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 노조는 21일 조합원들에게 보낸 소식지를 통해 “20일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지만 회사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합의가 불발됐다”며 “금융노조가 2차 파업 철회를 지시하고 이를 받아들인 만큼 이제 허 행장의 결단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20일 오후 노사는 양쪽의 잠정합의서 수정안을 추가로 확인하고 검증했다.
임금피크제 진입시기를 놓고는 노조 쪽에서 양보를 했고 전문직무직원 무기계약직 전환과 점포장 후선보임제도는 노사가 모두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면서 절충점을 찾았다.
페이밴드를 놓고도 거의 합의하는 듯했지만 회사가 막판에 태도를 바꿨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노사는 18일부터 20일까지 논의를 통해 L0직원의 근무경력 인정과 신입행원 페이밴드를 놓고는 TF를 통해 논의를 지속하되 페이밴드는 적용을 유보하기로 했다.
잠정합의안에 실릴 문구 역시 “노사는 즉시 인사제도 TFT를 구성하고 L0로 전환된 직원의 근속년수 및 페이밴드를 포함한 합리적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한다. 다만 2014년 11월 이후 입행한 직원의 페이밴드는 새로운 급여체계를 놓고 합의할 때까지 적용을 유보한다”로 정리됐다.
그러나 허 행장이 오후 늦게 문구를 바꾸자고 태도를 변경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한이 없어 사실상 폐지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KB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노조가 항의하자 회사에서 ‘비대위 소위원회 회의에서 해당 내용을 반대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는데 아무리 비대위라 해도 행장이 동의한 합의안에 다른 비대위 구성원인 전무와 상무가 나서서 반대하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조는 비대위가 반대하는 배경에 윤 회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 회장이 행장을 겸임할 때 페이밴드가 도입됐기 때문에 윤 회장이 페이밴드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KB국민은행 관계자는 “페이밴드는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이 재직할 때 도입이 논의됐고 2014년 10월 도입이 결정됐다”며 “윤 회장은 2014년 10월 말 내정돼 11월에 취임했다”고 말했다.
페이밴드는 일정 기간 안에 윗 직급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기본급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종의 직급별 기본급 상한제다.
KB국민은행이 페이밴드를 확대하려는 이유는 기존 호봉제가 KB국민은행의 항아리형 인적구조와 맞물려 인건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KB국민은행은 조직이 방대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순이익을 내고 있지만 인력과 지점도 그만큼 많아 1인당 생산성이 다른 시중은행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페이밴드 때문에 등급이 하향 조정되고 기본금이 줄어들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 도입 당시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신입행원에게만 적용됐다는 점에서 불평등을 조장하는 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미 도입한 제도를 폐지하는 게 어디에서나 쉽지 않다”며 “페이밴드 역시 전임 행장이 도입했고 도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만큼 후임 행장이 폐지하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계속해서 허 행장의 의사결정력도 문제삼고 있다. 대표자 교섭의 주체인데도 금융지주의 기조에 따라 움직이면서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히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사실상 구두합의까지 마친 상황에서 서명을 미룬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며 “지난해 9월 2분기 노사협의회 조인식 2시간 전에도 허 행장이 금융지주와 소통 부족을 이유로 조인식 연기를 요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노조가 허 행장 대신 윤 회장을 겨냥하는 점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정치적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허 행장 이전에 윤 회장이 3년이나 행장을 겸직했던 만큼 그동안 쌓여온 갈등이 지금 폭발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노조의 이런 행보가 허 행장의 입지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노사가 여전히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만 페이밴드를 제외하면 의견 일치를 이룬 데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사후조정까지 앞두고 있어 임단협 타결까지 큰 산은 넘은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이미 2차 파업 계획은 접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