% 정도에 불과하며 국내 게임시장에서 콘솔 플랫폼 점유율은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엔씨소프트가 프로젝트TL의 지원 플랫폼에 콘솔 기기를 포함한 것은 북미, 유럽시장 공략의 신호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는 2020년 엔씨소프트 주주총회에서 “한국에서 모바일 대규모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시장을 창출한 경험을 글로벌시장에 이식하려고 지혜를 모으고 있다”며 “나날이 성장하는 글로벌 콘솔시장이 새로운 무대가 될 것이며 여러 가지 콘솔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콘솔 플랫폼을 통해 북미와 유럽시장 진출을 노리는 것은 엔씨소프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넷마블 역시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의 진두지휘아래 의욕적으로 글로벌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방 의장 역시 2017년 1월 열린 제 3회 NTP(넷마블 투게더 위드 프레스) 행사에서 “2020년까지 글로벌시장에서 소위 글로벌 메이저 톱(TOP)5 안에 들지 못하면 더 이상 우리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글로벌 메이저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시장 패권을 두고 경쟁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게임회사들의 이런 도전은 과연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 국내 매출 1,2위 석권한 리니지M의 신화, 해외에서도 과연 먹힐까?
국내 게임회사들의 소위 ‘잘 나가는’ 게임들은 대부분 탄탄한 지식재산(IP)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가장 대표적 예시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과 리니지2M이다.
리니지는 1997년 출시된 국내 국내 온라인게임으로 현재까지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며 여러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한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게임 지식재산이다.
최근 리니지2M을 밀어내고 한국 구글 플레이 기준 모바일 게임 매출 2위에 오른 ‘바람의나라:연’ 역시 1996년 출시된 국내 최장수 온라인게임 ‘바람의나라’의 지식재산을 기반으로 제작된 게임이다.
문제는 북미와 유럽지역에서 리니지나 바람의나라 등 국산 지식재산의 힘은 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게임회사들이 북미와 유럽지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질, 즉 ‘게임성’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특히 게임성에 민감한 것으로 유명한 북미, 유럽의 게이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게임에 ‘독창성’을 심는 것이 중요하다.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내는 정도의 독창성이 아니더라도, 실제 게임산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성공한 게임들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기존 게임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을 추가해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게임들이 많다.
◆ ‘잘 하는 것’에 ‘새로운 것’을 얹어내는 능력, 닌텐도 ‘슈퍼마리오’의 교훈
이런 게임의 가장 대표적 예로 1985년 출시된 슈퍼마리오 시리즈의 첫 작품,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들 수 있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매우 평범한 ‘플랫폼 장르(플랫포머)’ 게임이지만 세계적으로 슈퍼마리오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게임이기도 하다.
닌텐도는 당시 플랫폼 장르의 게임을 가장 잘 만드는 회사였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성공은 닌텐도의 이런 장점에 ‘사소한’ 독창성을 담아낸 데서 비롯됐다.
슈퍼마리오의 개발자들이 게임을 개발하면서 가장 많이 얘기했던 부분은 ‘이용자가 기분 나쁘지 않게 하자’, ‘이용자한테 최대한의 성취감을 주자’였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보너스 스테이지’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보너스 스테이지는 적이 전혀 출연하지 않고 오로지 ‘보상’만으로 구성돼있다. 숨겨진 보너스 스테이지를 발견한 이용자에게 최대한의 성취감을 주기 위해서다.
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에는 그 동안 대부분 검은화면이었던 플랫포머 게임의 배경을 알록달록한 배경으로 만들고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 구름 위를 뛰어다닐 수 있게 만드는 등 이용자에게 최대한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고민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변경들은 세계의 게임 이용자들에게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냈고 결국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시리즈를 시작하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게임회사 역시 슈퍼마리오의 성공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점들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 게임회사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규모다중접속 역할수행온라인게임(MMORPG) 장르에 슈퍼마리오의 사례를 적용하면 게임성이 높은 ‘명작’ 게임을 만들어 내 북미와 유럽을 포함한 세계의 게임 이용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 과욕의 독창성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블레이드앤소울과 야생의 땅 듀랑고
게임에 독창성을 심는 방법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지금까지 비슷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내는 방식과 이미 인기가 있는 방식에 참신함을 조금 섞는 방식이다.
첫 번째 방식은 성공한다면 젤다의 전설, 마인크래프트 등과 같은 세계적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
두 번째 방식은 첫 번째 방식과 비교해 비교적 안전하면서도 게임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 방식을 활용해 좋은 성적을 거둔 대표적 게임이 바로 엔씨소프트가 2012년 출시한 ‘블레이드 앤 소울’이다.
블레이드 앤 소울은 당시 대규모다중접속 역할수행온라인게임 장르에서 유행하던 ‘인스턴스 던전’, ‘적대 진영간 무제한 플레이어 킬(PK)’ 등의 시스템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또한 검증된 시스템에 기반을 두면서도 식상함을 탈피하기 위해 의복시스템, 고전적 역할분담의 파괴 등 독창성을 가미했다.
