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승민 미래통합당 의원이 31일 서울 중랑구 윤상일 후보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유승민 미래통합당 의원이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소원한 관계를 잠시 뒤로 하고 통합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지역구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서고 있다.
유 의원은 이번 총선에 불출마했지만 수도권 지역 통합당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당내 영향력을 키우고 총선 뒤 정치 행보에 필요한 힘을 축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31일 유 의원은 인천 부평갑에 출마한 정유섭 후보를 비롯해 인천 연수갑 정승연 후보, 서울 중랑을 윤상일 후보의 선거 사무실을 잇따라 찾았다. 21대 총선과 관련해 본격적 움직임을 시작한 것이다.
유 의원은 통합당이 창당된 뒤 40일 넘게 사실상 칩거해왔다. 그동안 측근의 전화조차 잘 받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26일 천안함 피격 10주기 추모식 참석을 계기로 태도를 바꿔 “계파를 따지지 않고 어떤 후보든 도울 것”이라며 광폭행보를 예고했다.
주목되는 것은 유 의원의 지원유세 대상이 새로운보수당 출신 의원들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 의원은 4월1일에는 친박계로 분류되는 권영세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서울 용산을 찾는다. 앞으로도 계파를 가리지 않고 많은 후보들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당 지도부와는 거리를 둘 가능성이 높다.
유 의원은 현재 당에서 아무런 공식 직책을 맡지 않고 있다. 그는 27일 서울 중·성동구 갑 지역구에 출마한 진수희 후보 선거캠프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타이틀 없이 백의종군 해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뭐든지 하겠다”고 당 지도부와 거리를 둔 선거운동을 펼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유 의원이 칩거를 끝냈지만 당 지도부와 거리를 두는 것을 두고 총선 뒤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종인 전 의원이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책임을 나눠 맡기는 했지만 총선 결과에 따라
황교안 대표에 제기될 수 있는 책임론의 반경에서 벗어나 있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 의원이 통합당의 선거결과를 낙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승리가 예상되는 선거에서 공식 직함을 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29일 서울 중구·성동을의 지상욱 후보 사무실을 방문한 뒤 황 대표와의 관계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최근에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고 마지막으로 전화든 문자든 주고받은 것은 2월9일 저의 기자회견 직전”이라며 소원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음을 내비쳤다.
황 대표와의 만남을 놓고도 그는 “앞으로 자연스레 기회가 있다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굳이 만남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유 의원의 거리두기는 당내에 오세훈 의원을 빼면 유력 대선주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총선 뒤 입지를 구축하는 데도 유리할 수 있다.
황 대표가 공천 과정에서 홍준표, 김태호 등 대선 후보급으로 여겨지는 경쟁자를 대부분 당밖으로 내친 상황이라 비록 원외라 할지라도 총선 뒤 유 의원이 '반황'의 구심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 의원이 통합당 후보의 지원유세에 힘을 쏟는 것을 놓고 총선 뒤 당내 입지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유승민계 의원 가운데 이번 총선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김형오 전 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강도 높은 중진 물갈이를 추진한 가운데
유승민계 인사들이 비교적 무난하게 공천을 통과했지만 대부분 격전지에 투입됐다.
새로운보수당 출신 의원들의 공천 현황을 보면 서울 동대문을에 이혜훈 후보, 부산 해운대갑의 하태경 후보, 서울 관악을에 오신환 후보, 경기 평택을에 유의동 후보, 서울 중구·성동을에 지상욱 후보 등이다. 통합당 지지세가 강한 부산을 지역구로 둔 하 후보를 빼면 대부분 험지 출마다.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원외인사들도 서울 노원병의 이준석 후보, 서울 송파갑의 김웅 후보 등 대부분 당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비례대표 후보로는 정운천 의원이 미래한국당에서 당선권으로 예상되는 16번에 배치돼 새로운보수당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비례로 국회에 입성할 가능성이 있다.
유 의원이 총선 과정에서 황 대표와 거리를 두는 것은 그동안 쌓인 앙금 때문이기도 하다.
통합당의 창당 과정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택하며 새로운보수당 당직자들의 고용승계를 ‘유일한 부탁’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황 대표는 정당법 규정 등을 들며 아직까지 새로운보수당 당직자의 고용승계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유 의원은 지상욱 의원 선거사무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지금은 선거가 코 앞이라 이 문제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선거가 끝나면 이 문제를 분명히 제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의원은 황 대표가 이끄는 통합당이 총선에서 목표인 과반의석을 달성하지 못하면 공천 문제도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공천과 관련해 “공천이 잘 됐든 잘못 됐든 끝났다”며 “공천 과정의 잘잘못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공천 실패의 책임을 묻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