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갑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부회장이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기업결합 심사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독과점 문제에 깐깐한 유럽연합의 심사는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권 부회장이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시장에서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이 절반을 넘는다는 심사당국의 지적에 대응할 논리를 마련했는지가 유럽연합 심사의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한국조선해양에 따르면 빠르면 11월 안에 유럽연합의 경쟁당국인 집행위원회에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심사의 본심사 신청서를 낸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늦어도 11월 안에 사전심사 절차가 마무리된다”며 “사전심사 절차가 끝나면 곧바로 본심사 신청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주요 선주사들이나 에너지회사들이 밀집한 유럽연합의 심사를 한국조선해양이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산으로 바라본다.
이 때문에 권 부회장도 기업결합 심사 대상국들 가운데 유럽연합의 심사를 통과하는 일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4월부터 7개월 가까이 유럽연합과 사전심사를 진행해 오면서도 외부 변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본심사 일정을 철저히 함구했다.
하지만 한국조선해양이 본심사 일정을 언론에 확인해 주기 시작한 점을 두고 카자흐스탄의 기업결합 승인 통보로 유럽연합의 본심사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조선해양은 이날 카자흐스탄 경쟁당국이 기업결합에 따른 시장 점유율이나 경쟁제한 등 심사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을 이견 없이 승인했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글로벌에서 진행되는 기업결합심사는 심사기준의 시장이 개별 국가가 아닌 글로벌시장이기 때문에 각 나라 경쟁당국이 비슷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카자흐스탄의 승인이 유럽연합의 기업결합 심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카자흐스탄처럼 조건 없는 완전한 기업결합 승인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있다는 시선도 만만찮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시장의 독과점이 심화해 소비자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을 제한하는 ‘경쟁제한’의 잣대를 가장 엄격하게 들이대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올해 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바로 이 경쟁제한의 논리를 들어 독일 지멘스와 프랑스 알스톰의 철도사업부문 합병을 가로막았다. 두 회사가 철도사업 가운데 철도차량부문에서 합산 점유율이 50%를 넘었기 때문이다.
앞서 9월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를 방문했을 때도 지멘스-알스톰의 사례를 들며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물론 국제법상 단일시장에서 합산 점유율이 50%를 넘는 두 회사의 합병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 각 나라 경쟁당국이 시장 현황을 면밀히 검토한 뒤 승인을 결정할 수 있다.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수주잔고를 기준으로 LNG운반선시장에서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합산점유율은 58.8%였다.
권 부회장은 카자흐스탄의 기업결합 승인으로 불승인 가능성이 낮아진 만큼 생산능력의 축소를 전제로 하는 조건부가 아닌 완전한 승인을 받아내기 위해 경쟁제한 잣대를 넘어설 논리를 마련하는 데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권 부회장은 LNG운반선시장이 이미 사실상의 독과점시장이라는 특수성을 내세워 조건없는 승인을 받아내려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7년까지 LNG운반선이 매 해 60척 이상씩 발주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조선3사의 LNG운반선 건조능력은 모두 연 20척 안팎으로 3사가 도크를 쉬지 않고 돌려야 발주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LNG운반선시장은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한국의 조선3사가 85.6%를 점유하는 시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연합이 공정경쟁을 통해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두 회사의 생산능력을 제한하는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도크 슬롯을 차지하기 위한 선주들의 경쟁을 촉발시켜 더 비싼 건조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카자흐스탄 경쟁당국이 조건 없는 승인 결정을 내린 것도 이러한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한 결과로 업계에서는 풀이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합병 자체를 불허할 가능성은 낮다고 업계는 바라본다.
이에 앞서 25일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중국 1,2 위 조선그룹인 중국선박공업집단(CSSC)와 중국선박중공집단(CSIC)가 합병해 중국조선집단(CSGC)로 출범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이 합병도 세계 각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거쳤다.
글로벌 조선업황 부진에 따른 구조조정을 유럽연합이 이미 한 차례 승인한 만큼 같은 논리로 진행되는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에 다른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승인 가능성을 점치는 근거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기업결합 본심사를 사안에 따라 최대 6개월까지 진행한다. 권 부회장은 유럽을 설득하기 위해 장기전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그동안 유럽연합 경쟁당국이 요구하는 서류들을 성실하게 제출하며 충분히 준비해왔다”며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