그동안 엔씨소프트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스토리 요소도 적극 활용해 게이머들의 몰입감도 높였다.
블레이드 앤 소울은 이런 익숙함과 독창성의 조화를 바탕으로 당시 엔씨소프트 온라인게임 가운데 최대 동시접속자 수 기록을 세우는 등 크게 성공했다. 중국에 출시된 뒤에는 중국 서버에서 동시접속자 수 180만 명을 달성하기도 했다.
반대로 첫 번째 방법을 선택했지만 게임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안타깝게 사라진 게임도 있다. 바로 넥슨이 2018년 1월 출시한 ‘야생의 땅 듀랑고’다.
야생의 땅 듀랑고는 공룡들 사이에 맨주먹으로 던져진 현대인들이 협동 등을 통해 살아남는다는 참신한 설정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또한 ‘생존게임’이라는 당시 국내 게임 개발사들이 잘 시도하지 않던 장르도 가미됐다.
하지만 유저들은 ‘참신하긴 하지만 재미가 없다’는 평가를 남기며 야생의 땅 듀랑고를 떠나갔고, 개발하는 데 7년이 걸렸던 야생의 땅 듀랑고는 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2019년 12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물론 완전히 참신한 게임을 만들어 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면 그 게임을 개발한 게임회사와 국내 게임산업 모두에게 매우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길은 성공 확률이 매우 낮은 험난한 길이기 때문에 게임회사가 쉽사리 도전하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대규모다중접속 역할수행온라인게임을 잘 만든다는 국내 게임회사들의 장점에 작은 독창성을 섞는다면 모험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좋은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매출과 게임 품질의 양립이 중요하다, 한국 패키지게임의 몰락과 아타리쇼크
국내 게임회사들이 좋은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과 별개로 지금의 국내 게임회사들이 좋은 게임을 만들고 있느냐와 관련해서는 우려섞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최근 국내 게임회사들이 내놓는 게임은 독창성이 아예 제거된 ‘양산형 게임’이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고 있다.
실제로 국내 게임회사들이 독창성을 제거하고 현금결제시스템만 고도화시킨 게임들을 계속해서 발매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와같은 전략이 매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1분기 기준 세계에서 가장 매출을 많이 낸 구글플레이 등록 게임으로 선정된 리니지M의 내려받기 순위는 2020년 7월 마지막 주 기준 77위에 불과하다. 리니지M과 함께 엔씨소프트의 매출을 책임지고 있는 리니지2M의 내려받기 순위는 600위 권 박으로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이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이용자가 유입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헤비과금러(하나의 게임에 막대한 액수의 돈을 소비하는 이용자)의 힘으로 매출이 유지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운영방식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게임에 돈을 소비하는 이유는 남들보다 강해지기 위해서다. 만약 지속적으로 새로운 이용자들이 유입되지 않는다면 헤비과금러들 또한 지출을 지속할 유인을 잃어버리기 쉽다.
또한 최근 우리나라 게임회사들과 비슷한 방식의 전략을 사용하는 중국 게임회사들의 공세가 심해지고 있다는 점을 살피면 이런 전략은 장기적으로 국내 게임산업의 성장동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실제로 국내 게임산업은 게임의 질적 저하로 한 때 위기에 몰리기도 했었다. 2000년대 초반 국내 패키지게임산업의 몰락이 바로 그 것이다.
당시 창세기전 시리즈, 임진록 등 여러 국산 패키지게임들의 성공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국내 패키지게임 산업은 버그 방치와 표절 등 게임성의 하락과 초고속인터넷의 발달 등의 악재가 겹치며 결국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몰락했다.
미국 게임 산업 역시 ‘아타리 쇼크’라는 비슷한 일을 겪기도 했다.
아타리 쇼크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미국 게임산업이 1980년대 초반 급속도로 몰락하고 세계 게임산업 리더의 자리를 일본 게임회사들에게 내준 사건으로 역시 게임 개발사들의 난립, 게임의 질적 저하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런 사례들을 살핀다면 상품의 질과 관련된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게임개발사들이 북미와 유럽을 목표로 삼고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 콘텐츠를 넘어 플랫폼으로
최근 언택트시대에 게임같은 콘텐츠산업이 주목받는 한편 콘텐츠가 이동하는 ‘길’의 역할을 하는 플랫폼산업과 관련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네이버, 카카오 등과 같은 국내 정보기술(IT) 플랫폼기업들의 주가는 계속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네이버나 카카오같은 정보기술 플랫폼기업들의 실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의문이나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 받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음 시간에는 우리나라의 대표 IT 플랫폼기업인 네이버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네이버가 나아가려는 길은 무엇인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다. [채널Who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