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유통업계에서 독보적 트렌드세터로 불린다. 시대의 풍조나 유행 등을 빠르게 파악하고 이를 사업화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붙은 별명이다.
그는 해외에서 유행하는 브랜드를 벤치마킹해 국내에서 출범시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이 추진한 사업들에는 ‘표절', '모방'이라는 꼬리표도 자주 따라붙는다.
일례로 이마트의 PB(자체상품)인 '노브랜드'는 캐나다 유통업체 로블로의 PB의 '노네임'과 유사하다.
정 부회장이 '세상에 없던'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이며 지난해 야심차게 선보인 만물상 잡화점 삐에로쑈핑은 일본의 유명 잡화점 돈키호테를 표절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모방', '표절'이라는 지적에 정 부회장은 "처음 이마트를 구상할 때 일본, 미국 마트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이 세상에 카피캣(모방자)이 아닌 사람은 없다(2018년 3월 신세계그룹 채용박람회 중)"고 항변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카피를 하더라도 자기 식으로 재창조하면 된다는 뜻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내놓은 브랜드들이 혁신과 모방 사이 모호한 지점에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의 시도들이 국내 유통업계 트렌드를 변화시킨 것은 분명하다.
가격 거품을 빼고 품질로 승부하겠다며 내놓은 이마트의 가정간편식 브랜드 ‘피코크’와 초저가 자체상품 ‘노브랜드’는 해외의 성공사례를 들고오면서 '정용진 방식 해석'을 통해 새로운 유통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두 제품은 기존 PB(자체브랜드)가 지닌 '보급형'이나 '유사상품'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가격과 성능을 까다롭게 비교하는 소비 트렌드를 제대로 겨냥해 큰 성공을 거뒀다.
피코크는 출범 첫 해인 2013년 매출 340억 원을 거둔 뒤 2018년 2490억 원으로 매출이 6년 사이 7배 이상 성장했다.
노브랜드는 2015년 출범 당시 9개 제품에 불과했지만 2019년 현재 제품 수가 1000여 개로 늘었다. 매출 역시 첫 해 234억 원에서 2017년 2900억 원까지 성장했다.
정용진표 PB가 성공을 거두자 경쟁 유통업체들도 PB사업에 뛰어들었다. 롯데마트는 2017년에 ‘온리프라이스’, 홈플러스는 2018년에 ‘심플러스’를 선보였다. 이제는 백화점과 홈쇼핑, 호텔까지 PB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의 성장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성장세가 둔화하자 쇼핑공간을 체험형 전문매장이나 테마파크 형태로 바꾼 판단 역시 정 부회장의 트렌드세터다운 면모라 할 수 있다.
정 부회장은 2016년 스타필드 개점행사에서 “향후 신세계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말에 쇼핑을 즐겨야 할 고객들이 야구장이나 놀이동산으로 몰린다는 점을 문제로 인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스타필드는 '쇼핑 테마파크'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유아와 아동을 위한 에듀테인먼트 테마파크 ‘토이킹덤 플레이’와 남성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놀이시설과 가상현실(VR) 체험관 등 '비(非) 쇼핑 공간'이 전체 면적의 약 30%를 차지한다.
고객이 체험을 위해 오래 체류할수록 결국 돈을 쓰게 될 것이라는 정 부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 부회장은 그동안 ‘파격’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수많은 브랜드와 신사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고는 실제의 실적에서 만족스러운 성적표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또한 그가 여러 전문점을 출범해 유통채널 다각화를 꾀하고 있지만 이 역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통채널 다각화가 부문별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서로의 시장을 뺏으면서 발목을 잡는 역기능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마트의 실적이 계속 악화하는 상황에서 정용진 부회장이 벌여놓은 새로운 사업들의 적자가 지속되면 오히려 신세계그룹 전체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임금진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