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13일 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주장한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의혹에 별다른 반박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며 “경쟁사와 여론전을 벌이기보다는 소송에 집중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배터리업계에서는 김 사장이 LG화학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 섞인 시선이 나온다.
지금까지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공격하는 자료를 내놓을 때마다 즉각 반박자료를 내며 대응해왔는데 이틀째 이어진 침묵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LG화학이 내놓은 증거자료가 구체적이어서 SK이노베이션이 대응논리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13일 국제무역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LG화학의 제출 자료에는 SK이노베이션이 직원들에 자료 삭제를 지시한 메일의 캡처화면까지 포함되어 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숨기려 했던 엑셀파일에 980개의 삭제대상 파일이 목록화돼 있었다고 구체적 숫자까지 들었다.
LG화학의 주장을 깨뜨릴 카드가 없다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사업은 치명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김 사장은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이 미국에서 SK이노베이션에 승소한다면 이 판결 결과를 들고 유럽이나 중국 등 거대시장에서 재차 소송전을 벌일 것이라고 배터리업계는 바라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체제의 LG그룹은 경쟁을 피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국제무역위원회의 판결 결과에 따라 배터리 전장이 글로벌 전역으로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김 사장이 LG화학에서 협상을 통한 해결 조건으로 내세운 원칙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손해배상금 지급 △재발 방지 약속 △사과 등 3가지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협상은 없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김 사장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배터리사업은 앞으로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배상금과 로열티로 LG화학에 지급해야할 금액도 문제거니와 이를 지급하는 것 자체로 LG화학이 제기한 기술탈취 의혹이 사실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SK이노베이션을 향한 시장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SK그룹은 지금까지 이 문제와 관련해 SK이노베이션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태도를 보여 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소송과 관련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잘 될 것’ 이상의 답변을 내놓은 적이 없다.
하지만 상황은 김 사장이 해결하기 쉽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앞서 14일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과 법정모독 의혹을 들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 판결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국제무역위원회는 소송안건과 관련해 ‘예비결정-판결-최종결정’의 단계를 밟는데 조기 패소 판결로 예비결정 단계를 건너뛰도록 해 최종결정이 내려지는 시점을 앞당기려는 것이다.
두 회사의 소송전은 지난 4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에서 LG화학의 배터리 영업비밀을 탈취해 전기차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며 국제무역위원회에 SK이노베이션의 셀, 팩, 샘플 등 제품의 수입금지를 요청하는 소송을 내며 시작됐다.
SK이노베이션이 9월 특허침해 혐의로 LG화학을 국제무역위원회에 제소하는 것으로 대응하자 LG화학도 같은 달 마찬가지로 특허침해 혐의를 들어 맞소송을 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