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 심사국)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하며 수출규제가 강화될 수 있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업종의 생산차질 우려가 더욱 높아졌다.
2일 증권업계와 경제연구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따라 규제가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으로 가장 먼저 반도체 웨이퍼와 평판디스플레이 제조용 기계 등이 꼽힌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이 품목들은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비중이 높은 반면 일본이 한국에 수출하는 비중은 낮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이 반도체 웨이퍼를 일본에서 수입하는 비중은 67.5%이며 ‘평판디스플레이 제조용 기계’를 수입하는 비중은 82.8%로 이 품목들의 일본 의존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일본이 이 품목들을 한국에 수출하는 비중이 각각 25.1%와 6.7%로 한국 외에 다른 국가에 수출할 여지가 넓다.
자동차와 공작기계 분야도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에 다른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핵심산업 반도체업종뿐 아니라 자동차와 공작기계 등도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에 따른 원자재 조달 어려움으로 일부 생산차질이 우려된다”며 “이 산업들은 반도체보다 글로벌 공급사슬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 일본이 국제사회 비판도 피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자동차산업에서 일본 부품 수입비중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수소차 등 미래형 자동차부문에서 일본 부품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공작기계 분야는 일본 부품 의존도가 높은 데다 수출제한의 영향이 자동차, 조선 등 다른 산업에까지 확산될 수도 있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일본동아시아팀 선임연구위원도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 관련 기기, 자동차, 공작기계 관련 부품과 소재 등의 품목에서 일본이 높은 경쟁력을 보이고 있어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따른 규제 강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국은 고부가가치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과 조립을 거쳐 자본재 및 중간재 형태로 다시 수출하는 과정을 거치는 산업이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이 중간재 부문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향한 중간재 수출을 규제하면 한국의 산업도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셈이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정보통신기술(ICT), 석유화학, 자동차 업종과 관련한 일본의 중간재 수출규제 강화 조치가 취해지면 생산에 차질을 빚어 한국의 수출에도 일부 제약이 생길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일본 정부는 2일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서명하고 신조 아베 총리가 연서한 뒤 일왕의 공포절차를 거쳐 그 시점부터 21일 뒤 시행된다.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되면서 개별허가를 받을 필요 없이 3년에 한번만 포괄허가를 받아 수입할 수 있었던 품목도 6개월 유효기간의 개별허가를 받아야 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본 정부가 전략물자로 분류한 품목은 1194개로 이 가운데 이미 민감품목으로 해당돼 건별 허가가 적용되고 있는 품목, 관련이 적은 품목, 대체수입 등으로 배제 영향이 크지 않은 품목 등을 제외하면 159개 품목이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의 수출규제 강화조치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국을 향한 수출규제 강화가 일본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있는 만큼 연말이나 내년 초쯤 한국과 일본의 무역분쟁이 해소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김규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다고 국내 제조업체의 조업중단 사태 등 극단적 결과가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두 나라 정부 사이 충분한 협의를 통해 일본이 수출규제조치를 철회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