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로이터 등 해외언론을 종합하면 미국 상무부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수입차의 국가안보 위협 여부 조사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내부적으로 수입차가 국가안보를 해친다는 내용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상무부의 최종 보고서를 받은 뒤 90일 안에 수입차와 관련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가능한 선택지로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각 회사별, 나라별로 쿼터제를 시행해 수입물량을 조절하는 방안 등이 꼽히고 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와 같은 미래차에만 선별적으로 부과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적극적 지지층인 ‘러스트벨트’ 지역 유권자들을 외면하기 힘들기 때문에 수입차 관세 부과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러스트벨트는 미국 중서부 지역과 북동부 지역의 일부 영역을 일컫는 말로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었던 디트로이트를 비롯해 철강산업을 대표하는 지역인 피츠버그 등을 포함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미 철강산업을 놓고 관세 인상을 결정했으며 이후에도 미국 내 자동차산업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수입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의지를 꾸준히 내비쳤다. 그래야만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이 미국에 공장 투자를 결정하고 고용인원을 늘린다는 것이다.
수입차 관세 부과 조치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현대기아차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대기아차는 합계 판매량 기준으로 2016~2018년에 미국에 연평균 60만 대가량의 차량을 수출했다. 관세 25%가 부과되면 현대기아차가 부담해야 할 부담이 상당히 커진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관세 부과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손실 1조4700억 원, 손실 1조1100억 원을 보게 된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으로 3조6천억 원을 냈다는 점을 고려하면 관세 부과에 따라 영업이익이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수출에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한국무역협회는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국내 자동차업계의 수출물량이 20% 넘게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 수출물량은 이미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으로 줄었는데 관세 부과로 수출 부진이 더욱 장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9월 청와대의 방북 동행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미국을 방문해 고위 관료들과 만나 한국에 호혜적 조치를 내려줄 것을 요청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독일과 일본 자동차기업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 미국 자동차산업 육성의 핵심으로 꼽히는 만큼 관세 부과가 현대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업계를 비껴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자동차전문지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토요타와 혼다, 닛산 등 일본 3개 자동차기업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평균 32%를 보였다. 폴크스바겐과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독일 완성차기업의 시장 점유율도 평균 8%다.
일본과 독일 자동차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현대기아차의 합산 시장 점유율(7%)의 6배에 육박한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미국 자동차 딜러들과 완성차기업 역시 수입차에 일괄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데 반발하는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영향력이 큰 기업에만 집중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미국으로서도 부담을 더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올해 초부터 유럽연합(EU)와 일본 등과 무역관련 협상을 시작하며 수입차 관세 부과를 카드로 이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이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에 서명하면서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했다는 점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관세 부과의 대상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준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이 다른 국가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받을 가능성은 낮다”며 “한국은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최근에 무역협정을 재개정했기 때문에 긍정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자동차 관세 문제를 해결하려 미국을 방문한 뒤 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협조와 지지를 당부했다”며 “최근 만난 미국 정부와 의회 인사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분야 복심으로 통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자동차 관세 부과에 부정적 의견을 내비치고 있는 점에서 관세 우려가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블룸버그는 “라이트하이저 대표도 자동차 관세에 회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시나리오별로 보면 모든 국가에 25%를 부과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와 유럽과 일본에만 관세를 부과하는 최선의 시나리오로 나눌 수 있다”며 “전자는 한국 기업들이 이익 급감을 피할 수 없는 반면 후자는 오히려 반사이익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