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철 기자 esdolsoi@businesspost.co.kr2019-12-29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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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벌그룹 역사의 문을 열었던 10대 재벌 창업주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나는 등 창업주의 시대가 서서히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이들의 창업정신은 장학재단과 복지재단, 문화재단 등 다양한 공익재단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왼쪽부터)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29일 재계에 따르면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국내 10대 재벌그룹의 창업주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인물이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2017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을 맡으면서 경영전면에서 한발 물러난 뒤 롯데호텔에서 후견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최근 세상을 떠나면서 한국 재벌그룹의 역사 첫 페이지를 채웠던 인물 가운데에서는 신격호 명예회장만 남았다.
한국경제에서 재벌은 빼놓고 논할 수 없는 존재다. 광복 전후에 창업돼 1960년대에 기업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19070년대에 ‘재벌’이라는 독특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재벌그룹은 한국경제 성장을 이끈 공신이지만 경제 정의를 훼손했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으며 여전히 그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계열분리 및 그룹의 흥망성쇠에 따라 국내 10대 재벌그룹 명단에는 들고 남이 빈번했지만 2010년대 이후 10대 재벌그룹에는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 롯데그룹, GS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한진그룹, 한화그룹, 두산그룹, 신세계그룹 등이 번갈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그룹들을 세운 창업주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난 지 오래돼 이미 오너2세, 3세 경영을 넘어 오너4세가 새로운 총수로 등장하고 있다.
다만 10대 재벌 창업주들의 이름은 각종 장학사업 및 복지사업에 남아 사회 곳곳에서 널리 알려지고 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호를 딴 호암재단을 비롯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사재를 출연해 세운 아산사회복지재단과 범현대그룹 총수일가가 재산을 기부해 만든 아산나눔재단 등이 대표적이다.
선경최종건장학재단과 LG연암문화재단, LG연암학원, 남촌재단, 정석재단, 두산연강재단 등도 각각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허준구 GS그룹 창업주,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호에서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곳들이다.
모두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뒤 창업주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들로 기업의 이익을 사회로 환원하는 통로이자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를 원조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른 창업주와 달리 세상을 떠나지 않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이름을 딴 장학사업이나 재단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12월 롯데그룹이 신격호 명예회장의 호를 딴 ‘상전(象殿) 유통학술상’의 상금과 운영비를 지원하며 신격호 명예회장의 정신을 계승하는 상을 만들었다.
유통 관련연구 및 정책분야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제조업이 아닌 유통업에 집중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다른 재벌그룹의 공익재단들처럼 이름을 딴 단체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한국경제사에 큰 획을 그은 재벌그룹 창업주들의 시간이 끝나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최근 경제민주화라는 기조 아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가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 창업주들의 이름 및 아호를 딴 각종 재단들은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익재단 세금감면 제도와 맞물려 계열사 지분 출연 방식으로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키우는 용도나 재단 이사장직을 자녀가 승계하는 방식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경제에서 재벌의 역사는 한국경제사 그 자체로도 불리고 있으며 창업주들의 정신 역시 한국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요소로 꼽힌다”며 “경영권을 이어받은 후계자들 역시 창립기념일이나 창업주의 기일에 맞춰 창업주의 정신을 기리는 시간을 마련해 결속력을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